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찌든 사람들! 이곳에 가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
‘광릉수목원’으로 더 알려진 국립수목원은 광릉숲에 자리하고 있다. 광릉숲은 조선 세조가 세상을 떠난 해인 1468년부터 국가적으로 엄격하게 보호․관리되어 왔다. 세조는 생전에 이곳을 둘러보고 능터를 정한 후 경작과 매장을 금했다. 이후 조선왕조 내내 풀 한 포기 뽑는 것조차 금기시된 보호지역이었다.
유월의 광릉숲은 싱그러움 자체였다. 입구부터 빽빽하게 들어선 수림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차창 너머로 짙은 풀향기와 흙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도심 생활에 찌든 이들, 이곳에 오면 절로 자연이 될 것이다. 일상에 찌든 오랜 감각을 일깨우고 숲의 신선함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예전 CF의 한 장면처럼 ‘산소 같은 남자, 산소 같은 여자’가 될 것이다.
수목원은 예약제였다. 며칠 전 서울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라고 했더니 대뜸 “수목원인데 예약을 해요.” 한다. 여행자도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건 얼마 전 우연히 본 TV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방문자의 집’에 도착하니 후배가 먼저 와있었다. 미리 챙겨둔 지도 한 장을 들고 입장했다. 처음에는 길이 넓어 뜨거운 햇빛에 온몸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마침 맞은편에서 오던 관리원이 먼저 말을 건넸다. 가볍게 목례를 했다. “지금은 햇빛도 강하고 더워서 큰 길로 가면 금방 지칩니다. 제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걷기 좋은 숲길을 가리켜 드릴게요.” 하면서 지도를 본다.
그가 말한 곳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기념비에서 숲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어 숲생태관찰로를 걷다 육림호를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다시 육림호에서 산림동물원입구를 거쳐 반달가슴곰과 백두산호랑이를 보고 동물관리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이곳에서 산림박물관을 지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약 10km, 세 시간 정도의 코스였다. 나중에 걸어보니 관리원이 소개해준 코스는 무더위마저 피해가는 멋진 코스였다.
숲속에 들어서자마자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도 들리고 바람에 눕는 수풀의 소리도 들렸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간간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은빛 파도처럼 흙에 부서진다.
꼬마 둘이 아장아장 앞서 걸어간다. 순식간에, 작은 형제로 보이는 아이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아유, 귀여워!’하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였다. 환히 웃으며 카메라를 든 채 인사를 했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는 말 없는 질문을 했고 상대방도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몇 컷을 찍고 난 후에도 아이의 뒤를 쫄쫄 따라다녔다. 이 멋진 숲을 아이들이 걷고 즐길 수 있다는 자체로 기뻤다. 적어도 우리 후대들에게 미안할 일은 없어야겠다.
길옆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뿌리 채 뽑혀 있었다. 사연인즉 작년 곤파스 태풍으로 뿌리 채 뽑힌 나무였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렇게 쓰러진 나무들을 광릉숲에서 몇 그루 더 보게 되었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지 않는 것은 자연 상태로 두어 그 변화과정을 관찰하고자 하는 데 있는 듯하다. 사실 나무가 쓰러지더라도 그대로 두는 게 자연 생태를 위해 좋은 것이라 생각된다
조붓한 숲길의 끝에 육림호가 있었다. 호숫가에 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황매화였다. 장미과에 속하는 황매화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고향에 있는 황매산이 문득 떠올랐다.
뜨거운 유월의 호수는 잔잔했다. 강한 햇살이 수면 위를 번득이길 몇 번, 다시 그늘로 접어들었다. 호숫가에 연잎이 떠있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연꽃이 벌써 피었다. 어둑어둑한 구석에 핀 연꽃이 한층 더 돋보인다.
연꽃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다시 길로 나서는데 이번에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석간수였다. 물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석간수. 바위를 뚫고 제법 세차게 흘러나왔다. 오늘같이 더운 날에도 시원할까. 한 바가지 가득 채워서 마셨다. 아! 속을 단숨에 씻어버리는 시원한 물, 무척이나 차가웠다.
입구에 북적대던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족으로 보이는 부부가 정겹다. 느긋하게 책을 읽는 남편과 가만히 그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있는 아내가 무척이나 다정해보인다. 아이는 숲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제 나름대로 자연을 즐긴다.
남쪽에서는 이미 진 때죽나무에 하얀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순백의 아름다운 꽃에 비해 그 열매는 독성이 있어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활엽수림은 사라지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침엽수림이 눈앞에 나타났다. 전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숲의 향기는 이곳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두 팔을 짝 벌리고 깊이깊이 호흡해 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 한 편에 있다. 사진 동호인들로 보였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어떤 이는 아예 숲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야생화와 이끼를 찍고 있었다. 조심은 하는 듯하나 자신도 모르게 풀들을 막 밟았다. 어디를 가도 일부 사진가들이 문제다. 여행자도 사진을 찍지만 매번 안타깝고 화가 난다. 사진에 대한 자세를 먼저 배우기보다는 얄팍한 기술이 먼저이다 보니 자기 욕심만 채우는 이들이 많다. 대상에 대한 집착만 있을 뿐 배려가 없다. 정신이 아마추어인데 사진 작품이 프로이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잠시 울적한 마음은 반달곰이 달래주었다. 제법 포즈도 취하고 재롱도 피우는 걸 보니 인간들을 많이 접해본 솜씨다. 우리에 갇힌 모습이 안쓰럽지만 정작 곰은 모르는 듯하다. 조금 더 가니 철창 속의 백두산 호랑이가 보인다. 광활한 숲을 호령했을 호랑이도 쓸쓸한 표정이다. 여행자의 마음도 씁쓸했다.
숲길은 계속 이어졌다. 비탈길이 거의 없는 숲은 걷기에 최고의 길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숲이라는 수식어구가 허전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봄부터 여름까지 ‘그린샤워’의 최적지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산림박물관에서 출발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느긋하게 마지막을 걸어 입구로 돌아오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어린이정원이 보였다. 예쁜 정원에다 교과서에 수록된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는 공간 등이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 장소가 될 듯했다.
☞ 국립수목원은 사전에 예약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개방하며 일요일,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연휴는 쉰다. 입장료는 1000원이고 주차비는 3000원이다. 예약, 대중교통 이용 등 자세한 사항은 국립수목원 홈페이지(http://www.kna.go.kr)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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