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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천년

왜 나무에 소뼈를 걸어두었을까




나무에 소뼈를 걸어두었을까?

-남해군 삼동면 내산마을 당산나무

 

바다를 낀 남해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곳이 삼동면 봉화, 내산마을이다. 금산 자락 아래의 깊숙한 골짜기 안쪽에 마을이 있어 내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이름처럼 내산은 산 높고 골 깊은 곳에 있다.

내산마을 전경

휴양림으로 가기 전에 봉화와 내산마을에서 오래된 당산나무를 보았다. 차에서 내릴까 하다 어차피 휴양림이 막다른 길에 있어서 돌아 나오는 길에 당산나무에 들렀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 다소 을씨년스러운 내산분교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봉화마을보다 나무가 작은 듯하여 사진만 몇 컷 찍을 요량이었는데 당산나무로 다가서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내산마을 당산나무. 수령 200년 정도 된 느티나무이다.

굵은 나무 둥치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어 가까이 다가섰다. 자세히 보니 동물의 뼈였다. 저 정도 크기라면 예사 작은 짐승의 뼈는 아니겠고 소뼈 정도로 보였다.

당산나무 주위의 농민들은 마늘을 뽑느라 바빴다. 일손을 거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되지 않아야 했다. 한참을 쭈뼛쭈뼛 서성이고 있는데 마침 길 저편에서 노인 한 분이 걸어오신다. 한눈에 보아도 농사일을 하는 분은 아니었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충웅(68)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건강이 좋았던 예전에는 당제 제관을 네 번이나 지냈었다고 했다. 그에게서 내산마을의 당제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당산나무에 소뼈가 걸려있는데, 이는 도서지방의 갯제에서 볼 수 있는 헌식 형식이 이곳 당제와 결부된 것으로 여겨진다.

내산마을의 당제는 10월 대보름에 지낸다고 했다. 당제는 대부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거행하고 봄과 가을에 올리는 곳도 있다. 내산마을처럼 가을에 올리는 경우는 대개 시월인데 이는 풍작을 이루게 해준 신에 대한 감사와 내년에도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남해가 갯가이다 보니 대개 10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낸다고 할아버지가 덧붙였다. 실제로 남해섬 대부분의 당제는 10월에 이루어진다.

제관은 보름 전인 10월 초하루에 정하는데, 제관으로 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고 어디를 가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는 금줄을 치고 깨끗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외인들의 출입을 막는다. 장을 볼 때도 물건 값을 깎지 않고 출타할 때는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삿갓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당제 제관을 지냈던 내산마을 이충웅(68)할아버지

동제를 지내는 보름날의 하루 전날 밤인 열나흘에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에 대한 이충웅 할아비지의 기억은 남달랐다.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서 그렇지. 예전에는 제를 지내기 전에 개울에 가서 꼭 목욕을 하고 모셨지. 개울물이 그렇게 차가웠는데도 차가운 줄 모르고 목욕을 했어. 요즈음 개울물에 손을 넣었더니 차가워서 혼쭐나서. 허허. 다 정성이지.
산신제는 보통 14일 저녁 11시에서 12시 경에 지냈어. 요즈음이야 젊은 사람들이 많아 신식으로 9시나 10시쯤 되면 산신제와 동제를 모시지만....
산신제는 저 짝 산으로 한참 올라가면 신전재라는 골짜기가 있어. 큰 바위 밑에 1m 정도의 굴이 있는데 정비를 해서 제단을 만들어 놓았지. 거기서 모시지. 목욕을 하고 산신제 모시러 한밤중에 가는데 중간에 개가 짖으면 다시 내려와서 세수를 하고 한참 있다 다시 올라갔지. 부정을 타니까.”

건강이 안 좋으신 데도 여행자의 물음에 정성을 다해 설명해 주었다.

“동제 지낸지도 오래 되었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동제를 모실 때에는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 음식을 날랐지. 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동제를 모시고 난 후 마을에서 100m정도 떨어진 탑거리에 금줄 치고 밥무덤을 하지. 굴바위라는 큰 바위 밑에도 밥무덤을 하구.”

할아버지가 다소 힘들어하시어 길옆에 잠시 앉았다.


“할아버지, 저기 나무에 매달린 거 소뼈 아닙니까?”
“와 아니야. 소 앞다리뼈지.”
“왜 소뼈를 당산나무에 매달아둔 겁니까?”
“그건 모르지. 나도 제관을 네 번이나 지냈는데도 모르겠어. 옛날부터 전해오던 것이라서.”

대개 당제를 지내고 나면 제물의 일부를 신에게 바친다. 그런데 이때 대상 신(신체神體)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다. 천신에게는 태워서, 지신에게는 땅에 묻어서, 산신이나 목신에게는 나무에 걸어두어 제물을 받친다. 내산마을의 당산나무에 소뼈를 걸어둔 것도 제가 끝난 후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볼 수 있겠다.

소뼈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갯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풍어와 안전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갯제에서 마을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밤새 가무를 하고 놀다가 용왕에게 소 한 마리 분의 소뼈를 헌식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즉 소뼈는 소 한 마리를 대신하는 것으로 신에게 올리는 것이었다. 내산마을이 비록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하더라도 바닷가의 갯제 특성이 당제에 결부되어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농사철이라 도로변이 분주하다. 경운기와 트랙터가 연신 도로를 질주한다. 소음으로 더 이상 대화에 집중하기도 힘들고 할아버지의 건강도 염려되어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저기 나무 일부가 불에 타버렸어. 어떤 사람이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렸는디, 잠시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어.”

여행자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할아버지의 말씀이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울린다. 수백 수천 년 이어온 우리네 소중한 유산도 잠시 한눈팔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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