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의 천년

천년의 느티나무가 있는 괴산 공림사


 

천년의 느티나무가 있는 괴산 공림사
 - 괴산여행을 시작하며

 

첩첩한 산 주름 속의 오지였던 괴산은 근래에 들어 도로가 닦이면서 사방으로 통하게 되었다. 고을 이름이 그러하듯 괴산은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물의 정원’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고장이다.

 

괴산. 이 고장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괴산의 ‘괴’는 느티나무를 뜻한다. 옛날 임금이 살던 궁궐을 다른 말로 ‘괴신’, 3정승의 지위를 ‘괴정’이라 할 만큼 느티나무는 나무 중의 왕이었다. 그만큼 괴산은 그 이름에 걸맞게 산수가 빼어나고 여러 걸출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나서 살았거나 머물렀다.

 

괴산을 가장 잘 드러내는 느티나무를 찾아 길을 떠났다. 관평리의 느티나무를 알은 채 해보고 난 후 공림사로 향했다. 공림사 초입에는 맑은 물과 흰 모래가 절경을 이룬 사담계곡이 있다. 우암 송시열이 쓴 ‘사담동천’의 붉은 글씨는 아직도 벼랑에 붉게 남아 있다.

 

오래된 흙집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무릎 앞에는 십 원짜리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느티나무의 행방을 수소문해보니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는 죽은 지 오래되었고 공림사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가 인근에서는 제일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고스톱에 방해가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 여행자는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낙영산 아래에 있는 공림사는 신라의 경문왕이 고승 자정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하기를 청했으나 사양하자 그 인물됨에 감동하여 사원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절의 웅장함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불화살을 쏘아 절을 태우려 하였다. 절이 타던 중 불길이 대웅전으로 접근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대웅전과 요사채 1동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이 절에 거주하자 국군이 불을 질렀다고 한다. 현재 불사가 일어 몇몇 전각들이 중건되었다.

 

공림사 경내는 대부분의 전각들이 최근에 지어져 옛 맛은 없다. 다만 절을 둘러싼 낙영산의 기암절벽과 수십 그루의 느티나무가 절이 유서 깊은 곳임을 말해줄 뿐이다. 특히 수령 천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공림사뿐만 아니라 괴산의 역사를 말해 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느티나무를 보는 순간 그 위용에 놀랐다. 높이가 12m에 둘레만 8m에 이른다. 1982년에 수령 990년으로 지정하였으니 지금은 천년하고도 18년이나 더 산 고목인 셈이다.

 

오랜 세월 절을 찾는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제공해 주었을 이 천년의 느티나무는 아직도 생명력이 넘친다. 어느 가지 하나 상한 곳이 없고 가지마다 싱싱한 연둣빛 잎을 달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너럭바위가 있다. 수십 명은 족히 둘러앉을 수 있는 넓은 반석임에도 불구하고 느티나무의 위용에 가려 멀리서 보면 작은 바위로 보일 정도로 착각이 든다.


아직 날이 무덥지 않아서인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어가는 이는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 그 위용에 놀라 아래위로 훑어보며 지나갈 뿐이었다. 나의 괴산여행은 이곳에서 시작하여 이곳에서 끝이 났다. 


김천령의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구독+해 주세요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