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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옛길 따라 오지마을을 가다. 산막이마을

 

옛길 따라 오지마을을 가다. 산막이마을
괴산여행② - 시간이 멈춰버린 오지마을, 산막이마을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물이 많이 흐릅니다. 괴산에는 아름다운 강이 흐릅니다. 물이 달아서 달천강이라 불리는 달래강이 그것입니다. 괴산에 있어 괴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댐이 생기고 나서 50년간 섬 같은 육지로 고립된 산막이 마을은 배가 아니면 건널 수 없었던 오지 중의 오지였습니다. 덕분에 달래강은 아직도 천연의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푸른 절벽을 따라 다니고 강은 세월을 거슬러 시간이 멈춰버렸습니다.

 

산막이 마을이 있는 칠성면 사은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유배지였을 만큼 멀고 외진 곳이었습니다. 깎아지른 바위벼랑에 물안개와 노을이 아름다워 연하구곡이라 불렸습니다. 지금은 물에 잠겨 옛 모습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옛 선비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었습니다.


깎아 세운 병풍바위는 별천지니

천장봉 아래서 기꺼이 즐기노라

산은 높고 물은 푸르러서 진경을 이루니

이곳 연하동이말로 세상 밖 그림일세

 매발톱

연하구곡은 조선 후기 경은 노성도라는 선비가 구곡을 정하고 연하구곡가를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경상도 상주 사람인 그는 10대조인 소제 노수신의 유배지를 관리하기 위해 산막이 마을인 연하동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연하구곡은 괴산군 청천면 운교리 경계로부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마을에 이르는 달래강변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1곡인 탑바위와 9곡인 병풍바위 등 일부만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이제는 전설 속의 절경이 되었습니다.

 

전설 속 연하동을 찾아 가는 길은 ‘산막이 옛길’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술로 만들어진 괴산 수력발전소를 지나면 오지마을 산막이가는 길이 있습니다.

 참나무 속에서 약수가 나오는 앉은뱅이약수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에 착수하여 1957년에 완공된 괴산수력발전소는 칠성면에 있어 칠성댐이라고도 불립니다. <칠성언제七星堰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도 남아 있습니다.

                                        40여 미터의 낭떠러지가 아래로 훤히 보이는 전망대

제일 먼저 연리지가 있는 고인돌쉼터를 지나면 1만여 평에 걸쳐 있는 소나무 숲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푸른 솔향기를 맡으며 길은 점점 벼랑 끝 아득한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작년에 이 길이 열리고 난 후 이곳을 찾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와 더불어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기도 하였습니다.

 

이 길의 길이는 총 2km에 달합니다. 달래강을 따라 산기슭을 돌아가는 길은 목재데크를 설치하여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느릿느릿 걸어도 산막이 마을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천수답은 연못정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남매바위라 불리는 바위 위에는 정자를 지었습니다. 이곳에 서면 호수가 되어버린 강과 멀리 군자산, 비학봉, 옥녀봉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도 물을 마시면 벌떡 일어나나다는 앉은뱅이 약수는 물맛이 정말 달았습니다. 참나무 속에서 내뿜는 약수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나무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떤 곳은 느티나무 위에 전망대를 만들었습니다. 괴음정이라는 곳입니다. 풍광을 보는 인간에게는 멋진 장소이겠지만 나무는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벗지 못하겠지요. 괴산이라는 이름은 느티나무에서 얻은 것인데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다른 한 곳의 전망대에서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전망대 아래는 40여 미터에 달하는 낭떠러지입니다. 게다가 바닥은 밑이 훤히 보이는 유리로 되어있습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기발합니다.

 

복원된 길이 끝나자 흙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길을 돌렸습니다. 여행자는 홀로 산막이 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로 가는 길은 봄의 깊은 적막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강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태공만이 하염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이르니 나무 그늘 아래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습니다. 달래강과 함께 80년을 살아오신 변강식(80)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 후 마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막이에서 80년을 살아오신 변강식 할아버지

지금이야 댐이 생겨 마을 앞 강의 수심이 깊어졌지만 예전에는 물이 얕아 징검다리를 건너 마을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배는 당연히 필요 없었습니다. 장마가 지면 강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마을을 오갔다고 하였습니다. 그 길도 댐이 생겨 잠겨 버렸습니다. 여행자가 걸어온 산막이 옛길은 괴산댐이 생기고 난 후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없어지자 만들어준 길이라고 합니다. 그때의 길은 지금의 편안한 길과는 달리 무척 험했다고 합니다. 배도 댐 이후에 생겨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단 세 가구만 사는 오지마을 산막이

예전에는 이곳에도 35가구 정도가 살았던 제법 큰 마을이었습니다, 댐이 생기고 난 후에도 15가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땅의 대부분을 서울 사람들과 외지인들이 사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척박한 땅 한 평을 팔면 외지에 기름진 땅 두 평을 살 수 있었으니 불편한 오지마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농사를 짓던 논은 물에 잠겨 벼렸지요.

 

지금은 단 세 가구만 삽니다. 마을 인구는 할아버지 내외와 형님 내외, 정씨 아저씨 총 다섯 명이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텃밭을 일구거나 강에 나가 가끔 소일거리로 물고기를 잡습니다.

 

강 건너에 있는 갈론마을에는 5~6년 전에 길이 생겼지만 이곳은 아직도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마을 뒤로 차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비포장길이 있기는 하지만 승용차로는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는 길이지요.

 갈론마을 가는 길에서 본 산막이마을. 사진 왼쪽의 기와집이 노수신의 적소(유배지)인 수월정이다.

강 이쪽에는 산막이 마을의 세 가구와 굴바위농원의 세가구가 전부라고 합니다. 달래강과 함께 생활하는 단 3가구의 마을입니다. 고즈넉한 강변의 아름다움과 깨끗함이 살아있는 달래강과 소박한 산막이 마을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는 듯한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여행팁 : 산이 막혀 길이 끝나는 산막이마을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있다. 산막이 마을을 가려면 <괴산수력발전소>를 찾으면 제일 쉽다. 수력발전소에서 강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이 외사리 사오랑마을이다. 복원된 산길을 따라 2.5km 정도 가면 산막이 마을이 나온다. 길은 누구나 편히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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