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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남도 800리

홀로 역 지키는 이 남자 "밤엔 별을 만나요", 경전선 800리

 

 

 

 

홀로 역 지키는 이 남자 "밤엔 별을 만나요"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⑫하늘 열리는 굿 벌어진 청학동-피난선 전설깃든 횡천역

 

 삼성궁 천제의 한 장면
ⓒ 김종길

 


 

"카드 되죠?"

말을 뱉어놓고 금방 후회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지리산 청학동, 그것도 삼성궁까지 와서 대놓고 카드 되느냐고 물었으니 완전 어이상실이다. 돌아오는 답은 예상대로였다.

"죄송합니다만 카드는 저희가 아직 안 됩니다."

지리산 삼성궁에서 반나절 동안 열린 '천제' 입장료 3만 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였다. 혹시나 해서 매표소 안을 흘깃 봐도 평소 자리를 지키던 박달선사도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행사 진행을 맡아 정신없이 바쁠 김원주 화백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차 타고 지리산 청학동을 가다

 횡천역은 승객들이 점점 줄어들어 2009년 9월 15일자로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 김종길

 


지난 10월 28일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하동 횡천역으로 갔다. 진주역은 지난 10월 23일 복선화되면서 개양역 인근으로 옮겼고 채 정리가 안 된 역사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어 낯설기만 했다. 30여 분 달린 끝에 횡천역에 도착했다. 이 철길은 아직 구불구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경전선이다.

다른 경전선 역과 마찬가지로 횡천역도 승객들이 점점 줄어들어 2009년 9월 15일 자로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지금은 명예역장인 정용태씨가 한 달에 두어 번 다녀갈 뿐이다.

그나마 타고내리는 승객이 몇몇 있었다. 기차가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역을 나왔다. 역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그 끝에는 자연농원을 가리키는 낡은 표지판만 있을 뿐 청학동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저 짝 소재지까지 가야 되는디. 우리 차로 같이 가입시더. 태워 줄 테니께."

길을 물었더니 짐을 사이좋게 나눠 멘 노부부가 함께 갈 것을 권했다. 노부부는 택시를 불렀다고 했다. 정중히 사양하며 길을 걸었다. 면소재지가 멀리 보였다. 늦가을이라 들판은 이미 텅텅 비어갔고 농부의 손이 아직 닿지 않은 감나무에만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횡천역에서 내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여 분이면 청학동으로 간다.
ⓒ 김종길

 


머리에 두건을 쓴 이가 정비소에서 나왔다. 한눈에 보아도 청학동 사람이다. 그가 말한 대로 횡천 마트 앞으로 갔다. 할머니 두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고가 난 모양이라고 했다. 청학동에서 내려오던 버스가 승용차와 부딪혔단다.

도로를 건너 버스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자주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이 있어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었다. 3일과 8일에 열린다는 횡천 오일장은 입간판만 화려하다. 잠시 후 버스가 왔다. 얼마쯤 가니 삼거리에서 앞이 심하게 일그러진 승용차와 옆 문짝이 찌그러진 버스가 보였다. 119대원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기사로 보이는 사내는 심각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청학동에서 내려오던 버스가 승용차와 부딪혀 사고가 났다.
ⓒ 김종길

 


그도 잠시, 버스는 이내 산중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고 여파인지 조심스레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익숙한 듯 버스는 거침없이 좌우로 몸통을 흔들며 산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청암을 지나니 드넓은 하동호가 오른쪽으로 펼쳐졌다.

호숫가 쉼터에는 저마다 차를 세우고 가을에 빠진 산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길게 기지개를 폈다. 산이 높아질수록 나무는 잎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논밭이 점점 산자락에 묻히는가 싶더니 금세 깊은 계곡을 옆구리에 끼고 버스는 달렸다.

묵계 댐을 올라섰을 때 버스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호수에 그득한 물이 가을의 마지막임을 알리는 듯 햇빛에 번득거렸다. 예전엔 묵계 이곳 어디쯤에 내려 청학동까지 걸어서 가야 했다. 대학시절 폭우로 청학동에 며칠 갇히게 된 학회 동료들의 연락을 받고 쌀과 김치와 차비를 챙겨들고 청학동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며 빗속을 뚫고 수 킬로미터를 걸어 갔다. 청학동 한 초가에서 초췌한 그들을 만났을 때 감동어린 그 눈빛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청학동과 삼성궁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버스가 멈췄다. 종점이었다. 내리는 승객들이 하나같이 돌아가는 버스가 언제 있느냐고 묻자 기사는 주문을 외우듯 몇 번이나 장단을 맞춰 외쳤다.

