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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쌀 심으면 쌀 나왔단 바위, 신기하네




쌀 심으면 쌀 나왔단 바위, 신기하네
-부여 저동리 쌀바위의 전설, 미암사

천년의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길을 건너 미암사로 향했다. 절로 가는 길이 한적하다 여겼더니 가파른 고갯길이 앞을 막았다. 고갯길임에도 길이 넓어 산사로 가는 맛은 덜했다. 절집 바로 아래까지 차가 들어가 긴장감마저 없었다.

                                한 노파의 정성어린 기도에 쌀이 나왔다는 바위 

절집은 견고한 성처럼 쌓은 축대 위에 있고, 4사자가 머리로 인 다층석탑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축 미암사 주지 OO큰스님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회장 당선’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축하할 일이다. 이윽고 ‘수능시험 2만원, 1년기도 2만원, 초파일등 2만원, 일년연등 5만원, 특별기도 10만원’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연이어 있다. 상당히 친절한 사찰이다. 그 친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절집으로 가는데 약간의 비탈길이 있어 내심 숲길을 기대했는데, 어이쿠! 갑자기 거대한 불상이 떡하니 나타났다. 안내문에는 ‘세계 최대 열반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열반상은 부처가 열반할 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부처는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머리는 북쪽으로 하고 서쪽을 바라보면서 두 발을 가지런히 하여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최대’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왜 이렇게 최고, 최대에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다. 규모에 대한 콤플렉스일까. ‘동양최대’ ‘세계최대’등의 구호는 이제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와불 내부 법당

차라리 가장 아름다운 불상을 만들었노라고 자랑하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불상을 만들어냈던 우리네 조상들은 규모에 연연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런 허영에 쌓였단 말인가. 씁쓸한 일이다.

불상 내부에 법당이 있다. 부처의 몸속에 부처가 있으니 그 기도야 더욱 간절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 합장을 했다. 눈을 뜨니 지그시 내려다본다. ‘그 마음이 먼저 지극하여라.’ 라고 부처가 말하는 듯하다.


와불 옆에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이 바위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높이가 30m에 달하는 거대한 자연석 바위에 훤칠한 소나무마저 작게 보인다.

서울 성북구, 경북 칠곡, 설악산 화암사, 충남 공주 등 우리나라 곳곳에는 ‘쌀바위’, ‘미혈
米穴’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이 설화의 공통점은 욕심을 너무 부리면 끝내 자연물에 의해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곳 부여 저동리 쌀바위는 바위로는 보기 드물게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충남문화재자료 제371호다. 절 이름과 바위가 직접 관련이 있고 바위의 색과 형상도 그럴싸하여 더욱 관심을 끈다. 음경석․촛대바위․부처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욕심 많은 노파가 구멍을 후벼 파자 쌀 대신 피가 나왔다는 전설처럼 바위가 붉은 핏빛이다. 

옛날에 한 노파가 대를 이을 손자를 얻기 위해 날마다 이곳에 와서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했는지 집에 쌀이 떨어진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호리병에서 쌀 세 톨을 꺼내며 말하기를 “이 쌀 세 톨을 바위에 심으면 하루 세 끼 먹을 쌀이 나올 것이다.”라 하였다.

노파가 꿈에서 깨어보니 정말 바위에서 쌀이 나왔고 얼마 후에는 그토록 바라던 손자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파는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더 많은 쌀에 욕심이 난 노파가 부지깽이로 쌀이 나오는 구명을 후벼 팠다. 그러자 구멍에서 쌀이 나오지 않고 핏물이 흘러 주변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때부터 절 이름도 미암사米巖寺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 전체가 흰 데 비해 바위 아래쪽은 전설처럼 피가 물든 것처럼 붉은색이다. 이 바위를 보면 흔히 ‘차돌바위’라 불리는 석영류로 이루어져 있다. 표면은 하얀색으로 반질반질하고 붉은색은 풍화로 착색이 된 것으로 보인다. 쌀바위는 원적외선이 나와 몸에도 이로우며 혈액순환 등 건강에 좋다고 한다.


예전부터 이곳은 영험이 있어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언제부턴가 이 바위에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이야기가 있어 교훈을 준다. 백제시대에 처음 지어진 절로 알려진 미암사는 이 쌀바위로 인해 절 이름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족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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