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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애불

신비한 바위굴에 새겨진 가섭암터 마애삼존불



신비한 바위굴에 새겨진 '가섭암터 마애삼존불'



가섭암터 가는 길은 청량하다. 금원산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매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얼마간 오르다 보면 작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재미골이라 불리는 계곡물의 냇돌을 징검징검 건너면 잡목이 우거진 가섭암터 가는 숲길이다.


길지 않은 이 산길은 잠시 세상을 벗어나 걷기 좋은 길이다. 쉼없이 흘러 이끼조차 끼지 않는 맑은 물과 숲속 어딘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는 늦은 봄날의 나름함을 단번에 날려 버린다.


지난 가을에 떨어졌을 솔잎이 푹신한 흙길을 만든다. 이따금 나타나는 시멘트길이 볼썽사납지만 하늘을 가린 숲에 잊어버리게 된다. 다시 맑은 여울. 졸졸졸, 퐁퐁퐁. 바닥의 잔자갈이 보석처럼 빛을 낸다.




맑은 여울을 두 번 건너고 나면 '문바위'에 이른다. 금원산 지재미골 입구에 있는 문바위는 그 육중한 목소리로 여기서부터 절의 영역이노라고 호령하는 듯하다. 가섭암터의 일주문에 해당하는 문바위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바위로 가장 큰 바위로 알려져 있다.

문바위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어 그동안의 즐거움이 경건함으로 바뀐다. 호신암, 가섭암, 금달암, 두문암, 지우암, 기도암, 용의 여의주 등 많은 이름을 가진 문바위는 선조들의 큰 바위에 대한 신앙심이 깊게 배여 있는 이름난 바위이다. 바위 앞면에는 고려 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이원달 선생을 기려 ' 달암 이선생 순절동 達岩 李先生 殉節洞'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문바위를 돌아들면 잡목 우거진 숲에 집 한 채가 있다. 얼핏 보면 암자같이 보이는 이 건물은 사실 가섭암터 관리소 건물이다. 관리실 왼쪽으로 가섭암터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이 보인다. 관리소에서 목을 축이고 잠시 다리쉼을 한다.



초파일을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연등이 달려 있다. 가섭암터로 오르는 돌계단은 점점 가팔라진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즈음 가픈 숨을 고를 수 있는 평지가 나타난다.



집채만한 바위가 앞을 가릴 뿐 삼존마애불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바위 틈 사이로 놓인 돌계단 사이를 비집고 오른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삼존불이 있는 바위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은밀한 여성의 자궁처럼 생긴 바위굴에 삼존불은 깊숙이 모셔져 있다. 큰 바위 두 개가 기둥과 벽이 되고 그 위에 집채만한 바위가 얹혀 지붕 구실을 한다.



마애삼존불 입구에 들어서자 한 차례 시원한 냉기가 몸을 휘감는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바위굴 안으로 갑자기 들어서니 눈이 적응을 하지 못한다. 잠시 머뭇거리다 마애삼존불을 올려다 보았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바위면에 새겨진 삼존불은 가운데 불상의 높이가 3m, 양 옆의 보살상이 2m 정도이다. 불상들은 돋을새김으로 얕게 새겨져 있으나 복숭아처럼 새긴 가운데 불상의 두광과 원처럼 새긴 두 보살의 두광은 테두리만 남기고 안쪽을 오목하게 파내었다. 또한 불상이 있는 주위를 여느 바위면과 구분하기 위하여 여백을 깊게 파내었다.




엄지와 검지를 맞댄 수인으로 보아 본존불은 아미타여래로 보이며, 두 보살은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짐작된다. 흔히 이 세 불상을 '아미타삼존불'이라 일컫는다.


마애삼존불의 머리 위쪽으로는 삼각형 모양으로 깊게 홈을 파내어 빗물이 바위면을 타고 흐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은 불상의 형식 등으로 중국 북위시대의 영향을 받은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불상 옆에 새겨진 명문으로 인해 고려 예종 6년인 1111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바위굴은 한여름에도 냉기가 있어 삼존불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잘생기고 조각이 뺴어난 불상은 아니지만 바위굴에 있어 온 천년의 세월이 신비롭다.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은 보물 제530호이다.


내려오는 길은 관리사무소 옆으로 난 산길을 택하였다. 같은 길을 여간해서는 가지 않는 오랜 습성이 몸에 배인 탓이리라. 계곡을 끼고 가는 문바위 길도 좋지만 우람한 소나무가 있는 이 산길도 호젓하다. 숲길이 좋다라고 느낄 새도 없이 어느덧 처음의 계곡과 합류한다.


☞ 여행팁 가섭암터는 경남 거창군 금원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면 매점이 하나 있다. 매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수백미터 오르면 왼편에 작은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에 차를 세우고 300여 미터 걸어가면 가섭암터 삼존마애불상이 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