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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담다

추천! 남도의 봄꽃 여행지 Best 15


 

 

 추천! 남도의 봄꽃 여행지 Best 15

 




550년된 매화 '정당매'

매화하면 뭇사람들은 섬진강 다압마을을 얘기한다. 여행자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섬진강과 한적한 매화마을을 몹시 사랑하여 번질나게 찾았었다. 그러나 지방축제가 전국적으로 요란하게 앞다투어 벌어지고 한적한 매화밭이 난장판이 되어갈 무렵 미련없이 발길돌려 버렸다. 그 후 찾은 곳이 이곳 정당매와 선암사의 백매와 홍매, 금둔산의 홍매를 즐겨찾곤 하였다. 매화나무가 무리지어 있지 않아 화려함은 없지만 족히 수백 년은 된 나무의 연륜이 봄밤에 묻혀오는 은은한 그 향기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 바람의 흔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로는 이곳 단속사지 정당매와 산청 남사의 분양재,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선암사의 백매와 홍매 등이 수령 600여년을 자랑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매화는 1276년에 심어 수령 730여년 된 나무로 호북성 무한에 있다. 정당매는 고려 말기 문신인 통정공 강회백이 소년시절 지리산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그가 46세  되던 해에 자신이 직접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이 정당매는 통정공의 나이 열두살인 1372년에 심었다고 한다. 올해로 636년이 되었으나, 원래의 나무는 심은 지 100여 년 만에 죽어 다시 10년생의 묘목을 심었다고 하니 수령 550여년으로 보면 되겠다. 꽃피는 시기는 3월 초·중순 경이다.



 섬 전체가 온통 동백숲인 '지심도'

동백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섬이다. 햇빛이라고는 나무 틈으로 겨우 헤집고 들어온 것만이 살아 땅을 비춘다. 섬의 일주도로가 전부 동백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4월 하순경이면 꽃잎을 감춘다. 이 시기에는 어느 때라도 붉은 동백을 감상할 수 있지만 꽃구경 하기에는 2월에서 3월 기간이라고 한다.(지심도 안내문에는 3월로, 여행자가 주민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2월이 적기라고 하였다.)  동백은 남쪽 바다에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셈이다. 한 겨울에도 꽃을 피우지만, 날씨가 춥거나 눈이 오면 꽃망울을 잘 터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루받이를 하기 전에 꽃이 얼어버리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섬 전체의 60~70%를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동백의 대명사 '선운사 동백'

아직 일러 영원히 보지 못하는가. 시인의 어설픈 육자배가 가락에 맘만 무겁다. 그도 일렀으니 미천한 난 오죽했겠는가. 영혼은 따로 놀고 또 다른 영혼은 선운사 동구에서 맴돌고 있으니, 서른 잔치가 끝나던 날, 난 더 감명을 받았다. 육자배기의 걸죽함도 없고 시대의 무거움도 없어 한동안 찾질 않았다. 성운사 동백은 소문대로 늦게 핀다. 4월 중순· 말 경에 활짝 핀다.



수달래 가득한 뱀사골따라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가는 길

숲이 하늘을 가린다는 산내를 들어서면 반선을 지나 뱀사골 계곡이다. 흔히들 뱀사골하면 뱀이나 이무기와 연관이 있어 그렇게 불리워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사실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이곳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뱀사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이 유력하다. 뱀사골은 기암절벽과 폭포와 소로 유명하다.  '해발 850m' 에 '하늘 아래 첫 동네' 라는 심원마을이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마을은 지리산의 가장 깊은 오지마을 중의 하나였다. 현재는 민박과 식당들로 오지의 맛을 잃어 버렸지만 물소리와 바람소리는 여전히 고요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아 한 때는 100여 가구에 이르렀지만 한국전쟁때 소개당한 후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1958년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 살다 지금은 10여 가구만 있다. 4월 중순 경에 가면 사과꽃과 수달래, 산벚꽃을 볼 수 있다.




