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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람

완사5일장의 명물 피순대와 비녀꽂은 할머니

 

 

완사5일장 비녀 꽂은 할머니 입담 한번 걸쭉하시네

경전선 남도800리, 삶의 풍경⑥- 완사시장

 

'옛날 옥녀라는 아름답고 단정한 아가씨가 있었다. 베 짜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매일같이 베를 짜서 덕천강에 씻어 옷감을 팔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을 지나던 민 도령이라는 자가 옥녀에게 반하여 청혼을 하게 되었고 옥녀는 과거에 급제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민도령은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 길에 올랐고, 옥녀 또한 민 도령의 과거급제를 예견하고 옷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이 무렵 고을 사또가 행차하던 중 옥녀를 탐하여 민 도령을 위한 옷감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에 낙담한 옥녀는 덕천강에 몸을 던졌고 사또 또한 급사를 했다.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하던 민 도령도 이 사실을 알고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이후 이곳을 지나는 혼인행차는 어김없이 화를 당했고 이를 위로하기 위해 옥녀봉과 완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완사와 옥녀봉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완사(浣紗)’는 원래 ‘빨래를 한다’는 뜻으로 옥녀봉 전설에 따라 비단을 짜서 씻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완사역

 

완사는 조선시대에 완사역이 있어 ‘역마’라고도 흔히 불렸다. 시장이 있는 정곡리는 예전 그릇점이 있어 ‘점골’로 불리던 것이 변하여 정곡이 되었다 한다. 1914년 사창, 신기, 곡내를 합하여 정곡리라 하고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시장이 있는 지금의 마을은 진양호 확장공사를 하면서 주민들이 이주한 곳으로, 요즈음으로 치면 신도시다.

 

경전선을 달리던 기차가 완사에 섰다. 경전선 완사역은 지금은 폐역이 된 유수역과 다솔사역 사이에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위치한 경전선의 철도역으로 1968년 2월 8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96년 1월 1일 역무원이 있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1999년에 남강댐 보수공사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2010년 7월 1일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명예역장을 임명하였다.

 

 

지난 9월 1일, 완사역에서 내려 시장으로 향했다. 완사시장은 1일과 6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시장 입구에 '100년의 전통 완사시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100년이라... 읍 소재지도 면 소재지도 아닌 이런 작은 마을 시장이 100년이 넘었다는 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시장은 작지만 옹골차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끝이 훤히 보일 정도로 손바닥만 한 장이지만 시쳇말로 없는 거 빼고 모두 다 있다. 태풍이 오고 난 뒤지만 과일전에는 토마토, 참외, 복숭아 따위도 보이고 햇배와 햇사과도 보인다. 잘 말린 고추가 비닐 부대에 그득 담겨 있고 채소는 태풍에 피해가 컸는지 파리한 얼굴로 드문드문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사는 바다가 지척이다. 곤양과 서포의 갯벌과 바다에서 오는 게와 각종 해산물이 시장의 한구석을 채운다. 펄떡이는 게를 검은 봉지에 담아 오천 원씩, 만 원씩 사간다. 게 이름을 물어봐도 사가는 손님도, 파는 상인도 그저 게라고만 한다. 바다에 닿아 있으면서도 주위에 산지가 적지 않다 보니 수십 가지의 약재가 시장바닥에 즐비하다. 한쪽에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완사시장에서 빠뜨릴 수 없는 명소, 순대집을 찾았다. 시장에는 순대집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여행자가 찾은 곳은 곤양식당. 장터에 있는 이 순대집은 지역에서는 꽤나 알려진 집이다.

 

오랜만에 찾았더니 문덕희 할머니가 아는 체를 한다. 순대 1인분만 주문했다. 할머니는 예전 장날이면 이곳에서 국밥을 말아 장꾼들에게 팔다, 18여 년 전부터 피순대를 만들어 식당을 꾸려왔다. 이집 순대의 특징은 그 흔한 당면을 넣지 않고 방아․파․마늘․김치 등 각종 야채와 양념을 버무린 선지를 넣어서 만든다는 데 있다.

