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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여행의 기술, 칼럼

알베르 카뮈의 여행일기

 

 

 

 

 

알베르 카뮈의 <여행일기>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1946년 3월부터 5월까지 미국여행을, 1949년 6월에서 8월까지 남아메리카를 여행했다. 그는 여행에서 기록한 것들을 이후 그의 작품에 다루었다. 미국 여행 기록은 <뉴욕의 비>로, 남아메리카 여행 기록의 단편들은 <가장 가까운 바다>, <자라나는 돌>에서 활용됐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뿌리를 찾아서 간 스페인의 발레아레스 섬으로의 여행은 산문 <삶에의 사랑>으로, 중부 유럽, 특히 프라하로의 여행은 산문 <영혼 속의 죽음>, 소설 <행복한 죽음>, 희곡 <오해>로, 이탈리아 여행 경험은 소설 <행복한 죽음>과 산문 <사막>으로 나타났다.

 

<작가수첩>에서 밝혔듯이 카뮈에게 있어 여행은 “어려움에 대한 관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에게 여행은 일종의 고행이었고 자기완성의 한 형식 혹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삶의 참다운 얼굴을 발견하는 수단이었다.

 

 

 

그의 여행을 굳이 구분하자면, 2차 세계 대전 전까지의 여행이 고행과 자기완성의 한 과정이었다면 그 후의 여행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발견을 통한 연대의식의 실현이었다.

 

1946년 3월에서 5월까지 약 3개월에 걸친 카뮈의 미국 여행은 네 번째의 긴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타자와의 만남, 즉 강연, 회견, 토론 등 문화적 사명의 실천과 관련이 있다.

 

종전 직후인 1946년 3월 10일 르아브로 항을 출발한 카뮈는 보름 뒤인 3월 25일 뉴옥 항에 도착한다. 전쟁의 폐허에서 온 그는 미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구체적인 것들’과 ‘사소한 것들’이다.

 

5월 25일 카뮈는 브롬리가 구입한 새 차로 함께 캐나다 여행을 떠난다. 5월 26일 몬트리올에 도착한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카뮈는 열흘간의 고단한 바다 여행을 거쳐 6월 21일 프랑스 보르도에 도착한다. 그는 배 위에서 깊은 여행을 느끼곤 했는데, 배 위에선 “모든 인간관계가 빠른 속도로 형성”되어 그 자체가 관찰 대상이었던 것이다.

 

1949년 초, 프랑스 외무성 문화교류국의 로제 세이두가 카뮈에게 다섯 번의 강연을 조건으로 남미 행을 제안했다. 1949년 6월 30일 카뮈는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떠난다. 15일간의 바다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바다 여행은 <여행일기>를 거쳐 후일 <가장 가까운 바다(항해일지)>라는 산문시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카뮈는 스스로 ‘금속 관’이라고 표현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주 ‘질식의 느낌’을 받는다. 그는 남미의 <여행일기> 여러 대목에서 비행기 여행에 대한 고통과 혐오, 심지어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카뮈의 남미 여행에 혼란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은 비행기뿐만 아니라 여행 일정을 짠 현지 책임자들의 미숙함과 카뮈 자신의 위태로운 건강도 크게 한몫을 했다.

 

카뮈의 남미 여행이 문학적으로 거두어들인 가장 의미심장한 두 작품이 산문시 <가장 가까운 바다(항해일지)>와 중편 소설 <자라나는 돌>인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이 여행으로 말미암아 이미 허약해진 카뮈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앞으로 2년 동안 <반항하는 인간> 집필을 계속하는 것 이외에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하는 수 없이 한가해진 이 기간을 이용, 자기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해 반성한다.

 

 


 

우리는 뉴욕 항을 거슬러 올라간다. 안개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안개 때문에 기막히게 멋진 광경. 질서, 힘, 경제력이 저기에 있다. 저렇게도 기막힌 비인간성 앞에서 심장이 떨린다. 28~29쪽.

 

대학생들과 보내는 오후. 학생들은 진정한 문제를 느끼고 있지 못하지만 그들이 향수를 느끼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생은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것이 다 동원되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학생들은 무언가 결핍을 느끼고 있다. 그들의 커다란 노력은 비장하다. 하지만 비극성이란 일단 바라본 후에 떨쳐버려야 할 것이지 보기도 전에 버려서는 안 된다. 40쪽.

 

이곳에서 인간관계가 아주 쉬운 것은 인간관계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겉껍질만 남습니다. 예의상, 그리고 게을러서. 41쪽.

 

어떤 한 사내가 여행 중에 별다른 생각 없이 어떤 자연 그대로인 고장의 외따로 떨어진 여인숙에 든다. 그런데 거기서 그 자연의 침묵, 아무 치장 없는 소박한 방,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 등이 그로 하여금 영원히 이곳에 머물며 과거의 자기 삶이었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그리하여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기별하지 말고 지내기로 결심하게 한다. (뉴욕 주 북쪽에 있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애디론댁 산맥 한가운데 있는 적은 여인숙 방에 들어가며 떠오른 느낌.) 46쪽.

 

뉴욕의 비. 끊임없이 내리며 모든 것을 씻어낸다. 회색의 안개 속에서 마천루들은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거대한 관들처럼 희끄무레하게 서 있다. 빗속에서 이 관들의 밑받침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51쪽.

 

쥘리앵 그린은 그의 <일기> 속에서 소설을 쓰는 성인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할까 자문하고 있다.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반항 없이는 소설도 없으니까. 혹 그렇지 않다면, 이 지상 세계와 인간을 비난하는 소설을 ― 절대적으로 사랑이 배제된 소설을 상상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한 일. 52쪽.

 

바다는 표면만 겨우 빛을 받고 있지만 바다의 깊은 어둠이 느껴진다. 바다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삶의 부름인 동시에 죽음에의 초대. 61쪽.

 

그러니 샹포르가 정확하게 꼬집어 말했듯이, 사교계에서 남의 호감을 사려면 자기가 알고 있는 많은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체념하고 배울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81쪽.

 

나는 여러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이 단조로운 자연과 이 광막한 공간을 바라본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지만 보는 이의 정신에 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경치다.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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