"청학동 출발 횡천 가는 버스는 9시 30분, 12시 40분, 14시 20분, 17시, 18시."



지리산 삼성궁, 하늘 열리는 큰굿 벌어지다

 오늘도 엿을 팔고 있는 청학동 할아버지
ⓒ 김종길

 


 지난 10월 28일, ‘밝음에 나아가다, 풍류 현묘지도’라는 제목으로 ‘개천대제’로도 불리는 스물여섯 번째 천제가 열렸다.
ⓒ 김종길

 


근래 청학동을 자주 오게 됐다. 올해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가. 이상향이니, 도인촌이니 이런 말들보다 그저 아는 이 찾아 발길 닿는 대로 오다보니 그렇게 됐다. 훈장 선생님처럼 수염이 멋진 청학동 할아버지는 오늘도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여 엿을 팔고 있었다.

천제가 열리는 삼성궁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현금이 없어 입장료 3만 원을 행사 주최자인 김원주 화백이 대신 내는 번거로움이 있은 뒤에야 도복을 챙겨들고 삼성궁에 들어설 수 있었다. 김 화백은 곧 있을 행사 진행 준비로 바삐 갔고 대전에서 온 지인과 오랜만에 해후를 하며 식사를 함께했다.

오후 1시, 식당 앞마당이 소란해졌다. 전국 각지에서 온 도인들과 구경 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잠시 후 '열린 하늘 큰 굿' 천제의 시작을 알리면서 첫 번째 마당이 시작됐다. '밝음에 나아가다, 풍류 현묘지도'라는 제목으로, '개천대제'로도 불리는 천제는 이번이 스물여섯 번째다. 이번 행사는 극단 '맥'을 이끌었던 한풀선사가 선암문화재단 이사장의 직분으로 마고예술단을 창단하고 총감독까지 맡았다고 한다. 예술 감독은 '이영숙 人(인)무용단' 대표인 이우주씨, 미술감독은 김원주 화백이 맡았다.

 천제 때만 개방되는 삼성궁 마고성에 참가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 김종길

 


 삼성궁의 천제는 1년에 한 번 단풍이 붉어지는 시기에 열린다.
ⓒ 김종길

 


열린 극은 총 다섯 마당으로 구성됐다. 첫째 마당은 탄생의 시원, 둘째 마당은 생명의 번성, 셋째 마당은 인간의 조화와 균형, 넷째 마당은 우주와 인간의 생로병사, 다섯째 마당은 신과 인간의 합일이다.

삼성궁은 묵계 출신인 한풀선사(강민주)가 1983년부터 33만 ㎡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하고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궁이라 해 '삼성궁'이라 이름 지었다. 해마다 단풍이 붉어지는 이맘때 개천대제가 열린다.

오후 1시에 시작한 굿판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마고성에서 다섯째마당을 마치고 삼성궁 건국전으로 장소를 옮겨 천제를 지냈다. 여행자는 천제만 보고 숲으로 가서 단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단풍 삼매경에 빠진 청학동 훈장선생님

 삼성궁 건국전에서 천제가 열렸다.
ⓒ 김종길

 


삼성궁은 요즈음 드라마 <대왕의 꿈>에 신비롭고 성스러운 장면으로 종종 나온 적이 있다. 사실 천제는 예전에도 두어 번 본 적이 있는 데다 지는 단풍을 놓치기가 영 아쉬워 바로 아래 '거북못'으로 내려갔다. 거북못 일대는 삼성궁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거북 모양의 바위가 연못 가운데에 있고 예쁜 연못 주위로 온통 울긋불긋 단풍이다.

찻집 옆으로 난 돌층계를 조심스레 내려가니 연못가 좋은 위치에는 이미 다른 분이 차지하고 있었다. 옷차림이 옛 식이라 유심히 봤다. 아마 아랫마을 청학동에서 온 모양이다. 탕건을 쓰고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보아 훈장 선생님인 모양이다.

 삼성궁 거북못의 단풍
ⓒ 김종길

 


 단풍 삼매경에 빠진 훈장선생님
ⓒ 김종길

 


훈장님은 한창 단풍 삼매경이다. 마치 학동들에게 사진 촬영 시연이라도 보이는 듯 엄청난 집중력으로 단풍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단풍이 이처럼 황홀하니 오늘 같은 날에는 '하늘 천 따 지'도 공염불이다.

연못가에 있는 '아사달' 찻집도 온통 붉다. 이곳에 오면 늘 들르는 찻집... 바위에 걸터앉아 마시는 차향은 깊기 이를 데 없다. 붉은 단풍에 둘러싸인 찻집은 아득한 그 옛날 아사달과 아사녀가 만나는 듯 아련하고 신비롭다.

