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대역죄 형벌을, 인간인 게 부끄럽다.
경기도 여주 천서리에 있는 파사산성을 내려오다 기가 막힌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해는 이미 떨어졌고 산자락에 어둠이 내려 모르고 지날 수도 있었으나 워낙 괴이한 일이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나뭇가지가 벌어진 틈에 큼직한 돌을 누군가 올려놓았다.
한눈에 보아도 돌의 크기는 지름이 1m는 족히 되어 보였고 중심부의 두께도 20cm나 되는 커다란 돌이었다. 나무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니 세 개의 굵직한 가지 중 한 가지는 이미 부러진 지가 오래되어 말라 있었고 가지를 뻗은 큼직한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이미 죽어 있었고 나머지 가지만 잎을 겨우 매단 채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누가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짓을 했을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연유를 모르겠다. 다만 주위에 참나무가 무성하여 외지인이 도토리를 줍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친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도 나무에 돌을 올린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나무에 맨 쇠줄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돌을 올려놓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쇠줄은 돌하고는 상관없이 별도로 나무에 매여 있었다. 참 기이한 일이다. 나무가 쓸모없으면 베어 버리면 그만이고 나무기둥이 필요하면 베어서 쓸 일이지 이런 식으로 나무를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이유가 뭘까.
옛날 조선시대에 죄인을 자백시키기 위하여 행하던 고문으로 ‘압슬형’이 있었고 죄인을 처벌하기 위한 극형으로 ‘거열형’이라는 것이 있었다. ‘압슬형’은 죄인을 기둥에 묶어 사금파리를 깔아 놓은 자리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위에 압슬기나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였다. ‘거열형’은 죄인의 두 팔 ·다리 및 머리를 각각 매단 수레를 달리게 하여 신체를 찢는 형벌로 너무 잔인하여 그 시행의 예도 철종 때 반역 주모자에게, 대원군 시절 포도대장 이경하가 종교 탄압의 일환으로 카톨릭 선교사에게 시행한 바가 있다. 지금 이 나무가 겪고 있는 형벌은 가지 위에 큰 돌을 올려 ‘압슬형’을 받고 있고 철조망에 연결된 굵은 쇠줄에 의해 ‘거열형’을 동시에 받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나무가 인간에게 무슨 대역죄를 지어서 이런 형벌을 내리는지 모르겠다.
나무는 사람에게 휴식을 준다. 나무 목(木)에 사람 인(人)이 기대면 쉴 휴(休)가 된다. 나무가 이렇게 인간에게 유용한 데도 인간은 오히려 나무에게 피해만 준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날 여행자는 인간으로서 나무에게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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