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신문사, 반성문 쓰는 기자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단숨에 읽었다. 절박한 책 제목에 비해 책에는 어떤 긍정의 메시지 혹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책 제목을 잘못 뽑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너무 절박하면 때론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일정 정도의 방어논리가 서기 마련인데,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순간 난 완전히 무장해제당하고 말았다.
▲ 지난 1월 11일 마산 가배소극장에서 열린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국장의 출판기념회
지역신문, 서울 중심의 병을 치유하다
책에서 저자는 그가 겪은 경험에서 출발하여 지역신문과 기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다루고 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실제 있었던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재미난 소설을 읽는 것처럼 독자를 몰입시킨다. 오랜 기간 기사 작성에서 다져진 저자의 글 솜씨와 탄탄한 구성 때문이다. 이는 단발성의 스트레이트기사로 나갔다면 ‘이런 일이 있었군’ 하며 쉽게 지나쳤을 기사를 남달리 접근하여 독자들의 광범위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경남도민일보만의 기사 작성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궁극의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 지역신문의 주요 콘텐츠, 즉 킬링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서울지(우리가 흔히 중앙지라 부르는 신문들)와 다른 지역신문의 생존전략이자 나아갈 방향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한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시대, 마치 서울 외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은 서울 중심의 병에 갇혀 있다. 시쳇말로 사회의 다른 모순보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모순이 얼핏 보기에 더 심각해 보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에 대한, 지역을 위한, 지역을 담은 신문, 그리고 그 신문을 올곧게 세우고자 하는 한 지역 언론인의 고민이 담긴 책이 나왔다. 바로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의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다.
그는 확실히 지역신문기자로 살아남았다. 물론 혼자 살아남은 것은 후배 기자들의 희생이 있어서였고 혼자 즐거워하다 보니 후배 기자들이 힘들지 않았겠느냐, 는 이승환 기자의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말이다.
반성문을 쓴 기자, 킬러 콘텐츠 ‘사람’에 주목하다
2010년 8월 30일,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반성문을 썼다. “권력 감시역할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편집국장 명의로 경남도민일보 1면에 게재된 이 반성문은 당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청문회를 거치면서 낙마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가 경남도지사 시절에 경남도청 직원을 가사도우미로 불러 쓰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당시 경남도민일보가 권력 감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신문사 편집국장으로서의 반성문이었다.
반성문을 시작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지역 언론에 대한 고민과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지역밀착의 공공저널리즘을 구현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 신문광고의 다변화와 뉴스의 유료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신문만의 킬러 콘텐츠가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자질구레한 동네 소식이 가지는 경쟁력과 지역신문의 핵심 콘텐츠로 ‘사람’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작지만 강한 여자 송미영 이야기, 인물 스토리텔링의 힘: 혜영 씨 이야기, 인물 스토리텔링의 힘: 송정문 씨 이야기’ 등 가슴 뭉클한 지역인물 스토리텔링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잘 나가는 지역신문들이 “엘리트층이나 특수한 집단의 관심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심을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임을 그는 간파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나라 지역신문의 딜레마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 앞에 놓인 것은 스스로 실험하고 개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 자연 떠오르는 것 하나... 현실의 보수적 습속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길을 찾았던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고 그곳을 걷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지역의 사람을 기록하는 작업’이야말로 지역신문만이 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라는 것. 사실 이는 우리에겐 낯선 개념이지만 서구에선 이미 오래 전에 자리 잡은(적어도 역사학에선) 영역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이후 역사학의 주제가 사회구조와 과정으로부터 일상생활로, 상층의 유력한 인물에서 평범한 대중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미시사’의 흐름과 닮아 있다. 굳이 언급하자면 막스 베버의 그물망의 법칙을 분석하는 ‘설명’이라기보다는 의미를 재구성하는 ‘해명’에 관심을 갖는 기어츠의 방식에 가까운 것이다. 예전의 거대한 인물중심의 역사에서 어떤 마을(구체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사회적 단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가 역사 인식의 한줄기가 되었던 것처럼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의 사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신문과 블로거의 협업과 연대, 블로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SNS시대의 기자가 살아남는 방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짚어보자면 대강 이렇다.
<제1장 편집국장의 반성문>
나는 진보든 보수든 정치․사회적인 성향을 막론하고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드러내고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진보’를 내세우는 사람이나 단체가 진보답지 않은 짓을 했을 땐 더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보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보수의 가치를 저버린 채 자기의 이득만을 챙기는 모습 역시 비판받을 일이다.
<제2장 지역밀착 공공저널리즘으로 돈을 번다>
또 하나의 실험은 ‘동네이야기’와 ‘동네사람’이라는 코너다. 흔히 지역신문이 가야 할 길로 ‘지역밀착보도’를 이야기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기사가 지역밀착기사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언론학자는 없었다. 결국은 우리가 스스로 실험하고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제3장 지역신문의 킬러콘텐츠를 찾아서>
나는 지역신문의 경제면이나 문화면, 스포츠, 연예 면에서 자기 지역과 무관한 기사와 사진을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야말로 자질구레한 동네 소식과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고 본다. 전국적인 정치 뉴스도 칼럼을 통해 이야기하는 정도면 족하다.
