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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이런 집에 살고 싶다. 취화선 촬영지

 


이런 집에 살고 싶다. 취화선 촬영지

 

누군가 사립문을 살짝 엽니다. 산기슭 오두막에 벗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술동이가 있습니다. 햇볕에 그을린 그는 나를 보자 활짝 웃습니다. "여보게 친구, 술 한 잔 하시게."

 

초라한 나의 초당은 벗이 와 더욱 향기롭습니다. "어서 오시게." 술동이를 마당에 내려놓자마자 사발 먼저 챙깁니다. 찻잔도 되고 술잔도 되는 그냥 막사발입니다. 이 그릇 안을 보면 작은 옹달샘이 비칩니다. 금방이라도 샘물이 솟을 듯합니다.


딸아이의 관심은 오직 민들레입니다. 꽃을 꺾지 말라는 아비의 강권을 내내 못 마땅히 여기던 아이는 꽃이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꽃이 지자 하얀 솜털 같은 민들레홀씨를 아이는 바람에 날립니다. 후~후~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맷돌로 쌓은 층계는 그 자체로 예술입니다. 사랑채 구실을 했을 대숲의 정자는 모든 길손들이 쉬어가는 쉼터이겠지요.


아, 아쉽게도 이곳은 여행자의 집이 아닙니다. 한바탕 꿈이었습니다. 꿈결에서 살고 싶은 집일뿐이지요. 안채 부엌 문짝에는 집주인으로 보이는 어느 부부의 문패가 버젓이 걸려 있습니다. 여행자는 단지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집은 온통 대나무입니다. 지붕도 대나무고, 벽도 대나무고, 하다못해 마당의 바지랑대도 대나무입니다. 산 대나무 숲이 죽은 대나무 집을 감싸며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 도원 같은 집 앞에는 취화선 촬영지가 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천재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임권택 감독의 작품 취화선 촬영지입니다. 배우 최민식의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이곳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에서는 장승업의 일대기를 마감하는 취화선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였습니다. 백련리 사기마을은 아주 옛날 신라시대의 가마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터도 3개나 남아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들의 국보로 지정하여 보물로 받들고 있는 찻잔(이도차완井戶茶碗)도 알고 보면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은 이곳의 많은 도자기를 강탈했고 도공들을 일본으로 납치해 갔습니다. 일본의 차인들은 이곳 가마터의 옛 지명인 문골을 이도井戶라 불렀습니다. 이곳은 진해의 웅천도요지와 함께 “이도차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입니다.


장독대 옆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곳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물입니다. 이렇게 앙증맞나 싶어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본 우물은 그 깊이가 까마득하였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깊이를 알지 못하는 세태를 우물은 깊은 울림으로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감나무 두 그루가 앙상합니다. 아내는 오랜 시간동안 홀로 장독대를 지켜왔습니다. 긴 세월 세상을 떠돈 남편은 미안함에 침묵으로 서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집의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야겠다는 각오가 엿보입니다. 죽은 혀처럼 마른 검은 줄기에도 연둣빛의 희망이 부풀어 오릅니다.


숯은 오래되었습니다. 주인이 떠난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꿋꿋이 터를 지키는 것은 화려한 불꽃을 태우던 숯도 아니고 말 많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하면서도 오랜 세월을 버텨온 가마입니다. 천성이 땅이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그저 머물 뿐입니다.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잎을 푸르게 하고, 가을이면 마지막 붉음을 불태우고, 겨울이면 땅으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오직 푸른 것은 대나무입니다. 어떤 몸짓보다 어떤 말보다 굳게 다문 입은 그 이상을 말합니다. 그도 입을 닫았습니다.


 

☞ 이곳은 경남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도요지에 있는 영화 <취화선 촬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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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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