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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홍포 귀신이여!"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홍포 귀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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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무지개길 도보여행②-저구마을에서 여차마을까지

마을 이름이 독특한 저구에 도착하니 부두는 유람선으로 북적댔다. 소매물도와 인근 섬을 오가는 배들이다. 사실 이곳에서 보이는 섬들은 통영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거리로는 오히려 거제에 더 가깝다.

명사해수욕장

바닷가 다섯 마을

저구, 원래는 ‘저구말방’으로 왜구 또는 어선들이 풍랑을 피하여 드나들던 포구라 하여 저구猪仇라 하였다고 한다. 저구, 명사, 근포, 대포, 홍포의 5개 마을이 있다. 이 다섯 마을을 지나 여차까지 걸을 예정이다.

여행자가 지니온 길이 산허리에 또렷하다

마을 끝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숲과 산으로 각기 나뉜 길은 잠시 뒤 해안에서 다시 만났다. 해안의 끝에 길게 이어진 백사장이 보인다. 명사해수욕장이다. 거제의 명사십리라 불리는 이곳은 밀개라 불리기도 했다. 남쪽의 망산이 거친 파도를 막고 있어 내륙으로 깊이 들어온 바다는 한없이 잔잔하고 얕다. 수심이 깊지 않으니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도 좋다. 백사장 뒤로는 오래된 노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건너편 산허리에 길의 흔적이 길게 남아 있다. 여행자가 지나온 길이 아주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마을 사이 골목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근포로 향했다. 밋밋한 아스팔트길을 달래려는지 때마침 시원스런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두 팔을 양껏 벌렸다.

근포마을의 다랭이논

길 아래로 다랭이논이 보인다. 10단계 정도로 층을 이루어 뭍에서 바다까지 내걸린 다랭이논은 소박하지만 옹골차다. 논 한 배미 없던 바닷가에서 귀중한 쌀 한 톨을 내어주었을 땅이었다.

대포항

샛길로 빠져 근포마을로 향했다. 교회의 십자가가 마을의 중심에 있다.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바다의 거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야트막한 구릉이 둘러싼 곳에 마을은 자리하고 있었다. 원래 ‘작은개’ 또는 ‘미날기미’라 불리던 근포는 미나리가 잘 자라고 해조류가 풍성한 포구라 하여 미나리 근
자에 개 포자를 쓴다고 했다.


근포에서 바다 쪽으로 나오니 이내 대포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제법 큰 포구이다. 작은 가게 앞 평상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 섬이 장사도지요?”
“예, 맞심더. 섬이 길쭉하지 않소. 거제 땅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한산면에 속합니더. 요즈음 한창 개발 중입니다.”

포구 앞 바다에 길게 늘어선 장사도는 마치 뱀이 길게 드러누운 형상이다.

대포마을의 포구나무

포구나무라고?

해안을 따라 마을을 걸었다. 간간히 밀려오는 파도마저 고운 모래를 어찌하지 못해 서서히 멈춘다. 바지락을 캐는 아주머니의 손길 위로 갈매기가 한가로이 맴돈다. 마을의 끝에서 홍포 가는 길을 찾았으나 허탕이었다. 낚시점에서 길을 물었다. 마을 중앙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밭일을 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포구나무’라 했다. 포구나무가 뭘까? 생김새는 분명 팽나무였다. 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여쭙고 설명을 들어도 당체 알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팽나무의 다른 말이었다.


홍포로 가는 길에 인상적인 집 한 채를 만났다. 이 일대가 관광지가 되면서 신식 펜션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옛 어촌의 민가였다. 처마까지 쌓은 높은 돌담에 녹슨 슬레이트 지붕을 인 빈집이었다. 집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봉창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번듯하게 지은 현대식 옆집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개발과 편리 앞에 옛 풍경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홍포마을은 온통 펜션으로 넘쳐났다. 한적하고 정감 있었던 마을은 진즉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갖은 상호를 단 집들이 대신하였다. 그래도 바다풍경은 그대로였다. 한산면의 가오리섬(가왕도)과 마주한 홍포는 무지개가 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쌍근에서 여차까지의 길도 ‘무지개길’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알려지고 있다.


