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방송 후 남해독일마을은?
아침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TV를 보던 여덟 살 난 딸이 뜬금없이 "아빠, 우리 저기 가 보자"고 했다. 뭔가 싶어 TV로 고개를 돌리니 1박2일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김종민이 자장면을 먹는 장면이었다. "남해독일마을이네. 가고 싶어" "응. 아빠, 그럼 저기 독일 사람들이 살아." "음, 옛날 독일에 갔던 한국 사람들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살고 있지. 함께 온 독일 사람도 있고." "그럼, 베토벤도 있겠네." "어? 베토벤은 나이가 많아 죽었는데...." 적이 실망한 눈치다.
사실 이날, 폐암을 앓던 후배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삼천포(사천시)에 문상을 가야 했다. 저녁에 일정이 있어 장례식장을 오후에 들린 후 딸애의 소원도 들어줄 겸 독일마을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삼천포 대교가 있는 초양도, 늑도 일대는 유채꽃이 만발하였다. 다리를 건너면 창선섬이다. 500년 된 후박나무를 잠시 눈에 담고 지족개 죽방렴을 달리는 차창으로 얼핏 보았다. 사실 남해와 하동은 한때 번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라 곧장 독일마을로 갔다.
삼동면 소재지를 지나 고개를 넘으니 물건 어부방조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산비탈에 독일마을이 보이는 순간,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이럴 때에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걷는 게 좋다.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샛길을 통해 독일마을로 향했다. 주말이면 늘 붐비는 곳이지만 지난 주 1박2일 방송 후 사람들이 예전보다 몇 배 더 몰려든 것 같다. 김종민이 자장면만 안 먹었어도....
샛길은 한적했다. "아빠, 이 길을 어떻게 알아."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만날 아빠와 티격태격 싸우던 딸아이도 이때만은 아빠를 칭찬한다. 별일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집 앞 마늘밭을 살피고 있었다. 마늘이 허리까지 닿을 만큼 토실토실 잘 자랐다. 과연 남해의 특산물이다.
잠시 막히던 도로로 마을 안쪽에 들어서니 뚫렸다. 시간이 오후 네 시를 넘기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여행자의 사진은 늘 많은 사람을 피하는 습성이 있는 지라, 이렇게 단출한 가족 모습을 담는 게 좋다.
앞서가던 아이가 멈춘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건물 밖으로 달팽이처럼 올린 계단을 본 것이었다. "우리 여기 살면 안 돼." 아이의 눈에도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시골이 싫다며." "그래도 여기는 너무 좋아." 늘 시골타령을 하는 여행자에게 반기를 들던 아이가 오늘은 달랐다. 예쁜 집들이 좋았던 모양이다. 여행자가 생각하는 시골집과 아이가 생각하는 시골집은 판이하게 다르다. 여행자는 허름한 집이 좋다.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참 좋았다. 정말 마을 이름처럼 '물건'이다.
어부방조림을 보니 끼적거리고 싶은 병이 도질라 한다. 오늘은 가볍게....
다시 봐도 전망 조오타.
<뾰족지붕에 뾰족 창문이...>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의 집도 이럴 테지.
"아빠, 철수네 집은 어디야."
지나가는 사람이 저 아래라고 했다.
아이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1박2일에서 김종민이 자장면을 먹은 철수네집.
"어. 김종민이 없는데..." 철수네 집 앞에서 아이가 실망한 눈치다. 지난 17일 예고편에서 자장면 먹는 장면이 나오니 오늘(24일) 촬영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쯤 되면 성가시다. 그래도 설명은 해야 한다. 1박2일은 한꺼번에 미리 카메라로 찍어서 일요일에 두세 번 나누어서 방송한다고. 김종민은 자장면을 이미 먹었고 남해를 떠났다고 등.
'아, 그래서 TV 볼 때는 어두운 밤이었는데 김종민이 자장면을 먹을 때에는 낮이었구나." 혼자 중얼거린다. 여덟 살 난 딸애는 1박2일이 방송 당일 촬영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이곳에 오면 연예인(김종민)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던 모양.
한바탕 웃고 나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송의 힘은 역시 대단.
아이 때문에 얼떨결에 온 남해독일마을. 아이는 어쩜 ‘자장면의 환상’을 이곳에서 깼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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