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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신비의 섬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를 찾아, 울릉도 도보여행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를 찾아, 울릉도 도보여행


중국 곤륜산 위에는 신선이 산다는 현포玄圃가 있다. 태하에서 현포로 넘어가는 현포령 12구비 고갯길을 넘으면 멀리 앞바다로는 공암이 떠 있고, 뾰족하게 솟은 송곳산과 노인봉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항구 현포항을 만나게 된다. 중국의 설화를 빗대자면 이곳의 경치 또한 가히 신선이 살만한 곳이다.

 현포목교와 노인봉

예림원에서 나와 태하까지 걸을 요량이었다. 북면해안 절경의 으뜸으로 꼽히는 공암은 코끼리가 바다 깊숙이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장작을 패어 쌓아놓은 듯한 이 거대한 바위는 제주 대포동의 주상절리와 같은 현상이다.

 

파도소리가 점점 거세어진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금세라도 비를 퍼부을 것만 같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길을 걷다 비가 오면 멈추면 그만이지. 애초 정해진 길이라는 건 없는 법. 스스로 위안을 하며 타박타박 걸었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에 밀려 배 한 척이 바다 너머로 점점 멀어진다. 하늘이 검어지니 바다도 검어지고 바람마저 새까맣게 타버렸다. 현포玄圃. 예부터 가문작지, 거문작지, 흑소지, 현조지 등으로 불리었다. 동쪽에 있는 촛대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울릉도 개척 당시 배를 타고 와보니 대풍령에서 노인봉까지 약 15리나 되는 해안선이 까마득하게 보여서 ‘거문작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평소에는 바닷물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곳이다.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의 울릉도 부분을 보면 이 지역에 석장 20여 기와 탑이 있는 사찰 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에 촌락기지 7개소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하며 성지, 나선장, 선돌과 같은 유물, 유적이 많아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하고 있다.

 

노인봉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노인봉은 해발 200m의 암산이다. 겉으로 보기에 노인들의 주름살처럼 보여 노인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르게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어느 노인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눈이 많이 와서 마을로 돌아 올려고 했으나 끝내 폭설에 묻혀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 ‘노인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노인봉

현포항 목교 인근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을 만났다. 먼저 인사를 건네자 걸음을 멈췄다. “여기 혹시 고분군이 어디 있을까요?” "예?” 잘 못 알아듣겠다는 투다. “옛날 무덤 같은 것 말입니다.” 그제야 고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아, 고려장요. 이곳에서는 그 무덤들을 고려장으로 부른답니다. 마을을 지나 태하 가는 고갯길을 오르면 왼쪽에 초등학교가 보입니다. 초등학교 맞은편 언덕 아래에 집이 두 채 있는데 고려장은 거기 있지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그가 말을 건넸다. “여행 오셨나 봅니다.” “아, 예.” 이때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울릉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현포에 산다는 주민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현포가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앞이 탁 트인 곳이라 울릉도의 중심이라고 단언했다. 여행자도 그의 말에 백 번 공감했다. 사실 울릉도에서 이렇게 넓은 곳을 보기는 쉽지 않다. 태하 일대는 터가 넓기는 하지만 길게 이어진 지형이 양쪽 산에 가려 답답한 데 비해 이곳 현포는 산능선을 배경으로 앞과 양옆이 탁 트인 유일한 마을이다.

 현포목교와 노인봉

주민은 외지에서 자식 다 키우고 몇 년 전에 이곳 울릉도로 돌아왔다고 했다. “울릉도는 다른 섬과는 달리 물이 정말 많더군요.” “그렇죠. 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복 받은 섬이겠지요. 건데 우리 어릴 때에 비하면 수량이 10분의 3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땅에서 물이 솟는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많았지요.” 왜 줄었느냐는 여행자의 질문에 그는 나무가 울창해진 탓이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레 반문했다.

 현포테마박물관

“어디까지 갈 예정입니까?” “태하까지 갈까 합니다.” 울릉도 해안을 따라 마라톤을 했다는 그는 포장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현포에서 도동까지 걸어가면 하루가 꼬박 걸렸다고 했다. 해안을 따라 섬을 걸으면 건각이면 이틀, 조금 느린 사람은 3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울릉도는 3무 5다라 하여 뱀이 없는데 근래에 시험 삼아 뱀을 풀었는데도 이내 죽어버렸다고 했다. 토질의 문제인지 어떤 연유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현포항에는 바다수영을 할 때 안전을 위한 파도막이가 있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어지자 주민에게 인사를 하고 현포테마박물관으로 향했다.

 현포항

현포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테마박물관은 2005년에 개장하여 3000여점의 패류, 100여점의 어류 표본, 300여점의 동물 박제 등이 전시되어있다. 한적한 어촌마을에 위치한 소형 박물관은 입장료마저 없어 지나는 길에 들릴 만했다.

 

주민이 가리킨 대로 마을을 벗어나니 오르막길이 나왔다. 현포마을 표지석에서 초등학교와 맞은편 언덕 아래로 민가가 보였다. 민가 옆으로 수풀에 덮인 고분군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현포고분군

바다로 가는 길을 택했다. 오래전 알콩달콩 가족들이 살았을 바닷가 집은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녹이 슨 지붕과 창, 어선의 기름을 저장했을 드럼통이 마당을 뒹굴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탓에 집은 더 쓸쓸했다.

  현포고분군

고분군은 기대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직경이 10~15m이고 높이가 5m 내외 정도이다. 이곳 현포에는 울릉도에서 가장 많은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고분들은 모두 40여기의 석총 양식이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된 고분은 10기이다. 석실의 내부는 기단을 만들고 가운데 장방형의 돌방을 만들어 시신을 넣고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든 형태로 육지의 무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무덤 형태이다.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분 뒤의 민가로 들어서니 할아버지 한 분이 평상에 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고분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할아버지의 깊은 침묵에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살며시 비켜갔다.

 

초등학교 앞, 길에 서니 비가 우두둑 쏟아졌다. 우산도, 우의도 없어 태하까지 걷기는 무리였다. 잰걸음으로 현포마을로 향했다. 마침 버스가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 여행팁 예림원에서 현포초등학교까지는 약 3.5km 정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천부에서 현포까지는 약 6km, 느릿느릿 걸어도 두 시간 정도면 된다. 40여분 간격으로 있는 마을버스를 타고 천부나 현포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코끼리바위(공암), 예림원, 추산 송곳봉, 노인봉, 현포테마박물관, 현포고분군 등 걸으면서 둘러볼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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