 내가 뽑는 최고의 봄꽃 여행지 '득량역'

그곳은 어디인가
바라보면 산모퉁이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  곽재구의 '그리운 남쪽'

  그랬다. 몇 년을 두고두고 가고 싶었던 곳, 진달래 지천인 오봉산 득량역이 아지랭이처럼 아련히 다가왔다. 사람은 없다. 간이역만 있다. 오봉산 아래 벚꽃이 득량역을 쏴 내릴 뿐이다. 인적은 없고 나른한 봄기운만 아지랑이에 묻힐 뿐이다. 노부부만 자식 거두며 오가는 간이역. 봄날의 나른함을 느낄 뿐, 그저 그랬다. 그래서 좋았다. 득량역. 웬만한 여행자는 이 간이역을 스쳐 갈 수가 없다. 사랑 아니면 인정이라도 벚꽃 아래 내려 놓을 수 있는 역, 간이역이다. 득량역에는 김밥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기면 역장이 친절히 안내한다. 인적이 없으니 사전에 양해를 구하면 꽃밥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이 그대에게 있다. 득량得糧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식량을 얻어 왜군을 물리친데서 유래되었다. 득량역은 1930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월말 4월 초에 가면 간이역에 수십 그루의 만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다.



 

녹차밭과 매화가 어우러진 '섬진강'

사람은 저마다 호불호가 다르다. 다압마을을 번질나게 가다가 매화 축제를 하고 난 뒤로는 발길을 끊어 버렸다. 번잡한 걸 싫어하는 성미이고 은은한 매화를 감상하기에는 시끌벅적함이 최대의 방해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동군 화개, 악양의 산기슭에는 녹차밭이 잘 일구어져 있다. 녹차밭 사이사이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어 한가로이 매화를 감상하기에는 이곳이 적격이다. 다원의 양해만 구한다면 한적한 나 만의 봄꽃을 완상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3월 중순 이후에 가면 된다.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 '평사리'

역시 청개구리다. 내 마음의 평사리는 이미 사라졌다. 왜 그리 만들까. 그냥 담아가면 그만인 걸. 문학이 애초에 그릇이 있던가. 난 삐딱하다. 조부잣집을 찾으려 온 겨울을 헤매던 기억이 날 뿐, 평사리는 이미 평사리가 아니었다. 섬진강 국도 19호선, 봄이면 평사리 초입부터 상춘객으로 시끌벅적하다. 원래 상평마을과 하평마을을 합쳐 평사리라 하였다. 세트장으로 번잡한 상평마을을 그대로 지나쳐 하평마을로 가면 한적한 시골마을의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고요한 시골마을.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사람소리조차 바람에 묻혀 버리는 봄의 고향이다.



지리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산수유마을
구례 산동은 요즈음 산수유마을로 유명하다. 노란 산수유가 온 마을과 들녘을 채우건만 이곳은 지리산 자락. 아픈 역사가 없을 리 만무하다. 이 마을의 백순례라는 처녀가 여순사건 부역혐의로 끌려간 셋째 오빠를
대신하여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처형을 당하였다. 영문도 모른 채,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지리산처럼 말없이 사라졌다. '백부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처녀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여 한 초등학교 교사가 '부용가'를 지었고, '산동애가'가 불려졌다. 부용가는 작곡자가 월북을 하였고, 산동애가는 빨치산들이 많이 불렀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그후 이 지역 단체와 가수 안치환, 김원중에 의해서 여순사건 관련 노래들이 발표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꽃피는 시기는 3월 초·중순 경이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 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갈 길마다 눈물 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 '산동애가'------




벼랑 끝 암자 사성암과 보성강의 한적한 벚꽃길
구례읍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우뚝 솟은 바위산이 눈에 들어온다. 오산, 이 산의 꼭대기에 사성암이 있다. 원래는 오산암으로 부르다가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등 네 명의 덕이 높은 스님이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오산의 규모는 작지만 산꼭대기에 이르러 기암괴석이 절경을 빚어내는 곳에 사성암이 자리하고 있다. 사성암 아래 보성강을 따라 벚꽃길이 한적하다. 인근 쌍계사 십리 벚꽃이 유명하다지만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한적한 곳을 찾는 이여, 이곳을 가라. 몇 년전부터 구례군에서 이곳에도 축제를 하고 있으나 아직은 덜 알려진 한적한 벚꽃 명소이다. 꽃피는 시기는 4월초·중순 경이다.




