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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지팡이로 바위를 세 번 흔들면 쌀이 나온다?




바위에서 쌀이 나와 절 이름마저 바뀐 화암사


속초에서 미시령을 넘기 전에 오른쪽 샛길로 빠지면 조용한 산사로 가는 길이다. 금강산으로 가다 주저앉아 버린 울산바위의 위용도 잠시, 길은 이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 부도밭을 지나서도 한참을 가면 계곡 너머에 절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화암사다.

화암사 가는 길에서 본 울산바위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만 같다. 절은 의외로 소담했다. 전각들은 모두 최근에 지어져 예스러운 맛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차분했다.

수암(수바위)와 사자상

층계를 올라 절마당에 들어섰다. 전각이라고는 법당과 명부전, 금강루, 요사채 등 몇 채가 전부였다. 아침 일찍 들러서인지 인적도 없다. 혼자 절마당을 거닐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삼성각으로 향했다.


화암사는 혜공왕 5년(769)에 진표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금강산 화엄사라 했다. 지금도 엄밀히 말하면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설악산에 있지만 ‘금강산 화암사’로 소개하고 있다.

화암사 경내

이는 사찰 내의 삼성각에서도 드러난다. 법당 뒤 호젓한 곳에 자리한 삼성각은 계곡을 옆에 끼고 있다. 삼성각 안벽에는 천선대, 상팔담, 삼선대 등 금강산 풍경이 그려져 있다. 이는 화암사가 금강산이 시작하는 신선봉 바로 아래 세워져 있어 금강산의 절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휴식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에 들어간 진표율사가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 서쪽에 장안사, 남쪽에 이 절을 각각 창건하였다고 한다. 율사가 처음 화엄사라고 한 이유는 이 절에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진

진표율사에게 화엄경을 배운 제자가 100명이었는데 그중 31명은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은 무상대도
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법력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후 화암사는 조선 인조 때인 1623년에 소실되어 2년 뒤인 1625년에 다시 지은 후에도 계속 화재를 입게 된다. 이에 화재를 피하고자 절을 100m 아래로 옮겨지었다. 그곳은 남쪽의 수암과 북쪽의 코끼리바위 사이에 맥이 상충하는 곳을 피한 자리였다.

금강산 그림이 있는 삼성각

화암사
禾岩寺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12년 사찰령에 의해 건봉사의 말사가 되면서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절 앞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이름이 수암秀岩이다. 이 바위는 한눈에 보아도 그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이야기 한 토막 충분히 품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이다.

절 바로 옆으로 아름다운 계곡이 흐른다

옛날 이곳 절이 민가와 많이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공양을 하기 힘들었다. 필요한 양식을 구하느라 수행에 매진하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어느 날 수행을 하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이 말하기를 수바위에 있는 작은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쌀이 나온다며 그 쌀로 수행에만 정진하라고 하더란다. 꿈에서 깬 두 스님이 수바위로 가서 노인이 시킨 대로 해봤더니 과연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절마당에 서면 멀리 동해와 속초시가지가 보인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스님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피가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사실 충남 부여 미암사 등 나라 곳곳에서 흔히 전해지는 이야기다.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수암(수바위)


마당 끝에 서니 멀리 동해와 속초시가지가 보인다. 이따금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풍경이 소리를 낸다. 수암
秀岩 주위로 하늘이 점점 맑아온다. 욕심을 버릴 때가 다가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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