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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봄밤, 꿈속에서도 그리던 산사, 보성 대원사



봄밤, 꿈속에서도 그리던 산사, 보성 대원사




한 번 가면 잊혀지지 않는 사찰이 있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진한 그 무엇 때문에 언젠가 다시 가리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산사가 있다.
딱히 좋은 그 무엇도 없고 마땅히 내세울 만한 볼거리도 없는데도
 그냥 문득 문득 생각나는 산사가 있다.





봄밤, 소쩍새 소리에 잠을 깨는가 싶으면 아련히 기억 저 편에서 떠오르는 산사.
 일장춘몽이 한낱 떠도는 구름같진대 바람처럼 다녀오고 싶은 그런 산사 말이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깊숙한 곳에 대원사는 꿈결처럼 자리하고 있다.
대원사의 긴 계곡은 탯줄처럼 어머니의 아늑하고 푸근한 품을 찾아가는 길이다.


4년 전이었던가. 연꽃이 화려하게 피었을 즈음 이곳을 찾았었다.
오지물확과 항아리 곳곳에 물을 담고 연꽃 한 떨기를 심어 놓은 스님들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었다.



조금의 빈 땅이라도 그저 놀리지 않고 꽃이며 나무를 심고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 절집을 가꾸는 정성이 배여 있었다.




연지문의 앙증맞은 돌다리와 수선화가 만발한 연지,
연못에 비치는 범종각 물그림자, 문 사이로 징검돌이 아련한 듯 극락전으로 인도하였다.




오늘 다시 오니 홍매화, 수선화, 산수유, 개나리, 동백......
산사는 온통 꽃밭이다.
다만, 봄바람에 솨아 솨아 가는 소리를 내는 대숲만 여전하였다.


대원사.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천봉산 깊숙이 있다.
선산군 모례에 숨어 살던 아도화상은 어인 일로 이곳에 와서 절을 세웠을까.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파했다고 전해지는 아도화상이 이곳을 오게 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산군 모례에 숨어 살던 아도화상이 어느날 꿈속에서 봉황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 아도를 죽이려 한다는 봉황의 말에 황급이 일어나 보니 봉황이 날개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봉황을 따라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으나 봉황은 사라져 버렸다.



봉황때문에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호남의 산을 헤매대가
마침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을 찾아내어
 산이름을 천봉산이라 하고 대원사를 지었다고 한다.
(혹은 절을 중창한 자진원오국사가 중봉산을 천봉산으로, 죽원사를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원사는 여순사건으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극락전 옆에는 대원사를 크게 중창한 자진원오국사의 부도가 있다.


부도에서 산길을 따라 가면 산신각이다.
녹차와 동백이 심겨져 있는 호롯한 길이다.


수관정이 있는 곳은 음기가 강하다.
뭔지 모를 음습한 기운이 이곳을 감돈다.
몇 년 전에 나는 이곳에서 우연인지는 몰라도 순간적으로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 기이한 일을 겪었다.



대원사는 현재 태아 영가를 천도하는 사찰로 변모하였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영혼들을 달래는 곳이여서 그런지
절집은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다.


대원사 벚꽃길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다음 주말쯤이면 벚꽃이 만개할 듯 하니
5km에 달하는 산속 벚꽃길을 만끽하리라.


떠나라
낯선 곳으로

......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고은의 '낯선 곳' 중에서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