내가 홍포 귀신이여!

눈앞에 보이는 섬 이름이 궁금하였다. 매물도, 가왕도, 대소병대도 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나 나머지 섬을 알지 못했다. 마침 주민이 지나가서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했다. 마을회관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매물도 정도만 알고 있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바다에서 섬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서 통성명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꽃을 보고 예쁘다고만 할 뿐 꽃 이름을 모르는 것과 매양 한가지다. 한 펜션에 들어가 물었더니 바로 맞은편 집에 가보라고 했다. 그 집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홍포 토박이여서 누구보다 이곳 지리를 잘 안다고 덧붙였다.

홍포 토박이, 옥서분 할머니

마침 할머니는 집 마당 평상에 앉아 계셨다. 헛기침을 하고 할머니를 불렀더니 손짓으로 평상에 앉으라고 하신다.

여서 우리 집만 한 경치 없어. 마당에 서서 보면 섬이 죄다 들어와. 저기 보드라고. 바로 앞 큰 섬이 가왕도, 그 왼쪽 뒤로 가익도, 국도, 소매물도, 대매물도, 등여, 매물도, 앞으로 어유도, 노랑손대, 큰손대, 구멍손대가 있어. 근자에는 그냥 대소병대도라 묶어 부르더니만. 그라고 가왕도 오른짝으로 자사리도, 소지도, 욕지도지.”

여행자가 평상에 앉자마자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섬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이름을 말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할머니의 섬 강의와 그 말솜씨에 여행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여행자가 다시 섬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 보았다. 일종의 복습인 셈이다. 몇 개의 섬을 빠뜨리자 할머니가 훈수를 했다. 두어 번 반복하자 섬 이름을 훤히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섬 이름을 어쩜 그렇게 잘 아시죠?”
“아따, 나가 여서 60년이나 살았어. 저기 담뱃집 보이지? 내가 거기서 태어나서 토박이란 말이지. 긍께 내가 홍포 귀신이여.”

올해 일흔 한 살이신 옥서분 할머니는 홍포에서 태어나 고성 거류면으로 시집을 갔다. 시집살이 9년을 하고 난 후 다시 할아버지와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사신다. 기둥의 문패에는 아직 할아버지의 이름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 집에 민박도 해. 언제 한 번 와요. 저 아래채는 3만원, 위채는 4만원이요. 집은 옛날 그대론데, 칠만 조금 했소.”

할머니의 집은 페인트칠 외에는 옛 어촌의 민가 모습 그대로였다. 다음 주에 또 이곳을 지나가니 그때 다시 들러기로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다음에 오면 사진 찍고 섬 이름 묻던 사람이라고 해요. 요즈음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할머니는 담벼락에 서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노랑손대(앞), 대매물도(뒤 왼쪽), 어유도(가운데 작은 섬), 소매물도(뒤 오른쪽)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무지개길

다시 혼자 길을 걸었다. 해는 이미 바다 너머로 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는지 평소의 이맘때 시각보다 주위가 더 어둡다. 걷는 이는 나 혼자, 간혹 먼지를 일으키며 차들이 한두 대 지나갈 뿐이다.


이곳에서부터 여차까지는 비포장길이다. 그나마 걷기 좋은 길이다. 까마귀개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여행자가 남해안 최고의 해안길이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요즈음은 많이 알려져 한낮이면 밀려드는 차량의 먼지로 걷기에는 좋지 않다, 해질녘이나 이른 아침, 혹은 달빛을 따라 밤에 걷는 것이 좋다.

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대소병대도


여차에 도착하니 저녁 일곱 시가 넘었다. 꼬박 5시간을 넘게 걸었다. 마을길까지 합치면 쌍근에서 여차까지 20여 km를 걸은 셈이다. 경상남도의 <경남의 걷고 싶은 길> 안내책자는 이곳에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직접 걸어보고 안내도를 작성했는지 의문이다.


일주일 뒤 여행자는 다시 이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다포에서 여차까지 10여km를 걸었다.


여차몽돌해변과 천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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