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 있는 여행/테마가 있는 여행

4대강사업으로 풍광이 바뀔 낙동강 비경 5곳



 

4대강 사업으로 풍광이 바뀔 낙동강 비경 5곳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는 곳곳에 비경을 만들었다. 이 칠백리 강물이 산에 막혀 돌아나가는 특이한 지형을 만든 곳이 있으니 이른바 ‘물돌이동’이다. 한자로 하회河回라 이름 붙인 ‘물돌이동’은 특정 지역을 일컫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물이 돌아나가는 마을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흔히 물돌이동하면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와 영주의 무섬마을을 꼽는다. 여기에 경천대 또한 물돌이동을 이루고 있고 병산서원은 가장 넓은 모래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강변 풍광이 4대강 사업으로 바뀔 운명에 처해 있다. 물론 하회마을은 가까스로 하회보 건설의 백지화로 피해 갔지만 무섬마을과 명승 제16호인 회룡포는 4대강 사업에 포함된 영주댐 건설로 모래 흐름이 막혀 백사장이 풀밭으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뒤숭숭한 분위기다.

여행자가 여행한 10월 중순에도 병산서원 가는 길의 습지는 준설 중이었고 지난 11월 중순에 다녀온 경천대는 이미 준설이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이 낙동강의 비경들은 준설을 하던 준설을 하지 않던, 직간접적으로 상류에서의 모래 유입이 차단으로 백사장이 줄어들어 경관이 훼손될 처지다. 이 다섯 비경 외에도 4대강 사업으로 경관이 훼손될 곳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대표적인 곳을 들어보았다. 

이 다섯 곳의 공통점은 강물이 휘도는 바깥쪽은 기암절벽의 경승을 이루고 반대쪽은 모래톱이 쌓여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하는 곳이다.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굳이 사람의 힘으로 막는다면 그 결과는 어떨지 심히 우려된다. 예로부터 치수는 국가의 흥망과 관련되어 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여러 의견을 수렴하여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지금처럼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닌 듯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은 저마다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나의 강을 모델로 삼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장기간의 고민과 연구 속에서 진행되어야 후손들에게 맑고 아름다운 강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 아래 사진의 모래톱들이 없어지거나 풀밭으로 변한다면 과연 아름다울까요?

 ------------------------------------------------------------------------------------------------------------------

하회마을 버금가는 육지속의 섬마을, 영주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다. 원래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태백산의 내성천과 소백산의 서천이 흐르는 무섬마을은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이 강에 둘러싸여 있다.

만죽재는 무섬마을의 입향시조인 박수가 이곳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다.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이었으나 8대손인 승훈이 중수하고 당호를 '만죽재'라 하였다.(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

마을은 강의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한 떨기 꽃잎처럼 앉아 있다. 풍수지리학에서는 이런 형국을 일러 ‘매화낙지형’ 혹은 ‘연화부수형’이라고 한다. 연화부수형의 지형에서는 큰 인물은 나지 않지만 학자나 선비가 난다고 하니 무섬마을이 문향 짙은 고장임을 알겠다.

 외나무다리. 영주댐이 들어서면 이 풍경도 사라질 것이다.

이곳에 마을이 처음 생긴 건 17세기 중반 조선 현종 때였다. 반남 박 씨인 박수가 처음 터를 잡은 후 영조 대에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박 씨 문중과 혼인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2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0여 남짓한 가구가 살고 있다. 그중 마을에서 최초로 지어진 만죽재 등 고택 9채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및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
 
가까스로 4대강 삽날 피한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산태극수태극이라 하여 물이 돌아나간다고 해서 ‘물돌이동’이라 하고, 한자로 ‘하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긴 타원 모양의 지형에 자리 잡은 마을은 낙동강이 감싸 흐르고 부용대에서 보면 하회는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의 연화부수형으로 특별한 길지로 여겨져 왔다.

 

맑고 깊은 낙동강물

사립문에 들어오려 하고

천리에 먼 배들

여기 오기 드물구나.

....


- 정임당 류길이 류성룡의 부친인 류중영의 집을 노래한 ‘하회도시河回圖詩’ 중에서

부용대

-------------------------------------------------------------------------------------------------------------------
 
용을 닮은 물도리동, 예천 회룡포


회룡포回龍浦.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풍광 좋은 절도가 그러하듯 이곳도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다.

 

그 후 구한말 고종 때 의성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의성포란 지명을 얻었다. 혹은 개울이 성처럼 쌓여 있다고 하여 재, 개울를 써서 의성포라 불리었다는 설과 한 때 큰 홍수가 나 의성에서 소금 실은 배가 이곳에 와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중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은 아무래도 전자이다.

 

이처럼 의성포로 불리던 회룡포를 찾는 외지 사람들이 의성에 있는 마을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예천군이 주도하여 '회룡포'라 부르게 되었다. 즉 물도리동 안에 있는 회룡마을과 강 건너 용포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사람들만 살고 있는 집성촌인 회룡마을은 지금도 아홉 가구가 모두 경주 김씨다. 원산성에 서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멀리 보인다.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도 거기에 있다.

일명 '뽕뽕다리'. 가을 동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
 
안동에 가면 꼭 찾아야 할 서원 건축의 백미, 병산서원


병산서원의 앞마당 구실을 하는 강변 백사장은 족히 수만 평은 될 법하다. 화산 자락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청천절벽’ 우뚝 솟은 병산과 그 아래를 휘돌아가는 낙동강, 은빛으로 빛나는 백사장이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새벽이면 병풍처럼 늘어선 산을 짙은 안개가 감싸고 푸른 강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만대루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원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선조 5년인 1572년에 류성룡이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인 1863년에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곳 가운데 하나이다.

 서원 앞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지난 10월 중순, 서원 가는 길의 습지는 한창 준설공사 중이었다. 그 많던 강변 나무들은 이미 다 베어졌고 푸른 습지도 점점 그 빛을 잃어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을 가두거나 소유하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누리던 옛 선조들의 가르침을 누가 거부하는 지 답답한 마음에 눈시울만 붉어졌다.

지난 10월 준설 중인 병산서원 인근의 습지

-------------------------------------------------------------------------------------------------------------------

 

낙동강 물길 중 하늘이 버린 곳. 경천대


경천대는 낙동강의 제1비경이라 불릴 만큼 천혜의 절경이었다. 우담 채득기선생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터를 닦았다고 한다. 본래는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라고 해서 자천대自天臺라고 불렀으나 우담선생이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란 글을 새긴 뒤 경천대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경천대 바위 한 면에는 경천대 비가 있고 우담선생이 사용했다는 세 개의 돌그릇이 있다. 바위 위에 있는 이 돌그릇은 왼쪽의 것은 연을 기르던 연분, 가운데 것은 세수를 하던 관분, 나머지 하나는 약물을 제조하던 약분이다. 바로 옆에 있는 무우정도 공사로 막혀 있었다. 4대강과는 별도로 경천대로 오르는 철계단과 난간을 보수하는 모양이다.

 

지난 11월 중순,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에 올랐다. 경천대 일대를 내려보니 절경이 따로 없다. 그러나 경천대 건너편 모래밭은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낙동강 물길 중 하늘이 스스로 만든 곳’이라는 그 이름이 무색했다. 강의 모래톱은 이미 반 이상이 파헤쳐진 상태였다.

지난 11월 중순 한창 준설 중인 경천대 일대


김천령의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구독+해 주세요
▒ 김천령의 지역별 여행지 보기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김천령의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