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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테마가 있는 여행

여행 3년의 기록, 길 위의 사람들


 

 여행 3년의 기록, 길 위의 사람들

<여행. 풍경이 주는 설렘에 길을 떠난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왠지 가슴 깊숙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여행지의 풍경이 계속 낯설기만 한다면 끝내 그와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 낯섦이 주는 경계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으로 인해 자연이 빚어내는 풍경과 나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지난 3년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기억해 보았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었다. 이 땅에서 태어나 그저 소리 없이 그들만의 인생을 꾸려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행자에게 있어 언제나 길 위의 스승이었다.>

 

천국을 만드는 욕지도 최숙자 할머니-경남 통영

 최숙자 할머니는 대한민국 모든 방송사에서 촬영해 갈 정도로 유명한 스타급 할머니다. 13년 전 따님이 위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모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섬에 들어 왔다고 한다. 지금은 성자 같은 생활로 병도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땅 밑의 돌을 캐어 그렇게 11년 동안의 피땀으로 새에덴동산을 일구었다고 한다. 동산을 만들고 마음을 수양하는 일이 일과의 전부이다. 끼니도 쑥 같은 것을 뜯어 계절에 맞는 풀죽으로 때울 뿐이라고 한다.

                                                                       새에덴동산

                                                               욕지도 노적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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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매 키우는 단양의 노부부-충북 단양

금강산이 부럽지 않은 수려한 도락산이 깊은 계곡을 이룬 곳에 가산리가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이곳에서 우연히 십자매를 키우는 노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노부부는 삼거리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며 십자매를 정성껏 돌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연세는 85세이다. 단양을 종종 가는 터라 이때 찍은 사진을 전해드린다는 것이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십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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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지킴이 배상우 할아버지-충북 영동

충북의 설악산이라 불리는 천태산을 지키는 할아버지가 한 분 있다. 올해 일흔 여덟이신 배상우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영동군 영산면 소재지에서 약국을 운영하신다. 할아버지는 자연보호 영동군 협의회 회장 일을 21년 정도 하시다 2007년도에 그만두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이곳 천태산에 와서 등산로를 정비하고 꽃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20년 넘게 천태산 등산로를 정비한 결과 지금은 이곳을 자주 찾는 등산객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할 정도라고 한다. 이곳을 찾은 한 독일 교포는 산이 잘 보호되어 있어 할아버지를 직접 찾아뵙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태산 급경사 암반에 로프와 자일을 일일이 설치하고 등산객들이 나무에 무질서하게 묶은 리본들은 영국사 입구에 대를 설치하여 한 곳에 정리하였다. 산 정상에는 18년 동안 방명록을 비치하여 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 산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도록 하였다. 군에서 1년에 한 번, 가을에 인건비와 자재비 지원이 나온다고는 하나 천태산을 보호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땀의 결과이다.

                                                    영국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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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섬진강 줄배와 김복희할머니-전남 구례

이름처럼 골짜기인 곡성땅은 석곡, 죽곡, 오곡, 호곡, 가곡 등 '골짜기 谷'자를 쓰는 지명이 많다. 섬진강이 굽이굽이 흐르며 산자락 곳곳에 골짜기를 만들었다. 도로가 놓이기 전 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은 나룻배였다. 예전 섬진강 언덕에는 양 마을을 잇는 나루만 해도 족히 십여 군데 이상이었다. 섬진강 강배의 특징은 쇠줄을 강 양안에 묶어 두고 줄을 당겨 배를 움직이던 줄배였다. 그러던 것이 도로가 놓이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줄배와 나루는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남아있던 화개장터의 나루터도 다리가 놓이면서 사라져 버렸다. 옛 정취는 편리 속에 그 자취를 감춘 셈이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섬진강에서 유일하게 줄배가 남아 있는 곳이다.

