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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TV, 영화 촬영지

1박2일에 나온 충무김밥과 욕지도의 비경


 

1박2일에 나온 충무김밥과 욕지도의 비경



통영여객선터미널 주위에는 충무김밥을 하는 곳이 많이 있지만 그 중 <뚱보할매김밥집>과 <한일김밥>이 이름나 있다. 충무김밥은 선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뱃사람들에게 식사용으로 팔았던 데서 유래한다. 이 때만 해도 지금의 김밥처럼 김밥 안에 속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맛이 변질되는 등 보관상의 문제가 생겼다. 이에 반찬과 김밥을 분리해내었는데, 이것이 충무김밥의 효시가 되었다.

통영나들목을 빠져 나와 문화예술회관방면으로 향한다. 중앙시장을 지나면 바다쪽에 거북선이 보이는데 여기가 문화마당이다. 문화마당 맞은 편에 김밥집이 즐비한 곳에  <뚱보할매김밥집>과 <한일김밥>이 있다.

  노적마을과 내초도 - 노적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통영 욕지도는 우리나라에서 마흔 네번째 큰 섬이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32km거리에 있으며, 소요시간은 1시간 10여 분이 걸린다. 사슴이 많아 녹도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두미도·상노대도·하노대도·우도·연화도 등 9개의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가 있는 욕지면의 중심 섬이다.

  욕지항과 욕지면 일대

100여 년 전에 한 노승이 시자승을 데리고 연화도의 상봉에 올랐는데, 시자승이 도에 대해 묻자 '욕지도 관세존도欲知島觀世尊島'라고 답하며 이 섬을 가리킨 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름에 관한 유래설이 몇 가지 더 전해진다.

 입석마을 가는 길 언덕배기에 피어난 동백꽃


 
입석마을과 조선포 - 입석마을 사이의 비탈길로 올라가면 노적마을과 통단마을로 갈 수 있다. 섬의 산비탈에는 수확을 끝낸 고구마밭들이 그 줄기만 남겨 놓은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통단 가는 길 - 비포장 흙길과 포장길이 반복되어 이어진다. 여행자가 보기에는 욕지도 최고의 길이 아닌가 싶다. 사진 오른쪽의 전봇대가 서 있는 좁은 도로를 따라 가면 통단 마을의 해안절벽 위 마지막 집 두 채를 만날 수 있다.


 

개미목 - 바다 사이의 땅이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연결되어 있어 '개미목'이라 한다.


 

거북바위 - 개미목을 지나 혼곡에 있다. 용의 발톱 같기도 하고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같기도 하다. 전망대 못미처 왼편으로 조그만 샛길이 보이는데, 거기에서 가장 잘 보인다.


 

펠리칸바위 - 부리가 긴 펠리칸이 먼 바다를 향하여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그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보인다.


 

새천년기념공원(전망대) - 해맞이 장소로 유명하다. 야포, 노적, 삼여, 유동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삼여도 - 욕지도의 대표적인 비경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왕의 세 딸이 있었는데 마을에 900년 묵은 이무기로 변한 젊은 총각을 서로 사모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용왕이 노하여 세 딸을 돌로 변하게 하였다. 힘이 장사인 총각은 자기 여인을 돌로 만든 용왕이 미워 산을 밀어내어 두개의 섬으로 바다를 막아 버렸다. 훗날 세 여인이란 뜻으로 삼여라 불렀다. 지금도 삼여 주변에는 뱀이 많이 있다고 한다.



 

새에덴동산 -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유동마을 끝에 있다. 여유가 있으면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해안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가는 편이 좋다. 도로가 좁아 마주 오는 차량이 있을 경우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은 마을에서 좁은 시멘트 길로 오 분 정도 가면 된다. 포장길이 끝나는 시점에 공터가 있다. 여기에 주차를 하고 나면 두 갈래의 오솔길이 있다. 왼쪽 오솔길은 유동등대 가는 길이고, 새에덴동산은 오른쪽 길을 택하면 된다.


 욕지도에 천국 만든 새에덴동산 최숙자 할머니


욕지도의 끝자락에 할머니 모녀가 예쁜 동산을 꾸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유동마을로 향하였다. 등대가는 길을 뒤로 한 채 솔바람 소리 따뜻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새에덴동산' 바다를 안마당으로 삼고 푸른 대숲이 울타리를 이룬 곳에 최숙자 할머니와 그의 딸 윤자영씨 모녀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선생님, 사진만 찍으면 뭐한데요, 이리 와서 설명을 들어야 집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지." 여행자를 큰 소리로 부르는 최숙자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테이블과 의자에서 이 동산을 세우게 된 연유와 과정에 대해 설명하셨다.


 

1년 전 따님이 위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모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섬에 들어 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땅 밑의 돌을 캐어 그렇게 11년 동안의 피땀으로 이 동산을 일구었다고 한다. 동산을 만들고 기도하며 마음을 수양하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끼니도 쑥 같은 것을 뜯어 계절에 맞는 풀죽으로 때울 뿐이었다. 성자와 같은 이런 생활로 따님의 병도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항상 사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게 살아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하며 할머니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돌아오는 배에서 할머니의 오랜 사진첩에 쓰인 글귀를 떠올렸다.


‘이 세상 자신 있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남았을까요?’

무욕의 섬 욕지도에는 성자가 살고 있었다. (2008.4.3, 서울 메트로 기사에 실린 글)



욕지도에는 1박2일에 나온 도동해수욕장 외에도 덕동, 유동, 흰작살해수욕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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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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