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안개가 몽환적인 보길도 예송리
옛날 열한 곳의 명당이 있었다하여 보길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섬. 여행자는 이곳을 세 번이나 찾았었다. 제법 이 섬에 대해 안다고 거들먹거리기도 하였지만 사실 이 섬의 속살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무언가 모를 부족함이 있었다. 아니 세 번의 기억이 먼 산 너머의 그것처럼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은 늘 백지에서 시작된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휴식”이었다.
완도 화흥포에서 뱃길로 사십여 분. 간간히 내리는 비 사이로, 아랫도리가 안개에 휘감긴 섬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 뱃길의 끝에 짙은 상록수림에 둘러싸인 예송리가 있다.
이튿날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전망대에 올랐으나 보이는 건 짙은 안개 속에 가끔 머리를 내미는 섬들 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어져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당사도(자개도)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비오는 날 옛 정원을 거니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일행은 같이 움직였다. 세연정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더듬은 후 우리는 다시 예송리를 찾았다.
전망대에서 본 예송리
예송리 못 미쳐 언덕 위에는 정자가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면 예송리 일대 뿐만 아니라 주변의 섬 풍광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다. 기도(깃대섬), 갈마도(안장섬), 당사도(자개도), 예작도, 소도(작은섬), 복생도 등 수많은 섬들이 옥빛 바다에 점을 찍었다. 맑은 날이면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기도(깃대섬)
여기에서 보는 섬 풍광도 멋지지만 섬에 얽힌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섬의 형태가 ‘다만 只’자를 닮아 ‘자지도’로 불리다가 일제가 소안도에 소규모 군항을 구축한 후 ‘항구의 문’이라는 뜻으로 ‘항문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당사도는 그 이름만 들어도 배시시 웃게 된다. 통일신라 때에 신라와 교역을 하던 당나라 상인들이 이 섬의 절에서 제를 올렸다하여 ‘당사도’로 개명했다고 한다.
예송리 해변
날개 달린 아기장수의 슬픈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기섬은 아기장수의 군사들이 많은 깃발을 올려 기도로 불리게 되었다. 아기장수가 죽자 갈마섬에서는 천마의 슬픈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으며, 임금 王자 형상의 당사도 옆에서는 임금의 왕관을 닮은 모습을 한 복생도가 갑자기 물속에서 솟아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예의범절에 밝아 예작도라 불린 섬은 그 모양마저 반듯하다. 혹은 마을 앞에 우거진 방풍림이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어부에게 예의를 갖추어 맞이하는 듯한 형태라 하여 예작도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전망대에서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보길도에는 해수욕장이 중리, 통리, 예송리 세 곳에 있다. 통리해수욕장은 보길도 선착장에서 예송리 가는 길에서 보면 왼편에 있다.
바로 앞에 있는 목섬에 신비로운 바닷길이 하루에 두 번이나 열리는 통리 해수욕장은 작은 솔숲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곳이다. 중리 해수욕장은 통리보다 조금 규모가 크며 숙박 시설과 편의시설이 있어 가족 단위의 피서지로 적합하다.
그중 보길도 해변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예송리는 1.4km 에 달하는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과 깻돌이라는 검푸른 빛깔의 조약돌이 유명하다. 예작도, 당사도, 갈마도, 소안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해변을 둘러싸고 있어 호수처럼 잔잔하고 아늑하다.
해가 나자 구름과 안개도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비는 구름과 안개를 몰고 왔고 햇빛은 구름과 안개를 옥빛 바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2박 3일의 보길도 여행은 아련한 몽환 속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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