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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그거 참! 암만 봐도 기이한 지리산 암자, 구층암의 기둥

 

 

‘그거 참! 암만 봐도 기이하구먼.’

- 산 모과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쓴 지리산 구층암

 

큰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암자.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큰절 화엄사에는 원래 14개의 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8개의 암자만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화엄사 계곡 옆 담장길로 500m쯤 가다보면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아주 기이한 기둥을 세운 암자를 만나게 된다.

 

구층암 가는 길은 짧지만 아름다운 길이다

 

암자로 가는 길은 짧지만 강렬하다. 산사임에도 번잡한 화엄사 뒤안길로 접어들면 이내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잦아들고 계곡 물소리만 맑게 들려온다. 그 물소리마저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비탈이 심해진다. 잠시 땅을 훔치는 사이, 우거진 숲 너머로 돌다리가 보였다.

 

너른 절마당과 승방, 석탑 한 기. 승방은 양쪽으로 문이 나 있다

 

구층암. 얼핏 이름만 들어서는 암자에 구층 석탑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다 허물어져 몸통만 남은 삼층석탑 한 기가 있어 옛 모습을 상상해볼 뿐이다. 전하는 유물로 보아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구층암은 작은 계곡과 돌층계를 지나 조릿대 사이를 비집어야 이를 수 있는 조용한 암자이다.

 

어둑어둑한 대숲을 벗어나자마자 넓은 마당이 훤히 펼쳐지고 승방과 석탑 한 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한 채, 석탑 한 기, 휑한 마당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 승방을 돌아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천불보전, 수세전, 칠성각을 가진 제대로 된 암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석가모니불과 1,000기의 토불을 모신 천불전

 

천불전에는 석가모니불과 1,000기의 토불이 모셔져 있다. 법당의 지붕 밑으로 눈을 돌리면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거북이와 토끼 조각상을 볼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 설화처럼 토끼가 거북이 등을 타고 수궁으로 가는 모습이다. 이 조각은 일종의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과 같은 의미인 ‘반야귀선’으로 불국토로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승방 지붕 아래 곳곳에도 사자상 등 조각상이 있다.

 

구층암 승방 처마 아래와 천불전 지붕 아래에는 동물 조각상이 있다<승방의 사자상(좌)과 천불전의 토끼와 거북이상(우)>

 

천불전 좌우로 승방이 있는 구층암 전경

 

암자 초입에 있는 일곱 칸 승방은 앞뒤가 따로 없다. 바깥마당으로 들어서는 곳이 당연히 앞이겠거니 여길 수도 있겠지만 법당인 천불전이 있는 안마당도 앞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승방은 앞뒤 모두에 문을 내어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다. 이로 인해 큰절인 화엄사로, 숲으로, 법당으로 드나드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안과 밖, 속계와 선계가 결국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었다.

 

 

왼쪽 승방의 가운데 기둥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썼으나 길이가 짧아 추춧돌 위에 깎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모과나무 기둥을 얹었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맛이 나는 승방이다.

 

맞은편 승방은 한눈에 보아도 시원스러우면서 단아하다. 정면 다섯 칸이 주는 넉넉함과 잡석으로 단을 쌓은 소박함, 덤벙 주초를 놓아 그 위에 기둥을 세운 자연스러움, 기둥 사이에 하나하나 놓인 섬돌의 정연함, 각 칸마다 달린 띠살문의 간소함, 무엇보다 가운데에 서 있는 모과기둥의 천연덕스러움과 모과기둥 좌우의 대칭이 주는 안정성이 돋보인다. 누가 봐도 ‘참 잘 지었구나.’, 하겠다.

 

오른쪽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

 

아무래도 이 암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승방에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다. 맞은편 승방 기둥에 기대어 덩그러니 서 있는 석등과 모과나무 기둥을 보고 있자면 누구든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된다. ‘그거 참! 암만 봐도 기이하구먼.’

 

 

 

기둥은 나뭇가지의 흔적, 나뭇결, 옹이까지 나무가 살아 있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기둥을 대범하게 쓴 목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이런 기둥을 쓰게 한 통 큰 스님은 과연 누굴까? 목수의 재주와 허세도 대단하지만 그 기둥을 그대로 쓰게 한 스님의 안목도 예사가 아니다.

 

 

생긴 모양 그대로 쓴 모과나무 기둥

 

모과나무를 건드리지 않고 생긴 모양 그대로 창방과 마루턱을 맞들고, 가지가 갈라진 데는 갈라진 대로, 골과 결이 파인 곳은 생긴 대로 두었다. 모과나무 기둥이 짧은 맞은편 승방 기둥은 주춧돌 위에 깎은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모과나무 기둥을 얹어 놓았다.

 

꽃을 피우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생명은 더 이상 이 모과나무기둥에게 없지만 대신 자신의 몸을 보시하여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었다. 여느 모과나무처럼 평범하게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의 고행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천불전 앞 모과나무가 열매를 맺었다. 이 나무도 언젠가 자신의 몸뚱이를 소신공양할 것이다. 기둥이 될 자신의 운명을 뻔히 알면서도 모과나무는 오늘도 묵묵히 제 몸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다.

 

 

이 모과나무도 언젠가 기둥으로 쓰일 것이다

 

결국 구층암은 파격과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암자인 셈이다. 그 자연스러움과 천연덕스러움은 아마도 절 마당에서 자랐을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생긴 모양 그대로 써서 빛을 내었다. 비록 몸뚱이가 잘려 기둥으로 섰지만, 죽지 않고 암자와 더불어 수백 년을 살아왔고 수백 년을 살아갈 것이다.

 

 

 

어디선가 차향이 흘러왔다. 다향사류(茶香四流)라 적힌 방문을 살짝 열었다. 그곳 어둑한 한 쪽에 깊은 풍미가 있는 암자의 차가 있었다. 땅 깊숙이 파고드는 야생차처럼 향이 그윽했다.

 

구층암의 차는 ‘죽로야생차’, 대나무 그늘 아래 이슬을 맞고 자란다. 가물어도 걱정이 없는 이곳의 차는 어느 때고 고른 차 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간 데 없고 보살 한 분이 차를 마시고 가라고 권했다.

 

스님은 암자 뒤 차밭에 갔을까. 산길을 오르려다 그만 내려왔다. 다실은 5년 전부터 스님이 운영해 왔다고 했다. 본래 차로 유명했던 화엄사는 635년에 세운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에 차공양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불가에서 숫자 ‘구(九)’는 완성이자 출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둥감으로 별 가치가 없는 모과나무를 재목으로 쓴 것은 어찌 보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있는 화엄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자 완성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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