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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여행의 기술, 칼럼

나는 실크로드 1만 2000킬로미터를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30여 년간 기자로 살아온 이가, 그것도 정치부․경제부 기자를 지낸 이가, 어느 날 문득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것도 예순두 살이라는 나이에…. 베르나르 올리비에. 그는 은퇴 후인 1999년 실크로드에 자신을 던졌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하고 4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단 1킬로미터도 빠뜨리지 않고 걸어서, 그것도 혼자서, 1만 2000킬로미터의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이 4년간의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기록한 책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나는 걷는다』이다.

 

오래 묵은 책 한 권을 우연히 헌책방(소소책방)에서 발견했다. 한국에 소개된 지가 10년을 훌쩍 넘긴, 그래서 뇌리에서도 아주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던 책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무언지 모를 희열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스쳐갔던 기억들을 더듬어서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여행자라서 여행 관련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러나 미려한 문장으로 써내는 여행에세이와 과다할 정도의 정보를 쏟아내는 여행가이드북이 여행서적의 주요한 흐름인 작금의 현실에서, 이처럼 저자의 숨소리와 땀 냄새가 나는 책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수많은 여행서적 중에서 나의 머리를 온통 뒤흔든 책을 꼽으라면 겨우 몇 권에 불과할 것이다. 미려한 문장의 에세이도, 상세한 정보를 주는 가이드북도 결코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 실크로드 여행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를 간단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 있다. 여행기를 쓰는 이들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문구가 아닌가 싶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여행가다. 자신을 작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기존의 여행 작가보다 더 잘 쓰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면을 채우기보다 실제 경험한 것을 요약해서 쓰려 했기 때문이다.”

 

 

- 이번 여행에서 나의 불행은 내가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나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글을 써왔다. 그런데 도보여행자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비워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 나는 길을 떠났고, 조금 가다가 휴식을 취했다. 눈을 들어보니, 거북이 한 마리기 비탈길 위쪽에서 둥그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친구여. 미리 말해두지만, 난 너와 경주하지는 않을 거야.

 

- 완벽한 고독, 이는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비밀과 경계심이 너무나 많아 일부러 거리를 두는 신들은 단체 여행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다.

 

- 나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능적이고 실제적이고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이런 길들은 아무런 몽상도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 대상들은 하루에 30에서 40킬로미터, 즉 짐을 실은 낙타의 느린 걸음으로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을 걸었던 것이다.

 

- “여행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을 뿐이다.” - 아랍 속담 중에서

 

- 특히 순례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하루 평균 3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단련이 되면 육체의 개념 자체가 무화되곤 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에 가까이에 가 있다고나 할까. (…)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흔히 걷는 것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 고독한 여행자는 원래 짐 속에 두려움을 갖고 다니는 법이니까.

 

- 지혜란 길을 따라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 돌아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른 것을 향해서 똑바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하지만 콤포스텔라라는 목표는 당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니까요.”

 

- 길 끝에서 나는 현명함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 나를 덮치기 전에 헛되이 그것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것인가? 기질상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도 활동적인 나는, 내가 걸어온 이 느린 길 위에서 고요와 몰입, 영혼의 평화를 찾아야만 한다.

 

- 진정한 느림은 포기를 내포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또한 이 책의 성격에 대한 원칙도 세워놓고 있었다. 낯선 곳의 사람들과 경치와 풍습들을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소개하는 일반적인 기행문이 아닌, 오직 자신의 여정과 느낌들만을 사진 한 장 없이 꼼꼼하게 담아낼 것. 그의 여행이 달팽이의 지루한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