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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담다

경남 유명 벚꽃길, 끝내 사라지는가


경남 유명 벚꽃길, 끝내 사라지는가

 태초에 길은 없었다. 길은 사람이 있고 나서야 생겼다. 길은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는 표징이었으나 사람의 눈에 길이 보이자 길은 사람의 영혼을 떠나 버렸다. 길은 애초 인간에게 있어 자연으로의 생존과 소통을 위한 최소의 통로였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오직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을 개척할 때부터 그 비극은 시작되었다.


도로 공사 전인 2008년 4월에 촬영한 진주시 문산읍 2번 국도 벚꽃길

 
▩ 진주시 문산읍 2번 국도 벚꽃길
 이 벚꽃길은 진주시 호탄동에서 문산읍까지의 길이다. 벚꽃길은 1k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도로의 곡선미가 벚꽃과 잘 어우러지는 짧지만 숨막히는 아름다움이 있는 길이다. 이 벚꽃길은 이미 사라졌다. 물론 호탄동 초입과 도로 중간 중간에 벚나무가 듬성듬성 남아 있지만 예전의 터널같은 긴 벚꽃길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남해고속도로가 왕복 팔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벚나무를 거의 다 베어 버렸다. 사실 남해고속도로는 상습 정체구간인데다,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면 수십 년 된 벚꽃길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2번 국도 모습. 아래 도로가 남해고속도로이고 중간에 차가 다니는 곳이 이전의 벚꽃길이다.
 도로 양 옆의 아름드리 벚나무는 이미 사라지고 벌거숭이 산만 보인다.





 
하동군 1002번 지방도에서 유일하게 남은 벚꽃 터널.
 이곳을 제외하고는 한쪽 차선의 나무는 거의 베어졌다.


 
▩ 하동군 금남면~진교면 1002번 지방도 벚꽃길
 이 벚꽃길은 하동의 벚꽃길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지만 남해를 오고가는 이들의 입소문에 의해 널리 알려진 길이다. 진교 IC를 빠져 나와 남해대교가 있는 금남면 노량리까지 이어지는 10km에 달하는 이 벚꽃길은 봄냄새 물씬 풍기는 바다로 가는 길이다.



 이 길도 최근 4차선 확장 도로 공사로 만신창이 되었다.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거의 모든 벚나무를 다 베어 버렸다. 옮겨 심는 방안을 강구하였다고도 하나 수십 년 된 나무 수백 그루를 옮겨심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소 에둘러 가더라도 벚나무와 공존하는 도로 설계가 필요했으며 사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이곳에 4차선이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광양만과 섬진강권 개발을 염두에 두더라도 말이다.

수십 년 된 벚나무 백여 그루 이상이 이미 사라졌고 앞으로도 200 그루 이상이 더 베어질 계획이다 .



고소산성 아래의 전망대에서 본 평사리와 섬진강, 19번 국도

▦ 하동 19번 국도 섬진강 벚꽃길
 하동읍에서 악양면 화개까지 섬진강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19번 국도. 화개 십리 벚꽃길을 들어가는 문턱 정도로만 여긴다면 오산이다. 화개에서 쌍계사까지의 십리 벚꽃길이 제 아무리 좋다한들 섬진강이 빚어내는 19번 국도의 벚꽃길에서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면 십리 벚꽃길의 클라이막스도 없다.
 다행히도 이 길의 벚꽃은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3년 연말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하동읍과 화개간의 19번 국도 4차선 확장 공사 소식 이후로 여태까지 갈등을 빚고 있다. 지금은 잠시 주춤하고 있으나 섬진강권 개발과 맞물려 이 벚꽃길도 언제 사라질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벚꽃 축제 기간이 아니면 평소 교통량도 많지 않을 뿐더러 섬진강 건너편 861번 지방도를 공동 활용하면 교통체증은 있을 수 없다. 하동 19번 국도를 가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이 도로변에서 하동배, 매실, 대봉감들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이곳 농가가 생가하는 전체 농산물의 반 이상을 도로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이처럼 섬진강의 생태환경, 아름다운 꽃길, 주민들의 삶과 19번 국도는 밀접하다. 친환경적인 개발을 한다고 떠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두자.

남해 미조에서 시작하여 섬진강변을 따라 강원도까지 가는 19번 국도

 
지자체 이후로 경쟁적으로 축제를 하고 그에 따른 관광객 유입을 위한 도로 공사 등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다수의 관광객 유치를 위한 축제 중심의 관광 마인드는 필요 이상의 개발을 수반하게 된다. 필요에 의한 개발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편리함이 좋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최소한의 개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현실을 외면한 영혼도 한낱 사라지는 연기에 불과하지만 편리 대신 영혼을 잃어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