김복희 할머니. 순천 황전면 괴목마을이 고향인 할머니는 17살에 이곳 고달면 목동으로 시집을 왔다고 하였다. " 얼굴도 모리고. 속아서 시집왔제. 지금은 영감도 없고. 혼자 살어." 살며시 웃으시며 답하시는 양이 오랜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 있었다. 육남매를 키워 서울로 보내고 지금은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들어와 홀로 사신다고 하셨다. 논 두어 마지기에 쌀농사를 짓고 기계가 들어가지 않는 논에는 매실과 감나무를 심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새마을 지도자이자 부녀회장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마을 일을 하신다는 일흔 다섯의 김복희할머니. 한 십년 정도 서울에 산 것 외에는 줄곧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구경 온 사람들이야 배 한 번 타고 가면 고만이제. 줄 꼬이면 풀고 배에 물이 차면 바가지로 퍼내는 것은 우리 노인네들 몫이여. 저게 애물단지여. 저짝 아래로 사람만이라도 다닐 수 있는 다리나 하나 있으면 원이 업것어."

                                                     섬진강 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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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크기의 칼국수를 만드는 조연희할머니-경북 포항

보경사 주차장에서 내려 일주문을 지나기 전에 평범한 식당이 하나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칼국수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반죽을 미는 홍두깨의 크기도 크기지만 가로 세로의 지름이 1m가 훨씬 넘는 반죽의 크기에 놀랐다. 올해 84세인 조연희할머니는 수십 년간 이 일을 계속 해오셨다고 한다.

반죽과 홍두깨가 너무 커서 할머니에게는 벅차 보이지만 할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반죽을 칼국수로 만들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던 칼국수의 정성이 할머니에게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음식은 정성이다는 것을 할머니는 말없이 반죽을 밀었다 폈다 하면서 묵묵히 보여 주었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식당의 칼국수는 제법 이름이 나 있다고 하였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도토리묵도 별미라고 한다. 오래된 고목처럼 할머니는 세상의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칼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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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의 오체투지,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 일행-지리산 노고단

2008년 9월 노고단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 일행을 만났다. 시암재를 지나 성삼재 못 미쳐 아스팔트 길 위였다. 비가 내려 길은 이미 젖어 있었고 해발 1,000여 미터의 지리산 길에서 지관스님이 내리치는 죽비의 "딱'소리와 함께 힘겨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 03일째"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여행자는 단지 길에서 잠시 구경만 하고 있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였다. "딱' 소리와 함께 힘겹게 두 팔과 두 다리를 뻗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완전히 엎드렸다. 죽비 소리 외에는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간혹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눈에 맺힌 이슬만이 순례의 경건함을 말할 뿐이었다.

                                             성삼재에서 내려다본 산동마을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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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봉화산 오른 90세 할머니-경남 김해 봉하마을

김해시 내동에 사는 할머니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직후에 바로 오시려고 했으나 워낙 고령이시라 주위에서 만류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기어이 가시겠다고 하시어 장례가 끝난 이날 오게 되었다고 한다. 고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걸 손녀를 통해 알았다고 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며 할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가에 눈물이 맺히었다.

“내가 삼일 밤낮으로 울었어. 엔간이(웬만큼) 해야지. 그리 쑤시사모 누가 안죽고 배기나. 해도 해도 너무 했는기라. 내가 너무 원통해서.......”

이야기하는 내내 할머니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할머니의 연세가 많아서 산길로 정토원을 오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순경(경찰)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여 정토원 주차장까지 곧장 가는 길로 겨우 들어왔다고 하였다. 주차장에서 자제분들이 할머니를 양쪽에서 부축하고 휠체어를 매는 힘겨운 수고로움이 있고 나서야 수광전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봉하마을 봉화산 정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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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예술가, 김원주 화가-경기도 여주

그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아니 필연일지도 모른다. ‘굿’ 전문가인 하선생님의 소개로 올 유월에 그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여주에 화가이자 도예가가 있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나는 흔쾌히 그러마라고 하였다.

