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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더 이상 파격은 없다! 태안마애삼존불





더 이상 파격은 없다! 태안마애삼존불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 태안마애삼존불




태안읍에 들어서면 태안 제1경인 백화산이 그 늠름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하얀꽃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백화산은 암산이다. 얼핏 보면 산이 제법 높아 보이나 평야지대에 있다 보니 실제 높이는 284m에 불과하다.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즐비한 이곳은 서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이 나지막한 백화산 등성이에 태을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큰길에서 얼마간 산길을 따라 오르면 근래에세운 이 암자를 만나게 된다. 산속 작은 암자에 비해 큰 법당건물은 다소 위압적이다. 절마당 끝의 은행나무에 누군가 팻말을 달아 ‘마애불’이라고 적어놓았다. 소박하다. 나무 아래에는 오래된 석재들이 햇빛을 피해 나뒹굴고 있다.



맑은 물이 고인 우물을 지나 산속으로 난 길을 조금만 가면 건물 한 채가 보인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큰 바위에 부처 세 분이 새겨져 있다. 7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삼존불은 아주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가운데 본존이 가장 크고 양 옆 협시보살이 그보다 작은 일반적인 삼존불과는 달리 가운데에 1.3m의 보살이 있고 양옆으로 3m 가까운 두 여래가 서 있다.


어째서 이런 파격적인 배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이 삼존불이 어떤 신앙배경에서 조성된 것인지 궁금하다. 일부에서는 이런 배치로 인해 현세불인 석가불과 과거불인 다보불 사이에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끼인 형태라고 보기도 했다. 세 부처의 정확한 명칭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개 왼쪽이 석가여래, 가운데가 관음보살, 오른쪽을 약사여래로 본다.


이 마애불은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과는 약 38km 떨어져 있다. 서산마애불에 비해 태안삼존불의 훼손은 심한 편이다. 바위의 새겨진 면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일부 훼손되었지만 불상 위를 덮을 만한 모자처럼 생긴 보호각이 있음에도 그러하다.

태안마애삼존불(좌)과 서산마애삼존불(우)

오랜 세월 풍상에 노출된 이유도 있겠지만 얼굴을 보면 코가 깨지고 윤곽이 뭉개지는 등 심하게 마모되었다. 아무래도 서산마애불이나 태안마애불 둘 다 부조임에도 서산이 저부조로 새겨진 데 비해 이곳은 고부조로 새겨져 있어 더욱 입체적이라 훼손이 더 심했을 수도 있다. 아들을 낳거나 장수하게 해준다는 속설 때문에 사람들이 부처의 눈과 귀를 쪼아간 것도 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이유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전각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서산마애불이 복원하면서 보호각을 없앤 것에 비해 대조적이다. 서산마애불은 국보 제84호로, 태안마애불은 국보 제30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서산마애불이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던 것에 비해, 태안마애불은 196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에 해제되어 다시 국보로 지정되었다.


태안 삼존불은 서산의 것과 마찬가지로 7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해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이곳이 그 옛날 중국으로 오가던 중요한 길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교역길이 평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조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어느 쪽이 먼저 조성되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그 조각 형태가 좀 더 단순하고 소박한 점, 수인이 교리적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서산마애불보다 조금 앞선 시기로 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백제 최고
最古의 마애불이라는 의미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불의 온화한 미소가 이곳에서도 읽히기는 하나 훼손이 심해 그 표정이 뚜렷하지는 않다. 다만 앞자락이나 두 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이 묵직하게 표현되어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한다. 오랫동안 흙속에 파묻혀 있던 연꽃대좌가 근래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마애삼존불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이곳의 바윗면에는 ‘태을동천
太乙同天’, ‘일소계一笑溪’, ‘강선대降仙臺’ 등의 글씨와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후반 김규황과 그 후손들이 쓴 글씨로 전해진다.


해우소 뒤 너럭바위에 섰다. 얼핏 보아서는 이곳에 마애불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다. 태안 일대가 한눈에 보이고 멀리 서해가 보인다. 그 옛날 백제인들은 이곳을 거쳐 서해를 건넜을 것이다. 뱃길의 안전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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