찻집 옆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졸졸졸 흐르는 물이 작은 폭포를 만들어 붉은 숲 사이로 떨어진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는 외국인의 발걸음이 사뿐하다.

 삼성궁 아사달 찻집 앞의 계곡 외나무다리
ⓒ 김종길

 


지는 단풍이 이다지도 황홀할 줄이야! 이미 퍼석퍼석해진 잎들이 애처롭지만 그들의 마지막 정열을 누가 막을쏘냐. 해발 850m에 있는 삼성궁은 단풍이 일찍 든다. 대개 10월 20일을 전후로 이곳에 가면 가장 화려한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철도원> 떠오르는 경전선 횡천역 명예역장

 정용태 명예역장이 동호회에서 만난 경전선 노선도를 설명하고 있다.
ⓒ 김종길

 


경전선 순천행 기차 2호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찰나, 1초의 순간 그도 나를 훔쳐봤고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렇다고 해서 아는 척은 할 수 없었다. 누굴까? 궁금히 여기며 예약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차가 횡천역에 도착하자 그도 내렸다. '지난번에 통화했던 그 역장이 맞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그가 아는 체를 먼저 했다.

"김 선생님 되시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그가 다가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와는 달리 그는 생각보다 젊었다. 동그란 얼굴형에 귀여운 상을 가진 그는 한눈에 보아도 맑아보였다.

정용태(29) 횡천역 명예역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서울에 사는 그와 만나게 된 건 코레일을 통해서다. 명예역장과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여행자의 요청에 코레일에서는 정용태 역장을 소개해줬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그는 진주선이 복선화되면서 기차 시간표가 바뀌어 마침 11월 초에 횡천역에 내려올 계획이 있다고 했다. 망설일 필요 없이 한 번 만자자고 하니 흔쾌히 응했다. 10월 28일에 이어 그를 만나기 위해 11월 1일 다시 횡천역을 찾았다.



전국에 하나 밖에 없는 '횡천역 도장'

 정용태 씨는 공식적으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횡천역 명예역장이었다.
ⓒ 김종길

 


 도난 방지를 위해 단단히 고정된 횡천역의 스탬프는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도장이다.
ⓒ 김종길

 


정용태 명예역장은 수원이 고향이다. 하동 옥종면이 아버지의 고향인데 어릴 적 다솔사역 인근에서 놀았던 추억이 횡천역의 명예역장을 신청하게 된 동기였단다. 1995년 여름 기차표를 줍는 등 어릴 적 뛰어놀던 다솔사역의 역사가 없어진 기억이 아쉬워 간이역을 덜 외롭게 떠나보내려 명예역장을 신청했단다. 어느 날 다솔사의 역 명판이 사라져 도둑맞은 줄 알고 사방에 수소문했더니 다행히도 진주역에서 수리를 하고 있었다며 옛 추억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현재 철도 동호회 'Rail+'의 동호회원이다. 동호회에서 만든 경전선 노선도는 KTX가 들어오고 변화가 생길 때마다 지우는 게 아니라 회색으로 색상을 조절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이곳 횡천역에 오면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스탬프를 손보는 것이다. 도난 방지를 위해 단단히 고정된 스탬프는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도장이다. 고무도장은 수원에 하나 더 있는데 다 닳으면 교체를 하기 위해서란다. 기름칠을 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이 작은 기계 하나에 그가 쏟는 애정은 각별했다.

다음에 그가 한 일은 얼마 전 진주선이 복선화되면서 바뀐 기차 시간표를 수정하는 것이다. 2010년 4월에 제작을 시작해 5~6개월 만에 완성한 이 기계는 번개가 쳐도 끄떡없단다. 정전 대비·데이터 보관·보호 장치·자체 배터리 등 단순하게 보이는 이 기계는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장비다. 이 기계도 동호회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횡천역 내에는 철도 동호회에서 기증한 것들이 제법 많다.

횡천역은 2009년 9월 15일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는 무배치 간이역이 되기 전만 해도 3~4명의 역무원이 교대로 근무했다. 지금은 명예역장 정용태씨가 한 달에 한두 번 다녀가는 한산한 간이역이 됐다.