 바닷길에서 만난 남도의 봄

통영 미륵도의 일명 '산양일주도로'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해안도로이지만 봄에 가도 좋으리라. 한적한 포구와 다도래의 무수한 섬들, 진달래, 개나리, 복숭아꽃이 해안을 따라 피어 있다. 간혹 무리지어 있기도 하지만 듬성듬성 피어 있는 바닷가의 봄꽃즐은 마음마저 평온하게 한다. 3월 말경에 가면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꽃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옛 사랑이 그리운 나루터에 활짝핀 복숭아꽃, '정암나루'

봄빛이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도 봄이지만 벼랑 끝의 복숭아꽃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매서운 강바람의 시샘이 어느덧 사라지자 나루터의 봄은 이미 소리없이 와 있었다. 지금은 예전의 나루모습은 찾을 길 없다. 단지 솥바위 앞에 쓸쓸한 배 한 척이 있을 뿐이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붐비던 나루터는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잊혀져 간다. 정암鼎巖.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기 직전 넓은 강줄기를 자랑하는 곳에 있다. 반쯤 물 위에 드러나 있는 정암은 물밑으로 솥다리처럼 세 개의 큰 바위 기둥이 받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월 초·중순 경이면 정자 주위에 복숭아꽃과 벚꽃, 수양버들이 아름답다.


 
진달래와 목련이 만개한 연인들의 싱그러움 '보성녹차밭'

1939년 우리나라의 차 재배의 적지를 찾던 일본인 차 전문가들이 이곳을 점찍었다. 이후 1941년에 일본인 회사 경성화학주식회사가 야산 30정보에 인도산 차나무를 심으면서 기업식 재배가 시작되었다. 따뜻한 날씨와 강우량은 조금 못미쳐도 아침저녁의 안개가 습기를 보충해 주어 차나무가 잘 자라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 차가 재배된 것은 훨씬 예전부터이다. 보성 녹차밭 산책은 진달래와 목련이 만개한 3월 말 4월초가 적기이다. 곡우를 지나 오월을 넘어 서면 녹차잎이야 지금보다 더 푸르겠지만 땡볕이 온 몸을 태우고 만다.


내소사와 산정호수를 옆구리에 낀 직소폭포 봄꽃 여행
직소폭포 가는 길은 봄볕이 따사롭다. 
연둣빛의 잎들과 피어날 듯 지기 시작한 벚꽃, 갖은 야생화들, 진달래가 계곡에 피어 있는 샘나는 길이다. 옛 사람 누군가가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봉래구곡'의 글발이 선명하다. 월명암 건너편 산자락에 앉은 내소사는 내변산의 관문이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진 고찰. 원래 이름은 소래사라고 한다. 소정방이 이 절에 머물며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내려오지만 미당 서정주가 쓴 내소(來蘇)란 이름에 얽힌 얘기가 더 그럴싸하다. 대웅전 단청작업을 할 때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으나 방정맞은 중이 창구멍으로 들여다보았다. 붓을 잡고 단청을 하던 새가 쓰러지며 단청작업은 내생(來生)이나 소생(蘇生)에 하라고 해서 내소란 이름이 나왔단다. 4월 초˙중순 경이 봄꽃 여행의 적기이다. 

 
쪽빛 다도해에 펼쳐진 유채꽃
유채꽃하면 누구나 제주도를 먼저 떠올린다.
여행자도 제주도 유채밭을 몇 번 본 적이 다. 화려하지만 밋밋하였다. 사천(삼첨포) 유채꽃을 구경하기에는 각산이 제일이다. 삼천포-창선대교를 들어서기 전에 대방사 가는 길을 잡아 산을 오르면 된다. 대교와 섬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각산 봉화대이다. 섬과 바다, 다리와 유채꽃이 한 폭의 그림을 마들어낸다. 4월 초·중순 경에 방문하면 된다.


산골다랭이논에 활짝 핀 하고초꽃
함양군 백전면 양천마을. 양천은 윗말과 매치마을, 양지말 3개 마을이 있다. 
고려말 재상인 박홍택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논이라고 해봤자  하늘에 걸린 손바닥만한 다랭이논이 전부다. 사람이라고는 1007번 지방도를 따라 백운산을 찾는 이들이 전부였던 산골마을에 요즈음 외지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양천마을 천수답 다랭이논 10만(3만평)에 '꿀풀이'라고 불리는 하고초꽃을 심었다. 산골마을이 온통 활짝 핀 보라색 꽃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하고초는 한방에서 4대 약초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쌀농사와 잡곡만을 생산해 오던 산골마을에서 4년 전 함양군의 하고초재배 제의를 받고 30여 가구의 마을 주민들은 하고초를 심기 시작하였다. 5월 말 6월초에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