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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봄빛 넘치는 고향, 보리밭 꽃길을 걷다



 

그리운 남쪽, 봄빛 넘치는 고향의 봄

 

주말을 맞아 고향을 찾았습니다. 제일 먼저 맞닥뜨린 풍경은 보리밭이었습니다. 집 앞을 흐르는 개울 너머로 짙은 연둣빛의 보리밭이 여행자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내년이면 팔순인 노모가 노란 꽃길을 걷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다지입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온 무심한 자식과 며느리, 손녀를 위해 싱싱한 상추를 캡니다. 도시에서 파는 하우스 상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소한 맛이 일품인 노지 상추입니다.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작은 어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논에서 일을 합니다. 아내는 갓 시집왔을 때 작은 어머니의 농사일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정말 농사가 천직인 줄 알고 열심히 사시는 작은 어머니입니다. 작은 어머니께 인사를 하자 땀을 훔치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아버지 산소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오랜만에 걸어 보는 논두렁길이 참 정겹습니다. 아이도 중심을 잡아야 걸을 수 있는 논두렁길이 재미있나 봅니다. 증조부께서 계곡 가에 지은 회암정이 보입니다. '맷돌바위'라는 아주 정겨운 이름을 가진 마을입니다. 친척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입니다.

 

산소 가는 길에 있는 어느 집안의 무덤가에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할미꽃은 무덤가에 많이 피어 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잘 자라는 꽃이지요. 무덤가에 제일 잘 어울리는 꽃이기도 하구요.

 

아버지 산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어 고향에 오면 빠지지 않고 매번 인사를 드립니다. 자식들이 자주 찾아올 수 있고 물이 나지 않으며 햇볕이 잘 들면 그곳이 명당이겠지요.

 

산소 주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화려한 꽃나무보다 우리에게 정겨운 진달래를 심었는데 올해 꽃을 피웠군요.

 

아직 새순이 나오지 않은 마른 잔디 사이로 양지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직 이승이 그리울 아버지에게 좋은 벗이 될 듯합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 인근 매화 밭으로 향했습니다. 산골짜기의 논들이 농사를 짓지 않아 묵은 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땅을 놀리지 않으려 매화 등의 과실수를 심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매화 수백그루가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고향에서 매화 향에 맘껏 취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카메라를 꺼내 쉬지 않고 찍습니다. 사진은 자기 마음대로 찍습니다. 찍고 싶으면 찍고 싫으면 안 찍습니다. 사진에 집착을 하는 어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부녀가 난리군" 매번 여행자와 딸아이가 사진 찍는 걸 보고 비웃던 아내도 봄꽃의 유혹을 떨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아이가 귀찮을 정도로 포즈를 요구합니다. 이날따라 아이도 모델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고향의 봄날은 좋았습니다.

 

폼도 안 나는데 괜히 분위기를 잡는 아내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꽃구경 가서 인파에 지치는 것보다 이곳이 훨씬 좋다고 합니다. 둘 다 천성적으로 사람 붐비는 곳은 딱 질색이랍니다.

 

홍일점이라고 했던가요. 온통 하얀 매화 밭 사이로 홍매화 한 그루가 피어 있습니다. 사실 홍매화(개량종)는 화려하지만 은은한 맛은 덜합니다.

 

"아빠, 나무가 키스한다. 힛힛" "어디?" "저기 봐. 빨간 꽃과 하얀 꽃이 서로 뽀뽀하잖아." 과연 그랬습니다. 가지가 뒤섞인 홍매와 백매가 마치 키스하는 듯했습니다. 아이의 눈은 언제나 순수하겠지요.

 

산골짜기여서 그런지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반사된 매화 밭은 온통 하얀 눈이 내리는 듯하였습니다.

 

매화 밭 아래에는 넓은 보리밭이 있습니다. 아이는 뒤뚱뒤뚱하며 고랑을 따라 보리밭 샛길을 걷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우리 점프해 볼까." 오늘따라 아이가 순순히 잘 따라 줍니다. "준비~, 시작~"

 

이는 신이 났는지 몇 번을 더했습니다. 요즈음 체력 검사를 앞두고 밥 먹는 양까지 줄이더군요. 살이 쪘다고 놀렸더니 일곱 살 아이가 정색을 하며 먹는 양을 줄였습니다. 미안해서 다시는 안 놀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개불알꽃을 보았습니다. 이 꽃도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열매(씨)가 불알 두 쪽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라는군요. 참 재미있는 이름입니다. 요즈음은 민망해서인지 봄까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개불알꽃이 더 좋은 것 같은데...


 

고향의 봄은 나른했습니다. 서두름 없이 느릿느릿. 그저 순리대로 사는 고향은 언제나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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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