 횡천역 옛 사무실에 적힌 목표액. 횡천역은 2009년 9월 15일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는 무배치 간이역이 되기 전만 해도 3~4명의 역무원이 교대로 근무했다.
ⓒ 김종길

 


정용태씨는 공식적으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횡천역 명예역장이었다. 당시에는 승차 할인권 30~40장이 주어졌고 제복까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봉사가 기본이었다. 부전역에서 횡천역 유물을 전시도 하고 북천역 코스모스 축제도 1~2주 정도 지원나갔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40여 명의 명예역장이 있었다. 무료 봉사의 의미가 강했던 명예역장은 공식적으로 2011년에 끝났고, 2012년에는 임대를 통한 명예역장 제도가 있는데 그마저도 흐지부지되는 모양이다. 경전선만 해도 평촌역·갈촌역·낙동강역·수영역·완사역 등에 명예역장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도 방면은 교류가 없어 잘 모르겠단다.

횡천역도 임대를 몇 번 시도했다고 한다. 만약 임대가 되지 않는다면 계속 활동하고 싶은데 횡천역의 존재가 깔끔히 정리된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피난선'의 전설을 간직한 횡천역

 횡천역에는 예전 경사가 심해 미처 제동을 하지 못한 기차가 피난했던 피난선이 있었다.(횡천역내 임병국 사진)
ⓒ 김종길

 


횡천역에는 다른 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 있었다. '피난선'이었다. 예전 제동력이 낮은 기차가 다니던 시절, 양보역에서 횡천역으로 들어오는 철로가 워낙 경사가 심해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기차가 역사로 바로 진입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700m의 피난선이 설치됐다. 기차 한 대가 긴급하게 올라설 수 있도록 산 중턱까지 철로가 이어졌다. 피난선은 몇 번 사용됐다가 기관차의 성능이 향상되고 제동력이 좋아지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다. 이 특이한 풍경도 2010년 5월에 철거되면서 사라졌다. 피난선은 전국에 4~5군데 있었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철로에 쓰는 돌도 달랐다. 예전에는 주로 강자갈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깬 돌을 사용하고 있었다. 선로가 저중량에서 고중량으로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횡천역은 또한 2~3년마다 한 번씩 신문에 나기도 한다. 장마 기간이면 상습 침수구역이기 때문이다.

하동군 횡천면에 있는 횡천역은 양보역과 하동역 사이에 있다. 1967년 10월 5일 역사를 착공했으며 이듬해인 1968년 2월 29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했다. 1968년 2월 7일 순천~진주 간 경전선의 개통식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횡천역의 역사 건물은 순천-진주 간 노선이 개통되면서 지어져 처음에는 건물 모양이 같았다가 지역에 따라 편의대로 변경했다고 한다. 지금은 역사 내에 화장실이 있지만, 예전에는 역사 밖에 별도로 있었단다.

 철로의 경사도와 그 길이를 알리는 표지판
ⓒ 김종길

 


 횡천역은 1967년 10월 5일 역사를 착공했으며 이듬해인 1968년 2월 29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했다.
ⓒ 김종길

 


예전 인근 마을 주민들이 나무를 가져와 직원들과 함께 역내에 심곤 했는데 지금도 가끔 오가는 승객 중 자신이 예전에 심은 나무라고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단다. "2011년에는 국화축제를 열기도 했고 해바라기도 심고 나무를 손질하기도 했었는데..."라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어둠이 내렸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나타났다.

"이곳엔 별이 엄청 많아요. 밤에 승강장으로 나가면 하늘은 온통 별빛이지요. 빌딩도 없고, 1970~80년대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한 이곳... 조용해서 너무 좋아요. 그래서 이곳을 계속 찾게 되는 지도 모르나 봅니다."

기차 도착이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역내의 안내방송과 벨 알림은 하동역에서 제어된다. 횡천역도 지금 한창 공사 중인 광양 진주 간 철로가 복선화되면 어떤 운명이 될지 모르겠다. 장소를 옮겨 간이역 형태로 남는다고도 하고 아예 기차역이 사라진다고. 어둠이 완전히 내리자 멀리 기차 불빛이 들어왔다.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끝까지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덜컹거리는 창밖에는 어둠만 남았다.

 경전선 부전행 마지막 기차가 어둠을 둟고 횡천역에 들어서고 있다.
ⓒ 김종길

 


☞ 지리산 청학동(삼성궁)은 경전선 하동역이나 횡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하동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8시 30분, 11시, 낮 1시, 오후 3시 30분, 7시에 청학동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횡천역에서 내리면 5분 정도 면소재지까지 걸어가서 횡천마트 앞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8시 45분, 11시 15분, 낮 1시 15분, 오후 3시 45분, 4시 45분, 7시 15분에 청학동 가는 버스가 있다. 돌아오는 버스시간은 기사에게 반드시 확인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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