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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은둔의 골짜기, 신선들의 별장-갈은구곡

 

은둔의 골짜기, 신선들의 별장-갈은구곡
괴산여행③ - 괴산의 무릉도원, 갈은구곡

 

불과 수 년 전만해도 자동차가 닿지 않았던 오지 갈론 마을. 지금도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포장길을 한참이나 달려야 이르는 산골이다. 달래강을 옆구리에 끼고 지칠 즈음 이번에는 산자락을 어깨에 이고 가야하는 마을이 갈론이다.

갈론마을은 길의 끝에 있는 오지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도연명의 ‘오류선생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욕심이 없는 이상 세계의 순박한 사람들인 갈천씨지민葛天氏之民들이 은거하여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당초 칡이 많이 우거져서 은거하기 좋은 곳이란 뜻의 갈은葛隱 마을이었으나 언제부턴가 갈론葛論 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화양동에서 시작된 구곡문학이 절정을 이룬 곳이 갈은구곡이다. 갈론 마을에서 시작되는 갈은구곡은 마을에서 2~3km 더 들어간 계곡에 위치한 비경지대다. 화양구곡, 고산구곡, 쌍계구곡, 선유구곡, 연하구곡, 풍계구곡 등 괴산 구곡문학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괴산의 갈은구곡은 전덕호(1844-1922)가 설정했다고 전해진다.

 

갈론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기울고 있었다. 산에서 중년의 사내가 내려왔다. 그도 혼자였다. “구곡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예, 아마 마지막일 듯합니다.” “예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이내 떠났다.

 제1곡 갈은동문

길 위에는 여행자밖에 없었다. 아니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길을 따라나섰다. 계곡 주위 바위틈에는 수달래가 피어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봄날은 가고 있었다.

  제1곡 갈은동문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군청에서 얻은 사진 자료만 들고 무작정 계곡으로 향했다. 어떤 표지판도 없었다. 이럴 때에는 오랜 여행에서 얻은 감으로 9곡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제1곡 갈은동문

길 오른쪽으로 느닷없이 바위벼랑이 나타났다. 족히 길이 100여 미터에 높이 30여 미터는 되어 보였다. 절벽 위에 집채만 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자세히 보니 ‘갈은동문’이라고 적힌 글씨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은둔자의 골짜기는 시작되는가보다. 계류 반석 위에 잠시 앉아 하루 종일 걷느라 지친 다리를 쉬었다. 길은 두 갈래길. 예전에 갈천 씨 성을 가진 이가 살았다는 터는 꽤나 넓다.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할까.

 

계곡의 생김새를 보고 오른쪽으로 향했다. 길은 풋풋하다. 연초록을 띠는 풀을 사뿐히 밟으며 길을 걷는다. 깊은 산중으로 이어지는 길, 어디서 끝이 날지 짐작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제4곡 옥류벽

무작정 걷는다. 이내 깊은 숲이다. 아무도 없다. 대충 눈짐작으로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이쯤이면 9곡 중의 4,5곡이 있을 법하다. 바위의 생김새를 보니 층층 쌓은 모양이다. 사진과 대조해보고 나서야 제4곡 <옥류벽>임을 알았다.

            길에서 만난 살모사. 이곳은 청정 생태계 지역이다.

계곡을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다.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무엇일까. 살모사다. 어휴. 하마터면 물릴 뻔했던 작년의 순간이 떠올랐다. 혼자 가는 길은 이래서 불안하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갔다. 이곳에서 길을 돌렸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다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그냥 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계류를 건너니 강선대라고 적힌 바위가 보인다.

 제3곡 강선대

더 오를까. 더 걷기로 하였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갔음에도 구곡의 나머지는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구곡은 옥류벽 방면으로 계속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어야 했었다.

 

아무렴 어떤가. 봄빛은 완연했고 여행자는 계곡 바위에 누워버렸다. 이곳이 어딜까.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이따금 울어대는 새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도 하지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은
가슴 속 상쾌해져
절로 속된 마음 사라진다네

 

물보다 글씨가 더 많이 남은 은둔의 골짜기. 이곳에 오면 누구나 반쯤 신선이 된다.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진짜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신선을 본 사람
몇이나 되리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기국암은 어디쯤일까? 신선의 땅은 애초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일까. 날은 저물어 가고 해는 산 뒤에 숨은 지 오래되었다.

옥녀봉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 가건만
바둑은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네
다음날 아침 생각나서 다시금 찾아와보니
바둑알 알알이 꽃 되어 돌 위에 피었네

 

갈은 구곡은 신선과 관련된 이름들이 많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를 비롯하여 갈은동문,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이 9곡을 이루고 있다.

제1곡 갈은동문은 갈은구곡 입구다. 마을에 있는 갈은구곡 표지석에서 계곡 상류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오른쪽 바위 절벽을 말한다. 절벽 위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있는데 갈음동문葛隱洞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제2곡 갈천정은 갈은동문 바위 북쪽 계류 건너편 바위지대를 일컫는다. ‘갈천’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은거했다는 장소로 갈론 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곳이다.
제3곡 강선대는 이름 그대로 옛날 신선이 내려왔다는 곳이다.
제4곡 옥류벽은 시루떡처럼 생긴 암석이 층층이 쌓인 바위로 구슬 같은 물방울이 흐르는 절벽이다.
제5곡 금병은 물빛에 반사된 햇볕이 황갈색 바위벽에 닿으면 그야말로 비단처럼 보인다는 곳이다.
제6곡 구암은 이름그대로 거북을 닮은 기암이다.
제7곡 고송유수재는 소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고 옛 정자터가 있는 곳이다. 바위벽에는 ‘갈은동葛隱洞’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제8곡 칠학동천은 고송유수재 상단부에 있다. 옛날 일곱 마리의 학이 살았다는 곳이다.
제9곡 선국암은 신선이 바둑을 두던 자리라는 바둑판바위 네 귀퉁이에는 ‘사노동경四老同庚’ 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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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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