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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무소유 법정스님이 17년간 머문 불일암



 

무소유 법정스님이 17년간 머문 불일암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 <무소유> 중에서

 



법정 스님이 지난 11일 오후 1시 52분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스님은 2007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고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요양을 하였다. 최근에 서울 삼성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다 11일 열반 직전 길상사로 옮겨져 입적하였다.










 하사당과 채마밭

‘맑고 향기로움’을 간직한 무소유의 수행자인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상과대를 다니던 중 출가해 효봉 스님을 은사로 산문에 들어섰다. 이후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에서 수행생활을 하였다.

                                       불일암 표지목. 불일암을 뜻하는 'ㅂ'과 화살표가 전부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법정스님은 무소유적 은둔자의 삶만을 산 것은 아니었다. 스님은 1970년대 함석헌선생과 문익환목사와 더불어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불일암 가는 측백나무숲. 스님들이 매일 아침 이  숲길을 비질하여 매우 정갈하다

그러던 그가 조계산 불일암으로 돌아가 수행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은 1975년 10월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젊은이 8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데 충격을 받고 독재자에 대한 증오심을 이겨내기 위하여 암자로 들어갔다. 스님은 이듬해인 76년 불일암에서 <무소유>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내어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이후 <무소유>는 스님 그 자체였고 스님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대나무숲길. 불일암 가는 길은 짧지만 아름답고 청량한 산길이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 <무소유> 중에서

 

이후 스님은 1992년까지 17년간 이곳 불일암에 머물며 수행을 하였다. 이곳을 찾는 이들과 스스럼없이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기도 하였다고 한다. 1993년 찾아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 수행이 힘들어지자 그는 불일암을 홀연히 떠나게 된다. 강원도 산골 해발 800m 오지의 오두막에 홀로 살며 은둔의 고요 속에서 향기로운 글들을 썼다.

 불일암 법당

서울 성북동의 요정 주인 김영한씨가 당시 시가 1,000억 원 대에 이르던 7,000여 평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한 것도 스님의 무소유의 삶에 감명을 받은 데서 연유하였다.

 법당의 현판과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의자

스님은 2008년 말에 입적을 예감했는지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산문집을 냈다. 스님이 그동안 펴낸 책이 모두 20여 종에 이르니 그는 늘 독자들과 소통을 한 셈이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송광사 7대 국사인 자정국사의 부도

법정 스님은 평소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해 왔다.

하사당. 원래는 법당 건물이었으나 법정 스님이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이전의 건물을 해체하여 다시 지은 것이 하사당이라고 한다. 사진에 나오는 스님은 현재 길상사 주지로 계신 덕현스님이다. 그는 10여 명의 상좌스님과 함께 법정스님의 입적을 지켜보았다. 2008년 12월 불일암에 들렀을 때 그는 여행자에게 법구경 한 권을 선물하였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이 <무소유>를 읽고 남긴 말이다. 스님은 떠났어도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법정스님이 목욕을 하던 움막과 해우소

불일암佛日庵은 조계산 송광사에서 산길을 따라 얼마간 가면 있다. 암자가 처음 들어선 것은 고려시대 때였다고 하나 오늘날의 암자 모습을 갖춘 것은 순전히 법정 스님의 땀의 결과이다. 평소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이 머물던 암자에는 최소한의 것들밖에 없다. 법당 하나, 우물 둘, 몸을 씻는 움막 하나, 선방인 하사당, 장작더미, 지게 하나,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의자 하나, 해우소 하나, 바람 한 자락이 전부이다.

우물과 농기구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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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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