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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향나무 한 그루 남긴 옛 군북역의 쓸쓸한 퇴장

 

 

 

 

향나무 한 그루 남긴 옛 군북역의 쓸쓸한 퇴장

 

 

녹슨 철로가 보인다. 먼지마저 덕지덕지 앉은 허연 철로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철커덩 철커덩 다리를 건너며 ‘빠앙’ 경적을 울리던 기차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다리 저편 끝에서 곡선으로 생을 마감한 폐선엔 따스한 봄 햇살만 지루하게 내리쬈다. 승강장 가로등엔 “2 진주 순천 방면, 1 마산 부산 서울 방면”이라고 적힌 검은 안내판이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었다.

 

 

 

군북시장과 잇닿아 있는 옛 군북역의 광장은 넓었다. 지금이야 타고내리는 손님이 10명 남짓 될까 말까한 작은 역으로 변했지만 그 옛날 시골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에는 제법 북적댔던 역이었다.

 

 

 

 

역 건물은 병원으로 바뀌었다. 역사를 임대해 병원으로 개원한 모양이다. ‘군북역’임을 알렸던 표지판 대신 딱 그만한 크기로 ‘구자운의원’이라고 적은 글씨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뼈를 잘 고친다고 제법 소문이 나 인근에선 알아주는 병원이란다. 계단에도, 병원 안에도 나이 드신 노인 분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승강장은 을씨년스러웠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는 벌써 녹이 슬어 기억 저편으로 묻혀 버린 듯하다. 기차가 다니던 시절 승객들이 잠시 비바람을 피했을 대합실도 굳게 잠겨 있고 그 너머로 승객들이 이따금 선잠을 잤을 모텔의 간판도 빛바랬다.

 

 

 

간이역하면 문득 떠오르는 것 하나, 작은 역 건물 한 채와 나무 한 그루다. 왠지 스산한 풍경 한 조각 떠오르게 하는 간이역의 추억이다. <모래시계>에 나왔던 정동진의 고현정 소나무는 익히 유명세를 탔고 백부전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 섬진강 압록역에는 <모래시계>에서 빨치산 남편을 둔 태수 어머니 김영애가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화순역의 소나무 한 그루도 기차 여행자에게 아름아름 알려져 있다. 기차와 소나무는 종종 노래와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렇듯 간이역과 나무는 어느 순간부터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이 된 듯하다.

 

 

 

이곳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승강장 대합실 옆에 있는데 한눈에 봐도 우람하다. 낡고 모든 것이 멈춰 버린 폐역에서 과거를 기억이라도 하려는 듯 가장 말쑥한 차림새로 남아 있다. 굵직한 둥치와 일산처럼 그늘을 만드는 가지들은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잠시나마 휴식과 편안함을 주었을 것이다. 더 이상 기차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잊고 싶다는 듯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 나무는 그저 묵묵하게 승강장에 서 있는 것이었다. 햇살이 녹슨 철로를 사정없이 내리쬐는데도 묵묵히 그늘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군북역은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으로 서울 가는 기차가 정차할 정도로 면 단위의 기차역치곤 활성화돼 있었다. 1923년 12월 1일 영업을 시작했던 군북역은 2012년 10월 23일부터 경전선 마산-진주 복선(비전철) 구간이 임시 개통되면서 예전의 위치에서 1km 가량 남쪽으로 이전됐다. 오일장이 형성돼 북적댔던 옛 군북역은 허허벌판에 새로 생긴 역사건물에 90년의 긴 세월을 넘겨주고 쓸쓸히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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