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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천하 제일의 참선 암자 '지리산 상무주암'

천하 제일참선 암자 '지리산 상무주암'
- 해발 1,100 고지의 가장 운치있는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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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의 사립문을 벗어나면 상무주암 가는 길이다.
수백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는
잠시 발쉼을 하기에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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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돌길이 끝나면 산죽이 어우러진 흙길이다.
 산죽숲은 해방 후 지리산 빨치산의 환자 비트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

하늘마저 가린 울창한 숲은 암자에 이르는 동안 계속된다.
잘 다듬어진 돌길이 제법 가파르다.
숨이 턱에 차올 무렵 오르막길은 끝이 나고
산성의 석문처럼 우람한 바위가 길을 지키는 평평한 터가 나타난다.
흔히 '비티재'라고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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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을 올라서면 상무주까지는 호젓한 능선 산행길이다.

돌길이 끝난 오르막길을 벗어나면 발바닥이 편안해지는 흙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산능선을 오르는 길이여서 전망도 좋으려니와
산죽과 소나무, 바위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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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 직전에 10평 남짓한 바위반석이 있다.
천왕봉에서 벽소령으로 이어진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황홀한 들꽃이 지천에 피어 있고
흙길의 싱그러움이 발마저 상쾌하게 한다.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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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노라니 고사목 한 그루가 반석 위에 누워 있다.
세월의 풍파에 지친 고사목은 하늘 아래에서 영원한 휴식을 하고 있다.
죽은 나무 옆의 멋드러진 노송 한 그루가 바위벼랑에 위태하게 서 있다.
족히 10여 평은 될 법한 반석에는 생과 사가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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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의 호젓한 맛에 푹 빠져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아무 잡념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걸을 뿐.......

암자를 찾는 이유는 암자 그 자체보다 암자로 가는 길의 즐거움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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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암上無住庵
오래도록 가슴 속에 담아 온 암자였다.
언젠가 꼭 가야한다는 일종의 소명의식같은 것이 나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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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새에 얼기설기 지은 남자용 해우소다.

"그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에 제일이라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대오한 보조국사 지눌이 상무주를 일러 '천하제일갑지'라고 하였다.
이 글은 전남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비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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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울타리에 소담히 자리한 집 한 채를 돌아가니
 움막처럼 얼기설기 엮은 해우소가 바위 사이에 있었다.
바위를 돌아가니 상무주라는 현판과 함께 스님 한 분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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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아지른 듯한 산비탈을 이처럼 알뜰한 텃밭으로 일구느라 얼마나 많은 공덕이 필요했을까.
손바닥만한 층층 밭들이 멀리 지리산 능선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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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 앞의 텃밭 깊은 산 속의 깍아지른 경사에 정성들여 일군 텃밭이 경이롭다.

"스님,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

"스님,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투로 거절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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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라지만 남의 집이나 다름없으니 예의상 물었는데 약간은 당황스럽다.
하는 수 없이 문수암으로 길을 잡았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의 평상에 앉아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스님에게 갔다.
스님은 묵묵히 풀을 베고 있었다.
"스님 정말 죄송합니다. 법당만 한 번 찍으면 안될까요?"
고집스런 여행자의 부탁에 스님이 한마디 툭 던지신다.
"뭐할려구, 사진을 찍으려 하지."
" 몇 해 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인데, 이제 와서 그냥 갈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요."
"그럼, 안에는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한 번 찍고 가요."
"요즈음 사람들이 부쩍 많이 와. 도대체 정신이 사나와서 말이지.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어딘가에 올리는가 보더라구.
그깟 영상이 뭐길래"

순간 부끄럽고 뜨끔했다.
간절함이 지나쳐 상무주를 그저 마음에만 담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스님은 선승으로 유명한 현기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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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암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봉(원광)스님이 上無住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경봉스님은 뒷간을 가리키는 해우소라는 말을 처음 쓴 분으로 유명하다
.

보조국사 지눌은 이곳 상무주에서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사량분별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반연(攀緣)"에 응하는 곳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선하지 않아야만 홀연히 눈이 열리어서 이것이 집안의 일임을 알 수 있느니라,"
는 구절을 접하고는 대오(깨달음)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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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로 엮은 울타리

상무주는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198년 봄부터 1200년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지눌은 상무주암에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선에만 몰입하였다.
해발 1,100미터에 자리한 상무주암에 머물면
 지리산에서 가장 운치있는 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무주의 상은 부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요.
무주無住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니
중생은 속세의 갖은 물욕과 영화에 머문다면
진정한 수행자는 머무름이 없는 진리에 머문다는 의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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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는 예부터 누구나 간절히 오길 바라던 암자였다.
"비 개인 뒤 푸른 기운 저 멀리 피어날 때,
숲 속에서 우연히 암자 승려 만났네.
두류산 오르자고 은근히 약속하니
구름 서린 제일봉에 이내 몸이 오른 듯"
조선의 문인 박여량이 상무주암의 승려를 만나 지어준 시다.
금대암을 찾았던 김일손은 상무주암을 가보고 싶어했으나
비가 와서 불어난 냇물로 인해 상무주를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도가 반쯤 닦인 의신조사가 하무주는 21일, 중무주는 7일,
상무주는 하루만에 도를 이룰 수있다는 말에 그곳으로 들어가 터를 잡고 무주조사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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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 음정, 양정 마을(삼정) 정경

정확히 말하자면 상무주암은 삼정산에 있다.
 지리산 상무주암이라 한 것은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암자가 있다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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