그는 여주군 북내면 고달사지 옆의 골짜기를 한참 들어가야 있는 즘골이라는 곳에 옛 집을 개조하여 황토로 벽을 바른 집에 살고 있다. 아내 또한 미술을 전공하여 부부화가로 이곳에 정착한지는 10년의 세월이 넘었다고 하였다. 한눈에 보아도 집안 곳곳에는 그들 부부의 손길이 묻어났다. 지우재至愚齋. 어리석음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우직함과 어리석음은 더 이상 삶의 논리가 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는 무엇을 지키고자 한 것일까. 어리석음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낸 출발점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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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고택을 닮은 박소월 할머니-경북 봉화

닭실마을. 마을 서쪽의 산에서 바라보면 금닭이 알을 품는 ‘금계포란’ 형국이라고 한다. 마을 이름인 유곡을 한글로 풀면 '닭실‘이 된다. ’달실‘이라고도 부른다. 문수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마을 앞으로는 개천이 휘감아 돌며 평탄한 들판을 이루고 있는 옛 마을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을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 경주의 양동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닭실마을 초입에서 박소월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연세는 96세였다. 오래된 마을의 고택을 닮은 할머니는 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 일생을 살아오셨다.

                                              닭실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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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순대와 문덕희할머니-경남 사천

요즈음 유명세를 타고 있는 순대로는 '아우내(병천)순대' 등이 있다. 갖은 야채와 당면이 들어간 요즈음의 순대는 분명 맛이 뛰어나다. 여러 종류의 퓨전순대도 나와 야참이나 간식, 술안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옛 추억을 살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 옛 맛을 더듬어 찾은 곳이 사천시 곤명면 완사시장에 위치한 곤양식당의 피순대였다.

장터에 있는 이 순댓집은 이 지역에서는 꽤나 알려진 집이다. 장날이면 장꾼들이 간단한 요기를 해결하고 고된 일상에 안주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장터에 순댓집이 여러 군데 있으나 막연히 느낌으로 이집에 들어섰다. 할머니는 장터의 평상에서 잠시 쉬고 있었고 며느리가 주방 일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피순대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덕희할머니'. 이곳에서 13년동안 피순대를 만들어 식당을 꾸려 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전에는 무엇을 하셨냐고 여쭈자 장터에서 국밥을 말아 장꾼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이집 순대의 특징은 흔한 당면을 넣지 않고  방아, 파, 마늘, 김치 등 각종 야채와 양념을 버무린 선지를 넣어 만든 데 있다. 이렇게 만든 피순대가 인근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외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얼마 전에는 모방송사에서도 촬영을 하고 갔다고 겸연쩍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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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상 수상한 82세 상쇠, 천일초 선생님-경기도 여주

열일곱 살 때부터 꽹과리를 잡고 상쇠가 되셨다고 하니 햇수로도 어언 65년이나 되었다. 온몸에서 예인의 기운을 느낀 건 여행자의 매서운 눈초리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 이제 못하겠어. 나이가 팔십하고도 둘이나 되었어. 이제 힘에 부쳐. 예전만큼 신명도 없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이어지는 고사 비나리에서 그의 구성진 가락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1978년 흔암리 쌍용거 줄다리기 대통령상을 수상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쇠이시다. 그 뒤에도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셨으니 실로 대단한 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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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외딴방’ 황두리 할머니-경남 통영

황두리 할머니를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글을 간혹 쓰곤 하지만 사전에 약속을 하거나 아니면 미리 정보를 알고 취재를 요청하는 게 나의 방식이었다. 사실 황두리 할머니가 누군지도 몰랐으며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방송에 몇 번 나가고 인터넷에 알려진 스타급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향이 비진도인 할머니는 시집온 후 고성에서 잠시 계시다 평생을 동피랑에 사셨다고 한다. 슬하에 자식이 둘이 있고 지금은 아들 한 분과 함께 살고 계신다고 한다. 동피랑에 사람들이 붐비는 걸 할머니는 오히려 반긴다. 외롭고 적적한 생활에 길가는 이들이 간혹 말벗이 되어주니 그게 좋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KBS 등 방송에 나온 걸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자신이 제일 예쁘기 때문에 사진 찍는 이들이 사진빨을 잘 받는다고 꼭 찍어간다고 하였다. 여행자도 한 번 찍자고 하니 이내 포즈를 취하신다. 세간살이를 좀 구경하겠다고 하니 흔쾌히 응하신다. 방 한 칸에 겨우 만든 좁은 부엌, 손바닥만한 마당에 판자로 지은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다. 방이 한 칸 밖에 없으니 냉장고도 지붕 아래에서 겨우 비바람을 피하고 세탁기는 아예 마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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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