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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논 한가운데에 있는 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논 한가운데에 있는 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물이 좋은 고장 예천은 곳곳에 불교 유적이 산재해 있다. 용문사 자락의 용문사, 동본동 석불입상과 삼층석탑, 철조약사여래가 있는 한천사 등은 신라 하대와 고려를 걸쳐 예천땅에서 불교가 융성했음을 말해준다.

개심사지 오층석탑 높이 4.3m로 그리 큰 편은 아니나 정연한 비례감과 적절한 상승감이 있는 아름다운 석탑이다.

 예천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내인 한천漢川의 너른 들판에 아주 맵시좋은 석탑이 한 기 있다. 바로 '개심사지 오층석탑'이다.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開心寺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너른 들판에 우뚝 서 있는 석탑은 천년의 세월을 견더온 만큼이나 눈이 시원하다.

하층기단의 십이지신상, 상층기단의 팔부신중상, 1층 몸돌 남쪽면의 금강역사상

 한때 이곳 예천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 역할을 했을 개심사지의 창건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한 도사가 예천의 남산인 잠두산에 올라 지형을 살펴보니 잠두산이 화기를 품고 소년을 죽일 형상이라 이를 막기 위래 산아래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도로에서 보아도 당당한 오층석탑은 가까이 갈수록 진면모를 볼 수 있다. 높이가 4.3m이고 이중 기단 위에 5층의 몸돌을 올렸다. 정연한 비례감과 적절한 상승감으로 인해 그리 크지 않음에도 그 단아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상층기단 덮개돌 아랫면에 새겨진 석탑 건립 기록

 상층기단 덮개돌 밑에 "통화 27년 경술년, 統和二十七 庚戌年'이라고 새겨져 있어 이 탑이 고려 현종 1년인 1010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덮개돌의 아랫면에 새겨져 있어서 비바람에 드러나지 않아 오늘날까지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하층기단의 십이지신상 문관복장을 하고 있으며 이처럼 탑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경우는 흔치 않다.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석탑에 조상을 새기던 경향이 이 석탑에 잘 드러난다. 맨 아래 하층기단에는 한 면에 셋씩 모두 12개의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고 그 위 상층기단에는 한 면에 두 분씩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다.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자물쇠가 꼭 채워진 문 모양의 조각 좌우에 칼을 거머진 금강역사상이 있다. 탑에 봉안한 사리를 지킨다는 인왕(금강역사)상이다.

상층기단의 팔부신중상 무관복장을 하고 있으나 표정이나 몸의 비례가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석탑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이 탑을 세우기 위해 수레 18, 소 1천, 승려와 속인 1만 인이 힘을 모았다고 한다. 이 지방의 모든 힘이 총집중된 이 석탑은 묻혀진 개심사와는 달리 오늘도 무심한 듯 당당히 서 있다.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보물 제53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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