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읍내 한 바퀴, 광주 가는 버스를 타다
하늘 가운데서 중심을 잡은 해는 더 이상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날씨가 원체 더워 터미널로 바로 가서 광주로 나갈까 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이나 남아 있어 조금 더 남평을 둘러보기로 했다.
읍내 아무 곳이나 내려주면 된다고 했더니 기사는 신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 더운 날씨에 남평향교까지 걸어가는 건 무리라고 단호히 말했다. 읍내를 지나 향교를 가면서 기사가 왜 그렇게 강단지게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향교는 읍내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아주 외딴 곳에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오늘 같은 날 걸어왔으면 고생 깨나 했겠다 싶다.
향교에 도착해서 이번에는 향교를 둘러보고 걸어가겠다고 하니 기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따, 오늘 같은 날 걸어가면 쪄 죽는다요. 내가 돈 벌자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러다 큰일 나요. 택시비는 여기까지만 받고 읍내 터미널까지는 공짜로 태워 줄 테니 휑하니 퍼뜩 둘러보고 오소.”
사실 택시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전선 여행 1년 동안 대부분 도보로 이동했고 택시는 어쩔 수 없을 때만 두세 번 탔을 뿐이었다. 물론 이날 택시비도 1만7천 원으로 여행 중 가장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두 다리에 의존하자는 나의 여행방식 때문에 저어했던 것이었다.
각종 비석이 담장 아래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남평향교(전남유형문화재 제126호)는 예부터 이 고을이 유서 깊은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외삼문이 굳게 닫혀 있어 이리저리 살펴 겨우 한쪽 구석에 난 쪽문으로 향교마당에 들어섰다.
1472년(세종 9)에 향교가 처음 창건되었다 하니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처음에는 지금의 동사리인 남평현 동문 밖에 있었다가 1534년(중종 29)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경사지에 지어져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명륜당, 동서재, 대성전 등 소략한 규모였다. 다만 내삼문 옆 4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연륜을 말해주듯 거대했다.
읍내는 제법 번잡했다. 강한 햇빛을 피하여 서쪽 건물 아래 인도를 걸었다. 이제 터미널로 가서 나주 가는 버스를 타고 광주송정으로 가야 한다.
이따금 오랜 풍경이 보이는 읍내 거리의 중간쯤, 도로를 가로지르는 잘 정비된 작은 개울 하나가 보였다. 마을에서 한다리목이라 불리는 법수골이었다. 옛날 이곳에는 남녀 목장승이 양쪽에 있었고 큰 석상과 돌로 만든 제단이 있어 해마다 풍년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큰다리목(한다리목)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으로 나눠 고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인데, 지금은 오백년 넘은 당산나무 두 그루조차 사라지고 없다는 이야기에 여간 허망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남평시장에 들렀을 때는 이미 파장이었다. 1일과 6일에 열리는 남평오일장은 예전엔 1년에 5000두 이상의 소가 거래되었을 정도로 큰 우시장이 섰었고, 하루에 3000가마니 정도가 거래될 정도로 싸전이 유명했다고 하나 지금은 겨우 명맥만 이어져 옛 이야기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터미널 가는 길을 물었다. 농협 앞 버스정류장에는 갓 뽑아낸 마늘이 산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번에도 버스는 노란색이었다.
나주터미널에서 광주송정역 가는 160번 버스로 갈아탔다. 요금은 1650원. 1년간의 기나긴 경전선 여행도 이제 마지막 역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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