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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도담삼봉의 관망 포인트 셋, 이야기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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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본 도담삼봉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 하늘은 잔뜩 흐리다. 전날 단양 팔경 중 6경을 구경하고 오늘은 7,8경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오를 계획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이곳을 좋아하여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지었다고 한다. '도담嶋潭'이라는 이름도 물가운데에 섬이 있어 그렇게 불리었다. 삼봉은 이곳 매포읍 도전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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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에서 내려다본 도담삼봉과 도담리 전경

세 봉우리가 강 가운데에 우뚝 솟아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관광객으로 늘 북새통이다. 일상의 피곤을 여기서 다 떨어내려는 듯 춤추는 이들과 노래하는 이들로 강 주위가 떠들썩하다. 도담삼봉을 서너 차례 다녀 갔지만 맑은 날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이는 주위 시멘트 공장의 분진 탓이라고도 하고 거대한 충주호가 생긴 이후로 안개가 심해져서 흐린 날이 많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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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담리 강 건너 마을인 도담리는 배를 타야 건너 갈 수 있다.

똑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오더라도 매번 다른 느낌을 갖고 싶으면 다양한 위치 선정과 때를 달리하면 된다. 도담삼봉이 가장 멋질 때는 물 위에 솟은 봉우리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밋밋한 도담삼봉보다는 다양한 위치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삼봉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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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 무지개모양의 천연석문으로 높이 25미터에 너비 15~20여 미터에 이른다.

석문을 오르려면 강 왼편의 계단길을 택해야 한다. 조금 오르다 보면 전망대가 있지만 사실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전망대 바로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가면 석문 위의 위태위태한 길에 이른다. 여기가 가장 멋진 관망 포인트가 된다. 멀리 단양읍의 고층아파트가 보이고  강마을 도담리, 도담삼봉과 남한강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안겨 온다. 다음으로는 주차장에 들어오기 전 삼봉교라는 다리 위에서 보면 바위에 가렸던 정자가 앉음새도 시원스레 눈에 들어 온다. 마지막으로 좋은 곳은 다리를 건너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편 산길을 50여 미터 가면 팔각정이 하나 있다. 도담삼봉을 가장 가까이서 내려다 보는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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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쭉과 어우러진 도담삼봉

도담삼봉에는 세 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가운데 봉우리가 남편 봉우리이고, 강 위쪽이 아내, 강 아래 것이 첩봉우리이다. 원래 부부바위는 금실이 좋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남편이 첩을 얻게 되었다. 첩은 곧 아이를 갖게 되었고 임신한 것을 자랑하려 첩이 불룩한 배를 남편쪽으로 내밀자 아내가 눈꼴시어 돌아앉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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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봉교에서 본 도담삼봉

또 다른 이야기는 어느 해 장마가 심하여 원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세 봉우리가 이곳까지 떠내려왔다고 한다. 정선땅 관리들이 세 봉우리를 찾아 이곳까지 와서는 삼봉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해마다 세금을 걷어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해 또 세금을 걷으러 관리들이 오자 한 아이가 나서며 "저 삼봉은 우리가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저절로 온 것이니 우리는 세금을 물 수 없소. 정 그렇다면 세 봉우리를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당차게 말하자 그후부터는 관리들이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단면을 보면 당시 얼토당토아니하게 갖은 명목으로 세슴을 거두던 관리들의 학정과 거기에 저항하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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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각정에서 본 도담삼봉

마지막 이야기는 석문과 관련이 있다. 석문 아래 왼쪽에는 작은 굴이 하나 있는데, 옛날  하늘나라에서 물을 기르러 내려 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할머니가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경치가 하늘나라보다 더 좋아 이곳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며 여기에서 수확한 곡식은 하늘나라 양식으로 썼다는 이야기이다. 그99마지기의 논이 강건너마을인 도담리의 논배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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