<제4장 블로그 지역공동체 구축>
신문이 ‘객관 저널리즘’ 인데 비해 블로그는 ‘주관․감성 저널리즘’이다. 지역신문이 블로그와 결합하면 신문의 딱딱하고 건조함을 보완할 수 있고, 기자들이 놓친 사안을 블로거가 채워주기도 한다. 게다가 자연스레 기자와 블로거들의 경쟁관계가 형성되어 콘텐츠의 질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또한 140여 명의 블로거들은 <경남도민일보>의 외곽 지원세력이 되었다.
▲ 지난 1월 11일 마산 가배소극장에서 열린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국장의 출판기념회
신문구독을 부탁하는 편집국장
그는 또한 편집국장으로서의 체면과 격식에 연연하지 않고 경남도민일보를 구독해 달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데에는 도민일보가 경남에서 다른 목소리를 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라는 자부심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필자도 그의 이 적극성에 매료되어 2011년 4월부터 신문을 구독하게 되었다.
사실 지역신문하면 중앙 일간지의 축소판이고 난삽한 기사와 어설픈 편집 등... 그럼에도 마치 지역의 유지인 양 행세하며 거들먹거리는 신문사와 기자들의 행태가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지역신문에 대한 고정관념이 쉽게 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김주완이라는 사람을 몇 번의 만남 속에서 알게 되었고 그가 있는 경남도민일보라면 이들 지역신문들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로 신문을 사보기로 했다.
사실 당시로선 끝내 확신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역신문을 돈 보고 사본다는 게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 외에는 없다고 당시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은 몇 달이 지나자 점점 바뀌었고 지금은 매일 신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 이상 후지고 진부한 그런 신문이 아닌 당당히 나의 아침을 여는 신문이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경남도민일보 창간 이래 처음으로 3억 원이 넘는 흑자를 내는 결실을 맺게 된다. 부채도 해결하고 직원의 임금 인상도 이루어졌으니 구성원들 간의 단합이 이루어지고 미래는 한층 밝게 되었다.
▲ 지난 1월 11일 마산 가배소극장에서 열린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국장의 출판기념회
지하소극장에서 열린 화환 없는 출판기념회
지난 1월 11일, 마산 창동 가배소극장에서 열린 그의 출판기념회에는 화환이 없었다. 아니 하나가 있었다. 화환과 봉투를 거절한다고 그가 미리 알렸음에도 잘 못 알고 지역의 한 대학 총장이 보낸 화환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윤리 내지 청렴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인 그는 사실 취재원의 밥과 술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사원윤리강령’과 ‘기자실천요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쯤 되면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근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율기육조(律己六條), 청심(淸心) 편에서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다. 청렴하지 못한 까닭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작은 부정에 발목이 잡혀 큰일을 도모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김 국장은 그런 면에서 분명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큰 탐욕을 위해 작은 욕심을 버리는 지혜를 택한 것이다. 청심(淸心) 편의 “선물로 보낸 물건이 비록 아주 작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맺어져 편애하게 된다”는 대목에 이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 인지상정인 것이다. 철면피가 아닌 이상 선물을 받고 기꺼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김주완 국장이 <목민심서>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분명 보지 않고 이처럼 청렴을 행했다면 타고난 천성이거나 아니면 지혜라는 욕심을 챙긴 것이다.
▲ 이날 출판기념회는 두 시간 넘게 열띠게 진행되었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적극적인 질문 공세를 펼쳐 박수를 받았다.
블로거와 기자는 공생관계?
이 책은 지역신문기자뿐 아니라 블로거에게도 유용한 서적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기자이다 보니 기자들이 블로그를 하면 좋은 점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를 역으로 이해하면 블로그 또한 기자들의 블로그 활용에서 좋은 방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블로거가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날 난 책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나를 위함이고 나머지 한 권은 친구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주기보다는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한테 책을 주기로. 책 선물을 받은 친구는 아마 처음 몇 장만 보고 그대로 서재에 꽂아둘 우려도 있을 테고... 책이라는 건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이가 끝까지 보는 법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 댓글을 남겨주세요. 제가 그냥 선물로 드릴게요. 대신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간단한 서평, 아니 감상 글 정도는 남겨주세요. 그래야 공평하겠지요. 제가 댓글을 보고 한 분을 뽑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상 글에 대한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단 몇 줄도 상관없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몇 줄을 이미 너끈히 쓰고 있을 테니까요.
▲ 출판기념회에서 필자는 두 권의 책을 샀다. 한 권은 나를 위함이고 나머지 한 권은 아래 댓글을 다시는 분께 선물하겠다.
“하는 데까지 해본 후, 도저히 희망이 없으면 ‘장렬한 전사’를 택해야 한다”는 그의 글에서 지역 신문에 대한 그의 절절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초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당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굴원의 <복거>에 나오는 시구로 경남도민일보와 김주완 국장에게 당부하는 말을 대신하며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그대는 그 마음을 그대로 써서 / 그대의 생각대로 따라가 보게나(用君之心 行君之意 용군지심 행군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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