 

 

여행자가 어렸을 때 시골에선 돼지를 잡을 때 칼로 목을 찔러 피를 양동이에 받아내곤 했다. 고기의 핏기를 제거하고 신선한 선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선지로 피순대를 만들었다. 돼지창자를 분비물 없이 깨끗이 씻어내고 소금으로 주물러 잡내를 제거한 후 선지와 약간의 채소 등으로 소를 넣어 순대를 만들었다. 탑탑하면서 단맛이 나는 피와 쫄깃한 내장 맛이 유년시절의 맛으로 기억된다. 갖은 야채와 당면이 들어간 요즘의 순대와 비교하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맛에 대한 추억은 아련하다.

 

허름한 선술집 같은 식당에서 그야말로 옛날식 순대를 먹는 기분은 묘하다. 등뼈와 순대가 들어간 국밥도 시골 맛이다. 조금은 탑탑하지만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순대 맛은 호불호가 명확할 것 같다. 도시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보기에도 먹기에도 마뜩잖을 수도 있겠고, 어린 시절 시골의 추억 한자락 가지고 있는 이라면 투박하고 거칠지만 맛이 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챌 수도 있겠다.

 

완사시장의 명물 '피순대'

 

이곳의 피순대가 아름아름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외지인들도 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장날이면 장꾼들은 순대 한 접시에 간단한 요기를 해결하고 고된 일상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돼지국밥, 내장국밥, 순대국밥, 추어탕은 6000원, 수육 12000원, 순대 작은 것이 6000원, 큰 것이 12000원이다.

 

장이 설 때마다 시장에 나오는 김정년 할머니(82)는 아직도 비녀를 꽂은 쪽머리를 하고 있다

 

순대를 사서 나오는데 할머니 한 분에게 자꾸 눈이 간다. 완사장이 비록 손바닥만 하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유독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바로 머리에 꽂은 '비녀'때문이었다. 시골 할머니들이 대개 하고 있는 파마머리가 아니라 곱게 빗어 넘긴 머리모양새 끝에 비녀가 꽂혀 있었다.

 

 

순간 고향의 팔순 노모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만 해도 비녀를 꽂고 있었다. 옛날 쪽머리를 고집하던 어머니도 칠순을 넘기자 더 이상 머리 관리가 힘들어 어느 날 읍내 미용실에서 50년 이상 길러 허리까지 치렁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파마를 하고 왔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쪽머리를 하고 있는 시장 할머니의 뒷머리에도 분명 비녀가 있겠구나,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할머니는 비녀를 꽂고 있었다. 김점년(82)할머니는 완사에 사신단다.

 

"와 자꾸 찍어샀노. 나 인자 그라모 티비에 나오나? 혹시 나를 아무도 모르는 데로 살째기 데꼬 갈라꼬?"

 

사진을 좀 찍자는 말에 할머니는 싫지 않은 듯 웃으면서도 말은 걸쭉하니 날이 서 있다.

 

“할매 오늘 그 뭐라쿠네. 스타 됐네, 스타!”

 

앞에서 채소를 팔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매번 장이 설 때면 김 할머니와 동업을 하다시피 해 같이 채소 따위를 손질해 파는 아주머니는 사진을 찍는 내내 부산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시장 한쪽의 화장실 벽면에 ‘시장 점포 안내’라는 글귀가 보였다. 제법 정성을 들인 듯한 안내문에는 그 흔한 지도 하나 그려져 있지 않아도 단박에 점포를 찾을 수 있었다.

 

 

장 구경을 마친 할아버지들은 평상에 앉아 시장의 시간을 지그시 즐겼고,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는 풀빵을 주고받는 할머니들이 대중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완사5일장은 1일과 6일에 열리며 피순대와 소고기(국밥)가 유명하다. 특산품으로는 녹차인데, 시장에서 1.7km 떨어진 곳에 대규모 녹차밭인 사천녹차원 다자연이 있고 다솔사와 서봉암에도 녹차밭이 있다. 인근 여행지로는 봉명산, 다솔사, 서봉암, 다자연 등이 있다. 완사시장은 완사역에서 500m 정도로 도보로 5분 거리다.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 842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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