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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너무나 깔끔하고 청량한 비구니 사찰, 지리산 대원사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청량한 비구니 사찰, 지리산 대원사

 

 

흔히 지리산 종주코스로 가장 많이 들먹이는 게 대원사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이 길로 치밭목, 써리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게 된다. 버스 종점인 평촌리에서 내려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다 보면 대원사에 이르게 된다. 자동차로 쌩하니 달려 산사에 이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길이다.

 

 

반듯한 포장길이 아니라면 더욱 좋으련만. 평일이라 자동차가 거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다. 계곡이 산모퉁이로 크게 휘어지는 곳에 대원교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일주문에 이르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 하늘을 덮은 노거수로 길은 잠시 어두워진다. 울울창창한 숲을 올려다보며 찬찬히 걷다 보면 이내 밝은 빛줄기가 가득한 너른 터에 이르게 된다. 5월이 끝날 무렵, 절 앞 언덕배기에는 영산홍이 한창이다.

 

 

거대한 바위를 금방이라도 동강낼 태세로 뿌리 뻗은 노거수 아래에는 맑은 샘물이 콸콸 솟아난다. 샘물로 목을 축이니 가벼운 산책이 더욱 향기롭고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절집 앞으로 계곡이 흐름에도 산허리에 걸려 있는 산사가 깊어 물소리마저 잠시 잊게 한다. 어쩌면 저 물소리를 따라 이미 마음은 계곡을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천왕문을 지나 절집에 들어서니 오후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절마당을 너무나 깔끔히 쓸어 놓아 햇빛마저 미끄러지는 듯하다. 맑다. 조용하다. 고요하다. 호젓하다. 적막하다. 깔끔하다. 정갈하다. 눈앞에 펼쳐진 산사의 모습은 여행자가 알고 있는 온갖 좋은 말들을 쏟아내어도 부족하다.

 

 

그 고요를 깰까 발걸음마저 조심스럽다. 깔끔하기 이를 데 없어 혹여 옷에서 먼지라도 떨어질까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영산홍, 철쭉, 원추리, 파초, 수선화, 배롱나무 등의 화초와 각종 나무들을 잘 가꾸어진 화단에는 비구니의 손길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알겠다. 비구니 절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말해본다.

 

 

이런 정갈함은 잠시의 게으름도 허용하지 않는다. 법당 기둥 아래도 헛헛할까 화초를 두었다. 빈 공간은 빈 데로 두면서도 허투루 꾸미지는 않았다. 그 세심한 안목과 솜씨에 다시 고개를 돌려본다.

 

 

인적 하나 없는 산사는 고요하다. 간혹, 아주 간혹 환청처럼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지만 그마저도 고요하다.

 

 

그 침묵 아닌 침묵을 깨고 멀리서 보살 두 분이 나타났다. 이어서 스님 한 분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났다. 깊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드니 산사는 다시 적막에 빠져들었다. 이 적막에 이끌려 벌써 몇 번째 이 산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지붕의 모양새가 독특한 원통보전을 한참 들여다보다 뒤를 돌아 산왕각으로 오른다. 전각을 오르는 계단 아래로 늘어선 장독대는 이 비구니 도량의 정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줄을 꼭 맞추어 늘어선 장독들은 몸체가 둥글고 어깨가 풍만한 경상도 장독대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문지르고 닦았는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장독을 보고 있자니 눈맛이 이만저만 시원한 게 아니다.

 

 

장독대를 보고 있노라니 이곳이 절이 아니라 손맛 좋고 정갈한 살림 잘하는 안주인이 사는 양갓집 뒤꼍에 들어선 기분이다.

 

 

하얗고 탐스럽게 핀 불두화 너머로 붉은 석탑이 담장 너머로 보인다. 탑이 어쩌면 저토록 붉다 말인가. 발걸음을 옮겼다.

 

 

다층석탑으로 오르는 계단은 출입금지였다. 선방은 비어 있고 여행자는 난감하다.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치 스님 한 분이 나타났다. 출입한 줄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지 말고 문을 그대로 닫아두고 가라고 했다.

 

 

계단을 올라 선방의 하얀 마당 끝에 서서 산사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보니 절집은 온통 산이다. 배롱나무가 말쑥하다.

 

 

다층석탑은 9층의 석탑으로 훤칠하게 뻗어 올라간 것이 보는 맛이 시원하다. 철분이 많은 화강암으로 되어 붉은 기운을 내뿜고 있다. 몸돌에는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고, 네 모서리에는 석인상이 있는데 마치 문인석 같아 의아하다. 아마 이런 독특함이 보물로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다층석탑은 절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에도 꿋꿋하게 견뎌왔다. 불에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돌 뿐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이 석탑으로 인해 대원사는 수행자들의 정진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구니 사찰인데도 대원사에서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인 성철스님이 불가에 발을 들여놓은 사찰이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1912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난 성철스님은 20대에 불경에 이끌려 다짜고짜 이곳 대원사를 참배하고 참선수행의 길에 들어갔다. 속인의 이런 행동에 실랑이가 많았으나 이 이야기를 들은 해인사 백련암의 동산스님이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가 성철이라는 법명을 주어 중이 되게 했다고 한다.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9년(548) 평원사라는 이름으로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연기조사가 8세기 신라 말 스님이라는 기록도 있어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조선 숙종 때 운권대사가 대원암을 짓기 시작하여 고종 때 혜흔선사가 크게 중수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원사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현재 대원사는 경남 양산 석남사, 충남 예산 견성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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