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딸 “아빠, 지리산 둘레길 너무 심심해.”
“여보, 지리산 둘레길 가자.”
얼마 전 1박2일을 보던 아내가 뜬금없이 말했다.
“거길 왜?”
나의 첫 반응은 당연히 시큰둥했다.
아내도 물론 알고 있었다. 무슨 길, 무슨 길 하며 방송에서 떠드는 길을 여행자가 제일 싫어한다는 걸. 그러나 잠시 후 나는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 한번 가보지 뭐.”
10월 2일 인월에 들렀다. 아내는 어느 코스를 갈 거냐고 물었다.
“승기 코스 갈까?”
아내를 위한 여행자의 작은 배려였다.
“아무 데나 좋기는 한데 거기는 조금 햇살이 따갑지 않을까. 당신이 계획한 거 없나?”
아내는 내심 여행자가 일정과 동선을 고려하고 있는 걸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참, 내가 언제 준비하고 떠나는감. 그냥 가면 길이고 여행인 걸.”
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을 얻어 갈 길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선택한 건 인월-금계 구간이었다.
지도를 보던 아내가 놀라며 또 한마디 한다.
“여보, 19.3km나 되는데, 완주할거야.”
“마라톤도 아닌데 완주해야 할 역사적 의무가 있을까.”
나의 장난 섞인 말에 아내가 웃었다. 최종 확정한 것은 매동마을에서 상황마을까지 왕복 5km였다. 둘레길 첫 산책인데다 일곱 살 딸애가 있어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걷기로 했다.
매동마을에 내려 곧장 산길로 접어들었다. 얼마쯤 걷더니 딸아이가 다리가 아프다며 나무막대기를 구해 달라고 했다. 길가에 부러진 나무를 주워 아이에게 건넸다. 바싹 마른 탓인지 나무는 금방 부러졌고 몇 번 주워 주었다가 마침내 아이의 마음에 드는 작대기를 구했다.
“아빠, 둘레길 왜 이리 심심한데.”
“어, 재미있지 않니.”
“어, 이게 뭐야. 계속 걷기만 하고. 하나도 재미없다.”
허기야 일곱 살 아이에게 숲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중에 나이가 들면 추억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와, 옥수수다.”
아이가 숲길 중간에서 옥수수라고 적힌 파라솔을 본 것이다. 신나게 달려가던 아이가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아빠, 없어.” 가까이 가 보니 사람도 음식도 없는 빈 휴게소였다. 아이의 기분이 상했다는 걸 눈치 챈 아내가 끝말잇기를 제안했다.
얼마나 갔을까. 쉼터가 나왔다. 이름이 <그냥쉼터>였다. 쉼터 이름이 왜 그냥쉼터냐고 주인에게 물어 보니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서 그냥이라고 적었다고 했다. <나눔쉼터>로 바꿀 계획이라 해서 나눔이라는 건 어디를 가도 흔한 이름이니 그냥 쉼터가 좋겠다고 했다. 이곳에서 잠시 쉰 후 다시 걷다가 중황마을쉼터에서 파전과 동동주를 먹고 도로를 통해 매동마을로 돌아왔다.
<딸아이의 지리산 둘레길 여행기>
우리는 오늘 지리산에 갔다. 지리산에서 걷다가 너무 다리가 아파서 아빠한테 나무 작대기를 찾아 주라고 했다. 가다 보니까 그냥쉼터가 보였다. 그냥쉼터에서 좀 쉬다 갔다. 좀 쉬다가 매동마을에 가다가 먹을거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파전을 먹고 길을 떠났다. 근대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엄마랑 내랑 휴게소에 피했다. 아빠는 차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차를 타고 진주에 도착했다. 진주에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우리는 좀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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