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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도술로 700여 년을 끄떡없이 버텨온 고막다리





700여 년을 끄떡없이 버텨온 고막다리

나주에서 무안 방면으로 1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돌다리가 있다. 함평군 학교면에 있는 고막다리이다. 일명 ‘똑다리’ 또는 ‘떡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널다리형식이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명칭은 ‘함평 고막천 석교’로 보물 제1372호다.


고막다리가 있는 이곳은 함평군과 나주시의 경계를 따라 남북으로 흘러 영산강에 합류하는 고막천이 흐르고 있다. 여기에 동서로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예전 영산강 뱃길이 활발했을 때는 강을 거슬러 올라온 배들이 이곳까지 와서 장이 서기도 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원종 14년인 1273년에 무안 승달산 법천사의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치 나무를 베어내듯 자유롭게 돌을 자르고 맞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2001년 보수공사를 하면서 바닥기초로 쓰인 나무말뚝의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널다리 형식인 이 다리는 총 길이가 20여m, 폭 3.5m, 높이 2.5m 정도로 5개의 다릿발이 있다. 다릿발 위에 긴 멍엣돌을 걸치고 그 사이에 기다란 석재를 가로지른 후 마루를 깔듯이 판석을 깔아서 상판을 만들었다. 우리의 옛 건축물 마루에 흔히 보이는 우물마루 형식의 상판이다. 눈이 소복이 쌓여 상판의 형태는 볼 수 없었지만 그 생김새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널다리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다리의 형식이지만 홍교보다 안정성이 덜해 남아 있는 것은 홍교보다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고막다리가 700여 년 동안 끄떡없이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는 것은 고막대사의 도술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옛 석공의 긴 안목이 있었음을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문화재청 사진 자료


몇 차례에 걸쳐 고막천이 범람했음에도 이 다리가 견뎌온 것은 구조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다리의 기초를 세울 때 하천의 바닥에 생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고 그 위에 규격이 큰 장방형의 돌을 올려 급류에 휩쓸려 나가지 않도록 하였다. 즉 나무말뚝을 촘촘히 박아 지반보강을 했으며 그 주위에 잡석을 일정두께로 깔아 바닥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지 않는 공법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옛 다리에 콘크리트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 고막리에서 떡을 만들어서 이 다리를 건너 영산포 등지로 나가서 팔았다고 하여 ‘떡다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고막다리는 요즈음 같은 길이 닦이기 전에 나주나 영산포 등으로 나가는 중요한 길목 구실을 했던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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