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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겨울철 설경이 아름다운 내소사 지장암

겨울철 설경이 아름다운 내소사 지장암
-철인哲人이 살기 좋은 능가산 지장암



내가 좋아하는 절집, 내소사.
비, 눈, 바람, 단풍, 연둣빛, 아니 아무것도 없어도 마냥 좋은 절집이다. 이 정갈한 내소사의 경내에 지장암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을 얼마간 걷다 보면 오른쪽에 지장암이라고 적힌 바위가 있다. 이 길을 따라 100여 미터 가면 지장암이 있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

절집은 소담하다. 선방인 서래선림, 나한전, 요사채, 정랑이 암자의 전부이다. 인자한 관음봉과 믿음직한 사자바위가 있어 눈 속에 갇힌 암자가 오히려 훈훈하다. 장독대에 손가락 길이만큼 쌓인 눈이 따사롭게만 느껴진다.


청련암에는 시인이 살기 좋고 지장암에는 철인이 살기 좋다고 했던가. 시나 한 수 뽑을 빼어난 풍광은 아니지만 지장암은 깊이 침잠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장암은 내소사의 유명한 선승인 해안스님이 서래선림을 열어 참선도 하고 선시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쥐고 오는 벗이 있다면
굳이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이른 새벽에 홀로 앉아 향(香)을 사르고
산창(山窓)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佛經)을 아니 배워도 좋다.


지장암 나한전

저문 봄날 지는 꽃잎을 보고
귀촉도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라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구름을 찾아가다가 바랑을 베고
바위에 기대어 잠든 스님을 보거든
굳이 도(道)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해 저문 산야에서 나그네를 만나거든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물을 것이 없이
굳이 오고가는 세상사를 들추지 않아도 좋다.



굳이 고요한 달밤이 아니어도 인적 하나 없는 암자 마당에 서서 가만히 시를 읊어 본다. 해안 스님의 이 시 한 수가 스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단박에 알게 한다.

 

겨울철 설경이 제일 아름답다는 지장암에 눈이 머물고 이따금 바람이 스쳐갈 뿐이었다. 대숲과 솔숲에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일순 사라져 버린다. 스님의 시만 간혹 귓전을 때릴 뿐 바람마저 숨을 멈추었다.

지장암 서래선림西來禪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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