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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옛 사랑이 그리운 정암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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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다리 위로 몰아치는 바람에 잠시 움찔하였다.
봄에 푹 빠져 있던 몸은 난데없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한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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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고개를 떨구자 바람이 멎었다.
연둣빛이 물살을 맞아 초록빛으로 얼굴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한적한 강변의 봄은 소리없는 바람에 놀라더니 이내 제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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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도 봄이지만 벼랑 끝의 복숭아꽃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매서운 강바람의 시샘이 어느덧 사라지자 나루터의 봄은 이미 소리없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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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예전의 나루모습은 찾을 길 없다.
단지 솥바위 앞에 쓸쓸한 배 한 척이 있을 뿐이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붐비던 나루터는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잊혀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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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南江.
남덕유에서 먼 길을 떠난 이 강은 곳곳에 절경을 빚어 낸다.
남강가에는 진주의 촉석루를 으뜸으로
 함안에 이르러 악양루, 반구정,합강정, 와룡정 등
곳곳에 수려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들이 모여 있다.
이 절경의 강이 의령에서 만들어낸 명소가 바로 정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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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鼎巖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기 직전 넓은 강줄기를 자랑하는 곳에 있다.
의령의 관문인 정암나루는 그 옛날 숱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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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옛부터 정암진이 있어 배를 건널 수 있는 나루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고작 1,000여 명으로 2만의 왜적과 싸워 이긴 곳이다.
바위벼랑 위에 망우당의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진 정암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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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물 위에 드러나 있는 정암은 물밑으로 솥다리처럼
세 개의 큰 바위 기둥이 받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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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건너편 강둑이다.
구도로의 철다리는 한참 보수 중인데 이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보는 맛 또한 그윽하다.
정암정 바위 벼랑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남강을 내려다보는 풍광도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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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가에 위치한 진주의 촉석루에 비해 왜소하지만,
의암과 정암은 쌍벽을 이루기에 족하다.
그 위치 설정과 강변 풍경은 가히 남강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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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아래 옛 나루터에는 넓은 바위가 있어 강 가까이서 봄풍경을 완상할 수 있다.
둑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무상한 세월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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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 뒤의 사당 가는 길은 짧지만 빼어나다.
족히 백년은 되었을 법한 고목이 어루러진 숲길은 옛 정취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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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에서 혜능스님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제가 어리석을 때는 스님께서 건네주셔야 했지만, 제가 깨쳤으니 스스로 건너야 합니다.
 ......이제 깨쳤으니 당연히 자신의 참 성품에서 스스로 건너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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