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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테마가 있는 여행

우연히 찾은 오래된 경주 가을 사진

우연히 찾은 오래된 경주 가을 사진
-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인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영감을 주는 감은사지 석탑

한때 경주를 제집 드나들 듯 번질나게 간 적이 있었다. 전공이 역사인지라 문화유산 답사를 위주로 하는 여행이었다. 굳이 카메라에 담기보다는 우리 문화유산을 내 손과 눈길로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보급형 디카는 400만 화소가 최고였다. 사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때라 그냥 자료사진에 만족하는 정도였다.


감은사지 입구의 사진자료실, 감은사지의 옛 사진들이 볼만하다.

경주에 그렇게 자주 갔음에도 왜 사진이 없을까. 서재를 이리저리 정리하다 오래된 CD 한 장을 발견하였다. 그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폐기하면서 행여나 싶어 저장 해두길 잘했다. 그러나 사진 파일을 여는 순간 기쁨 대신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장비에 별로 연연하지 않지만 사진의 낮은 해상도와 심도를 보고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첨성대

사진의 질은 떨어져도 나의 소중한 기억이라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사진을 알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나의 여행은 어긋나기 시작하였다. 사진이 주가 되고 여행이 종이 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주위의 권유로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이것은 나의 여행에 중대한 오점이었다. 
 

남산과 경주평야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저 마음에 담고 꼭 필요한 것만 사진에 담았는데, 그 이후로는 사진을 더 우선에 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사진을 찍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행이 변질되어 갔다. '이게 아닌데'라는 의문이 내내 머리를 괴롭혔다.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여행은 어느덧 사라지고 보여주기 위한 불행한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불국사 자하문의 연인, 그들의 사랑도 보랏빛 안개처럼 피어났으리라.

블로그를 시작한지 일년하고도 몇 달이 지났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의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찼던 때, 주위를 의식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그때의 첫마음은 이제 블로깅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행이 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분황사지 모전석탑

경주는 문화유산의 보고답게 몇 달을 두고도 다 볼 수가 없다. 그중 분황사지는 경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옛 절터이다. 늦가을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질 때 분황사지는 가장 아름답다. 해질녘에 찾아 가면 쓸쓸히 지는 해와 더불어 절집의 고요함은 극치를 이룬다.

황룡사지

분황사를 나서면 수만평의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황룡사지. 평지 사찰의 대표인 황룡사가 몽고군에 의해 불타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옛 영화는 터만 남고 아이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넓은 대지를 뛰아다닐 뿐이다. 절터 멀리 고층 아파트가 옛 절터의 무상함을 말해줄 뿐이다.

내물왕릉과 황남동 고분 일대

천년의 왕도답게 경주는 고분이 즐비하다. 대릉원의 깊숙함은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푸근한 고분 사이를 걷노라면 마음마저 평온해진다. 고분 입구의 숲에는 낙엽들이 깔리고 간혹 장난기있는 아이들이 고분 언저리에서 미끄럼을 탄다.

고분 산책길로 적격인 대릉원

경주 시내를 둘러 보는 데도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다. 다만, 한층 다이나믹한 경주 여행을 꿈꾼다면 동해로 빠져야 한다. 토함산을 넘어 감은사지, 골굴사, 대왕암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만 기대로 가득 찬다. 상상으로 떠나는 무형의 여행은 동해 바다에 이르러야 끝이 난다.

대왕암

남산을 가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해발 500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산인데도 기기묘묘한 바위가 있어 예사로운 산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신라인들은 왕도 가까이 있는 이 산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였다. 신라인들의 염원이 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남산 곳곳에 서려 있다.

남산 삼릉골짜기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현재까지 발굴된 절터와 암자터가 112군데, 석불이 80개, 석탑이 61기, 석등 22기로 남산 전체가 불교문화의 보고이다. 바위면만 있으면 불상이나 심지어 탑까지 선으로 새기어 그들의 염원을 그렸다. 정일근 시인은 남산을 둘러 보고 '신라인의 마음을 싣고 흘러가는 한 척의 배'라고 표현하였다.

용장사지 삼층석탑

 남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그중 나는 배리삼존불에서 상선암, 용장사터를 지나 서출지에서 남산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남산에서 제일 풍광이 좋은 곳은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자리이다. 남산의 산자락이 굽이치는 이곳에 서면 탑이 선 자리가 새삼 경이로울 뿐이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에서 산비탈을 잠시 내려가면 머리없는 삼륜대좌불이 있다.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 유생들의 짓이리라. 공존보다는 배척을 우선시하는 배타적인 믿음의 결과는 참혹하다. 다만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불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인내의 참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골굴사

골굴사는 선무도의 본산이다. 이름 그대로 수십길의 바위 벼랑에 불상을 조성하였다. 규모는 작지만 12개의 석굴이 조성되어 있는 이곳을 흔히 '한국의 둔황석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림사가 주는 단조로움이 이곳에서 사라진다.

서출지

남산에서 내려가는 길 중 하나는 서출지이다. 신라 21대 소지왕의 전설이 담겨 있는 서출지의 저녁은 평화롭다. 경주 답사 중 한 번은 서출지에서 어둠을 맞이하였고 석굴암에서 일출은 보지 아니하고 일몰을 본 적이 있었다.

석굴암에서 본 일몰

5년 전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어렵게 찾았다. 사진은 조잡하지만 옛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충분하였다.

Daum 블로그(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