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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그리움이 강을 건너는 곳, 판운 섶다리




 

그리움이 강을 건너는 곳, 판운 섶다리

 

무릉리 요선정에서 혼자 신선놀음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놀란 마음에 부리나케 길을 떠났다. 주천강의 아름다움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끝날 영월 여행에 꼭 하나는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이곳에는 아직도 섶다리가 남아 있다. 섶다리야 최근 관광의 일환으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겠지만 평창강을 가로지르는 판운 섶다리의 모습을 꼭 담고 싶어서였다.

 

전날 눈발이 제법 날리기에 설레는 마음에 이곳을 찾았지만 눈은 없고 하얗게 언 강만 애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둠이 점점 강을 재우고 있을 즈음 다리를 건넜다.

 

구름과 안개가 넓게 끼는 곳이라 ‘너룬’ 혹은 ‘널운’이라 불렸던 판운리는 일제시대 정겨운 이름을 빼앗기고 판운리라 불리게 되었다. 섶다리를 건너기 전의 마을이 판운2리, 다리를 건너면 10여 가구가 사는 판운1리이다.

 

판운리 두 마을 사이로 평창강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마을 지명을 따 판운강이라고도 한다. 평창강은 선암마을로 유명한 한반도면에서 주천강과 합류하여 서강이 되고 영월읍에서 다시 동강과 합쳐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꾸불꾸불 산허리를 감싸며 돌아 흐르는 평창강의 아름다움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섶다리는 Y자형 나무로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솔가지 등을 깔아 흙을 덮어 만드는 임시다리를 말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강마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우리의 옛 다리이다.

 

이곳 판운리는 마을청년회에서 매년 10월에 섶다리를 만들어 이듬해 장마가 오기 전에 다리를 철거한다. 그냥 두어도 장마에 섶다리가 쓸려가지만 굳이 철거를 하는 이유는 다리가 비에 완전히 쓸려가지 않으면 지저분할뿐더러 나뭇가지에 걸려 비 피해도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짓는 데에 정성을 쏟은 만큼 거두는 것도 정성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실눈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아이들은 두툼한 털모자를 쓰고 다리를 건너고 있었고 아이들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그들을 조심스레 이끌었다. 흔들리는 다리에 아이들은 더 뜀박질을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걱정스런 눈으로 연신 소리를 질러댄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고 난 후에도 길을 떠나지 않았다. 작은 슈퍼에서 담배 한 갑을 사서 깊이 빨아들였다. 짙은 그리움이 몸속을 빠져나왔다.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는 매년 3월 말경 빼어난 자연경관과 옛 섶다리를 중심으로 퉁가리축제를 열어 외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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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