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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천년

한겨울, 봄기운 완연한 숲길을 걷다. 진도 상록수림


 

한겨울, 봄기운 완연한 숲길을 걷다. 진도 상록수림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은 연일 찾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런 번잡함을 피해 조용히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숲길이 있다. 운림산방과 거의 붙어 있다고 할 만큼 가까운 곳에 쌍계사가 있다. 쌍계사는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이 인상적인 쌍계사를 감싸고 있는 산이 진도에서 제일 높은 첨찰산이다. 첨찰산은 예전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쌍계사 옆 계곡을 따라 오솔길로 접어들면 시끌벅적했던 운림산방의 번거로움은 이내 사라지고 상록수가 우거진 짙은 숲이 나온다.

 

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가 상쾌하게 코를 자극한다. 이곳에서부터 바깥의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숲의 세계가 시작된다. 길은 평탄하다. 가을에 떨어졌을 낙엽이 여행자의 피로한 발바닥을 포근히 감싸준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상록수들이 얼마를 걷자 하늘을 가려버린다. 대낮인데도 숲은 어둡다. 쌍계사 옆을 흐르는 계곡 양쪽을 덮고 있는 이 숲길은 진도 사람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인 셈이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가시나무, 생달나무, 차나무 등 잎이 넓은 상록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지난 가을에 이미 잎을 떨어뜨린 졸참나무, 굴피나무, 느릎나무 등도 간혹 뒤섞여 있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과 간단한 수인사를 건넨다. 숲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도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목적지가 없다. 정상을 올라야만 산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거짓부렁이일 뿐이다.


 

긴 여정에 지친 아내와 아이는 돌려보내고 혼자 숲길을 걸었다. 정상까지 갈 거냐는 아내의 물음에 가다 돌아오고 싶으면 발길을 돌리겠다고 하였다. 숲길에 깔린 낙엽이 푹신하다.


 

산을 내려오는 중년 부부가 정겹다. 자식을 위해 보낸 세월을 뒤로 하고 그들만의 인생을 새로이 꾸려가고 있으리라. 숲이 울창한 것도 큰 나무들이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어린나무들에게 바람막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햇살은 가지 사이로 쉼 없이 보내주어 성장을 돕고 거친 바람은 온몸으로 막았을 것이다.

 

연둣빛 진초록의 잎이 번득거린다. 잎들 사이로 동백꽃 한 떨기가 외로이 피어 있다. 잠시 그윽하게 바라보다 길을 재촉하였다. 계곡에 걸친 다리를 건너니 우거진 상록수림이 만들어낸 어둠만이 남았다. 이곳에서 여행자는 발길을 돌렸다. 나만의 삶을 누리기에는 아직 나에게 기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여행팁 진도 첨찰산 쌍계사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7년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 부문 공존상(우수상)을 받았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다. 운림산방 주차장에서 50여 미터를 걸어가면 쌍계사가 나온다. 이곳에서 계곡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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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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