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머물고 싶다

단풍이 부럽지 않다, ‘전주천 억새’


 

단풍이 부럽지 않다, ‘전주천 억새’


 

 전주에 도착한 날 바람이 몹시 심하였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은 말 그대로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동성당을 둘러보고 경기전과 오목대를 지나 향교에 이르렀다.


 

 동행한 하선생님이 전주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향교로 안내하였다. 향교에는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수 그루나 있어 그윽한 운치가 있었다. 아직 잎이 노랗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황갈색의 은행열매가 환상적이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은행이 마치 몽돌이 파도에 휩쓸리듯 바람과 환상의 소리를 맞추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고 있었다. 하선생님이 향교를 소개한 건 은행나무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향교 앞 전주천의 억새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주천의 억새는 정말 장관이라고 하였다. 8km에 달하는 전주천을 따라 이어지는 억새의 하얀 숲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중 향교 앞이 가장 볼만하다고 하였다.



 향교에서 서둘러 전주천으로 갔다. 하늘의 먹구름도 바람에 밀려났는지 잠시 햇살이 비추었다. 바람은 여전히 심하였다. 하천가에 도착하니 어디서 “쏴아~.......쏴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래를 내려보니 “아” 햇살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억새들이 일제히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처녀의 하얀 속살이 햇살에 비춰 더욱 옥같이 맑아 보이듯 해를 향하고 있는 억새의 모습은 눈부실 정도였다.



 처음에는 바람을 원망하였지만 이번에는 바람이 있어 행복하였다. 억새는 바람이라는 친구를 만나야 흥이 난다. 해만 바라보던 억새가 바람을 만나니 처음에는 덩실덩실 어깨춤으로 흥을 내다 나중에는 제 흥에 겨워 온몸을 던져 춤을 춘다.



 억새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다리 공사로 어수선한 분위기는 억새 숲에 금세 묻혀 버렸다. 바람에 몸을 던진 억새의 신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반 시각이나 흘렀을까. 아쉬웠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주에 가면 한옥마을은 누구나 들린다. 한옥마을의 끝에 있는 향교와 전주천의 가을 억새는 한적하니 거닐기 좋은 숨은 명소이다. 전주시에서도 전주천의 억새를 잘 관리하여 축제로 만든다면 한옥마을과 연계되어 전주의 새로운 명소가 되리라고 여행자는 자신한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