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블로거를 꿈꾼다
- <피플파워> 7월호 인터뷰 파워블로거 열전
지난 6월 3일인 걸로 기억된다. <피플파워> 민병욱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새삼 반가웠다. 사실 그와는 예전에 마산에서 두어 번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그의 말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살이 많이 빠진 나의 모습을 아직 보이고 싶지 않다는 묘한 갈등이 교차했다. 그런데도 입은 본능적으로 만나자고 했고, 이왕이면 빨리 하는 게 좋을 듯하여 현충일인 6일에 그를 만났다.
<인터뷰>
여행전문 블로그 ‘김천령의바람흔적’
근 6개월 만에 만나서 손을 잡았다. 아, 그 좋던 기운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살도 많이 빠졌다. 더구나 여행 블로거인데, 몸이 재산인데, 걱정이 됐다. 건강부터 물었다. 지난 6일 오전 경남 진주시 신안동에서 김천령(41) 씨를 만났다.
"살이 빠지니까 되레 좋습니다.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고요. 8㎏ 정도 빠졌어요. 그래도 회복이 빠른 편이랍니다.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봤는데요. 3월 마지막 날인 31일 암이 발견됐고, 총선 전날인 4월 10일 어요.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조기에 발견돼 다행이지요. 솔직히 위암이라고 했을 때 좀 멍했습니다. 수술하고서야 몸이 아프고, 자유롭지 못하고 나서야 암이라는 녀석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냥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요즘은 아침에는 스트레칭도 하고 책도 좀 보고요. 그냥 많이 걷습니다. 걷는 게 참 좋습니다."
김 씨는 지난 2007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해 현재 〈오마이뉴스〉에서 여행전문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 씨가 블로그를 하게 된 계기는 뭘까.
"20대 후반부터 디지털 카메라 들고 문화유산 본답시고, 이곳저곳 좀 다녔습니다. 디카로 찍은 사진과 자료 따위를 저장하려다 보니 블로그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제가 학생 운동 때문에 대학을 좀 오래 다녔는데요. '큰집'에서 몇 년 동안 있기도 했어요. 그때 교도소 안에 있으면서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사찰, 암자를 중심으로 다니다가 섬 여행을 거쳐 요즘은 숲길, 휴양림 등을 주로 찾고 있습니다. 한 10년 넘게 하니까 여행 패턴도 바뀌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쪽을 다녀왔는데, 한 4㎞ 정도 걸었나. 너무 힘들더라고요. 예전에는 하루에 20㎞, 30㎞도 거뜬했는데. 에~휴. 체력이 참 중요하다는 걸 실감합니다. 사진기, 이게 생각보다 참 무겁거든요. 여행 블로거가 되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아무튼,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쯤 여태껏 쓴 글을 전자책으로 엮어낼 예정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처마 그늘의 정취〉로 잡았는데, 이런 게 바로 우연의 일치라고 하는 건가요. 출판사 쪽에 수술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전화가 왔어요. 〈직장인들을 위한 치유여행〉으로 하자고 말입니다. 제목이 좀 직접적이기는 해도 이것도 인연이거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부지런히 숲길을 걷고 나서 이것도 직장인을 위한 책으로 한 번 묶어볼까 합니다.
아, 여담입니다만, 장모님이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제가 역마살이 있고, 집에만 있으면 병에 걸리거나 바람피울지도 모른다고 했답니다. 해서 그걸 핑계로 여행은 자유롭게 다니고 있죠. 하하하. 원래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못 하는 스타일인데요. 블로그와 여행은 체질적으로 맞는 것 같습니다. 미국 여행작가가 남긴 책 중에 〈떠난다, 쓴다, 남긴다〉는 책이 있습니다. 저도 책 제목처럼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블로그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
여행 블로거는 여행만 하니까, 얼마나 좋을까, 하고 편하게 생각하기 쉽다. 허나, 무릇 일이 되면 힘들어지는 법이다.
여행 블로거를 꿈꾸는 이들에게 블로그 운영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냥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주말에는 여행 다니고, 평일에는 하루 한 꼭지 이상 글을 썼습니다. 블로그는 일단 즐거워야 합니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싫증이 나면 잠시 쉬면 됩니다. 종종 스트레스 받으면서 블로그 운영하는 분들 보게 되는데요. 억지로 할 필요는 없죠. 꾸준히 하면 자료가 쌓이고, 사람들이 포털에서 검색을 통해 찾아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지도도 자연스레 올라가고요. 인지도가 올라가면 팸투어 제안이나 원고 청탁 등이 들어옵니다. 여행비용과 장비 구입비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재투자인 거죠. 그리고 목돈이 모이면 저는 여행을 꼭 갑니다. 주로 섬으로, 1박 2일 이상씩 갔었죠.
그리고 온라인만 고집하는 것보다 오프라인 활동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비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별 투어만 가는데요. 그래도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블로그 소속 블로거들은 재밌고, 마음도 잘 통하는 것 같아서 예외적으로 같이 가기도 합니다. 아무튼, 여행 블로거는 자기 스타일, 자기 색깔대로 활동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행 블로그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뭘까.
"앞으로 블로그가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소통하는 기능은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블로그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고향이자, 일종의 베이스캠프죠. 이걸 바탕으로 여행활동과 글쓰기를 계속할 것 같습니다. 블로그 기반 여행자, 여행작가로 일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선 몸부터 회복해야겠죠. 올 한해는 숲하고 대화하면서 살아온 인생길도 한 번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도 있지만, 아파 보니까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좀 더 여유롭게, 좀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한단다.
"아침마다 〈숫타니파타〉를 읽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등 이런 문구를 읽으면서 저를 되돌아봅니다. 여행방식도 많이 느려졌고, 더 느려지려고 합니다. 요즘 여행 갈 때는 목적지 안 정하고 떠납니다. 저기 가볼까 하다가 여기가 좋으면 그냥 쉽니다. 아메리칸 인디언(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통틀어 이르는 말)들은 말을 타고 가다 중간에 자주 쉬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 까닭이 말을 타고 달리기만 하면 미처 영혼이 못 따라올까 봐 기다린 거라고 합니다. 블로그도, 우리의 삶도, 여행도 너무 바쁜 건 아닌지. 블로그를 하는 게 휴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혼이 숨 쉬는 블로그와 블로거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아프니까 인생의 의미도 짚어보게 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제 겨우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하하." 2
글/민병욱 기자 min@idomin.com
사진/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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