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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700년 만에 다시 핀 아라홍련, 과거로의 시간여행

 

 

 

700년 만에 다시 핀 연꽃, 과거로의 시간여행

 

가야시장을 빠져나와 고분군으로 향했다. 함안의 중심지인 가야읍의 군청 뒤편을 오르면 아라고분군이 나온다. 봉긋봉긋 솟은 고분들은 어찌 보면 조촐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풍요롭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전망이 꽤 뛰어난 이곳에 오르면 제일 먼저 3.1독립운동기념탑과 대면하게 된다.

 

3.1독립운동기념탑

 

경남에서 3.1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났던 칠북면 연개장터, 약 5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21명이 숨질 만큼 치열했던 군북, 함안 등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1967년 12월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일제시대 '마산형무소는 함안사람의 재실'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함안의 독립운동은 그 어느 지역보다 치열했다.

 

 

3.1운동기념탑 바로 뒤로 고분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이곳의 고분군을 사적 제84호인 말산리고분군과 제85호인 도항리고분군으로 나눠 불리다 2011년 7월 28일에 해제되어 사적 제515호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새로 태어났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고분은 3.1운동 기념탑 바로 뒤에 있는 고분이다. 봉토의 높이가 10m, 밑지름이 43m 정도라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이곳에 올라 고분을 둘러싼 주변 지형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이 정도면 작은 부족국가 하나쯤은 경영할 만한 도읍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고분에서 본 가야읍 전경

 

'아라가야'. 그 이름만 들어도 예쁘고 아련하다.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고대의 나라이름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안야국’에서 ‘안라국’이라는 이름이 맞다고들 하지만 입에 착 달라붙는 말은 아무래도 '아라가야'다.

 

 

무덤 사이로 산책로가 있다. 멈춘 고대의 시간 사이로 현재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오늘에 지친 이들이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과거의 언덕에 잠시 몸을 비벼 지금 살아야 될 이유를 찾는다.

 

 

가야시장의 시끌벅적한 오늘도 이곳에선 고요해진다. 잿빛구름이 하늘을 덮어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할 즈음, 고분에 바람이 분다. 무덤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소나무가 간간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흔들어 말해줄 뿐....

 

 

고분의 내부를 좀 더 보기 위해선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고분 아래로 내려가면 박물관 가는 길이다.

 

고분 아래로 박물관이 보이고 박물관 가는 길도 역시 고분 사이로 나 있다.

 

 

과거로 가는 길은 여전히 과거와 이어지고 현재의 길은 그 사이에 잠시 드러날 뿐이다.

 

함안박물관

 

함안박물관 입구 작은 연못에는 700년 전의 연꽃이 피어있다. 그중에서 검은 대형 화분에 핀 연꽃만 '아라홍련'이다. 박물관 직원의 말이다. '아라홍련'을 더 많이 보려면 박물관에서 나와 주차장 끝에 있는 화장실 옆으로 가면 시배지를 만나게 된다.

 

 700년 전 연씨를 발아시켜 꽃을 피운 아라홍련 시배지

 

그러나 가까이선 볼 수 없다. 철책으로 둘러쳐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역사성을 지닌 700년 전 아라홍련의 종근과 종자 유출을 방지하고 관광객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 참 멋진(?) 발상이다. 연꽃 때문에 사람이 상했다는 말을 내 들어본 적 없건만... 아무리 중한 거라도 지나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아라홍련의 자태

 

박물관 측에 의하면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성산산성을 발굴하던 중 연씨 15알을 수습하게 된다. 농업기술센터에선 5알 중 2알을 발아에 성공했고, 박물관에선 3알 중 1알을 발아시켜 싹을 틔웠으며 2010년 첫 꽃이 피었다. 농업기술센터는 그중 2알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방사선탄소)연대측정을 의뢰한 결과 연씨 1알은 760년 전 고려 중기(1160~1300)의 것으로, 나머지 한 알은 650년 전 고려 후기(1270~1410)의 것으로 나왔다. 이에 통상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으로 불리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아라홍련의 자태

 

놀라운 일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씨의 생명력을 1만 년으로 보고 있다. 보통의 연씨가 발아율이 100%에 가깝다면 아라홍련의 연씨 발아율은 33~40% 정도였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땅속에 묻혀 있다 700여 년의 세월 뒤에 다시 꽃을 피웠다는 건 그 자체로 기적이고 경이로운 일이다.

 

박물관 내부

 

박물관은 후덥지근했다. 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왔지만 정작 실내가 더 더웠다. 에너지 절약 시책에 따른 것이라 흐르는 땀을 애써 닦아내며 인내했다. 1층에는 아예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고, 2층 전시실에도 한쪽 구석에서 에어컨이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500원이니 이마저 감사해야 했다.

 

말갑옷

 

박물관 내의 유물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하지만, 가야 유물이 중심을 이룬다. 제일 눈길을 끈 건 말이산 고분군 북쪽 능선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말갑옷'이었다. 철기 가야의 기마병의 당당한 모습이 오버랩 된다.

 

 

또 다른 것은 '목간'과 '토기류'다.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목간은 약 280여 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임과 동시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백제와 신라, 바다 건너 왜까지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가야. 일본 열도 각지에서도 함안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 다양한 무늬에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가야의 유물을 지나면 조선시대 유물이 이어진다. <국담문집> 등 책판이 있고, 교지 등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관람이 거의 끝날 즈음 옛 농장을 재현한 장면이 여행자의 시선을 끌었다. 이른바 ‘함안농장 분규사건’이다. 일제시대 식량증산이라는 이름으로 개간한 가야, 산인, 대산, 법수면 일대의 경작지를 일러 '함안농장'이라 했다. 해방 후 함안농장은 당시 영남의 거부였던 하모 씨의 소유가 되었는데, 해방 직후 당시 농토를 농민에게 무상 분배한다는 소문에 하 씨는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틈타 서둘러 농민에게 원가로 분매하였다.

 

그 후 토지정책이 변화하고 물가가 오르자 하 씨는 농민들이 가지고 있던 계약서를 빼앗고 그 땅을 다시 새로운 소작인들을 시켜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에 격분한 농민들이 1974년 8월 가야읍 축암마을 벌판에서 땅을 지키기 위한 분규를 일으켜 땅을 되찾은 것이 일명 '함안농장 분규사건'이다.

 

 

오늘의 시간이 흐르는 가야시장에서 출발하여 아라가야고분군과 고려시대의 홍련, 일제 강점기까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했다. 함안에 오면 다양한 시간의 지층대를 경험할 수 있다. 여행자는 다시 박물관을 떠나 무진정으로 향했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