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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추억의 거리로 변신한 남도 시골간이역 득량역

 

 

 

 

 

추억이 새록새록... 남도 시골간이역 득량역의 변신

 

 

 

득량역. 몇 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곳은 어디인가 / 바라보면 산모퉁이 /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곽재구의 시처럼 늘 두고두고 그리워했다. 진달래 지천인 오봉산 아래 작은 간이역 득량역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득량역 가는 길은 봄빛으로 넘쳐 났다. 겨울을 이겨낸 보리가 초록의 빛으로 봄바람에 살랑인다. 들일 가는 시골아낙네의 짙은 흙냄새가 바람결에 묻어온다. 간이역은 한산했다. 따가운 햇살과 무서운 정적만이 지루하게 남아 있었다. 손님 셋만 내려준 기차는 다시 떠났다.

 

 

 

 

지난 4일에 찾은 득량역 대합실은 말끔히 변해 있었다. 문화역을 표방하며 탈바꿈한 득량역은 도외지의 무슨 카페처럼 말쑥했다. 역무원은 고재도 씨 혼자였다. 작년 8월에 득량역으로 부임한 고 씨에게 이발사의 안부를 물었더니 곧장 가보라고 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이곳에 들렀을 때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차에 이번에는 하룻밤을 이곳에서 머물 계획이라 꼭 만나볼 터였다.

 

 

 

 

자전거를 빌려 문화의 거리로 갔다. 기껏해야 몇 십 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지나간 추억들을 들추어내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거리는 옹골차게 꾸며져 있었다. 득량역 주변 빈 점포와 공간을 활용한 문화의 거리는 장난감가게, 문구점, 사진관, 만화방, 옛 득량역, 옛 득량초등학교의 교실 등이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풍금도 쳐보고 분필로 칠판에 낙서도 해본다. 난로 위에 얹은 도시락도 옛날 그대로다. 교실 입구 출입문에 매달려 있는 종은 ‘땡땡땡’ 하며 수업의 시작을 알린다.

 

 

 

70, 80년대의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려진 추억여행엔 아직도 영업 중인 이발관과 다방도 있고 빈 벽에는 각종 영화포스터와 박정희 전 대통령 담화문 벽보 등이 붙어 있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득량역 문화장터는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 문화디자인 프로젝트 간이역 ‘득량역 전통문화공간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국비 1억 원과 군비 1억 원, 총 2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조성됐다. 올해에도 문화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보성군 ‘득량면 추억의 거리 조성사업’이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2월 6일에 문화의 거리 개장식을 가졌는데 일본 NHK에서도 촬영을 해갔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경전선 구간 중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억이 깃든 테마 역으로 득량역과 벌교역을 선정해 일본 전역에 생방송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관광객을 맞는 맞이방, 야외무대, 거북바위를 관망하여 소원을 비는 소원맞이 전망대, 그리고 강골전통마을, 중수문길, 비봉공룡공원 등 득량 곳곳을 누빌 수 있는 자전거 투어 코스도 조성됐다. 앞으로도 2차, 3차 계획이 잡혀 있는데 그때가 되면 경전선의 대표 테마 역으로 거듭날 수 있겠다.

 

 

 

페인트로 쓴 낡은 글씨가 간판을 대신하고 있는 ‘역전이발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신 유리창에 공병학 씨의 연락처가 남겨져 있었다. 요즈음은 손님이 거의 없어 이발소를 종종 비우는 대신 전화를 하면 언제든 이발을 할 수 있다는 역무원의 말이 생각났다.  

 

 

전화기 너머로 이발사 공병학 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수에 문상을 가서 오늘은 힘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다방으로 가보시오. 우리 마누라니께. 아니면 길가에 포니 보이죠. 거기 보면 우리 아들 전화번호가 적혀 있소. 거기로 한번 연락해보소.” 전화기를 끊자마자 다방에서 넉넉하게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이 짝으로 오시오. 커피나 한잔 하고 가시게.” 이발사 공병학 씨의 아내이자 이곳에 문화역거리를 조성한 공주빈(36) 씨의 어머니다. 방송국 MC인 아들 공주빈 씨와 통화는 했으나 행사 등으로 워낙 바빠서 다음 주까지는 도저히 인터뷰가 불가능하다며 전화나 메일로 인터뷰를 약속했다. 근데 그의 어머니를 만나고 난 후 그와의 인터뷰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느껴졌다. 최수라(64) 씨의 입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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