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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람

싸다 싸! 해산물 천지 통영중앙시장



싸다 싸! 해산물 천지
통영중앙시장(통영중앙활어시장)

길 위에 서면 가장 흥미로운 곳 중의 하나가 시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이 가끔 의문스러울 때 시장에 가면 그 의문은 금세 사라져 버리지요. 온갖 나태한 일상들, 몸 속 깊숙이 파고든 먹물 근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겠지요. 설을 앞두고 통영중앙시장을 찾았습니다.


통영은 자주 가는 터라 차로 늘 붐비는 강구안에서 중앙시장으로 곧장 가지 않고 뒷길로 돌아갔습니다. 뒷골목에 내려 시장으로 들어섰더니 돼지 수십 마리가 눈에 띄더군요. 그것도 몸뚱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얀 머리만 남긴 돼지들 말입니다. 하도 그 모양이 기이하여 주인장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돼지는 그 순간에도 웃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장 구경입니다. 통영하면 떠오르는 음식들이 제법 많지요. 그 중에 하나 꿀빵이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맥만 유지했던 이 꿀방이 근래에 들어 다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지금은 이 꿀방만을 파는 가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달콤한 맛에 아이들은 군침을 다시고 어른들은 추억에 빠져들게 됩니다.


꿀방 하나를 베어 문 채 대장간에 들렀습니다. '충무공작소'라는 간판을 달고 이평갑(71)씨가 50년 넘게 운영해온 대장간입니다. 바로 곁에 활어시장이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넘치는 곳입니다. 비록 손 풀무가 전기 풀무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쇠붙이로 된 각종 농기구와 어구들이 가득한 이곳에는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열일곱에 대장간 일을 처음 했다는 대장장이는 추운 겨울인데도 연신 땀을 훔쳐냅니다. 시장을 오고가는 이들이 주문을 하고 가면 대장장이는 웬 종일 망치질을 합니다. 여행자가 잠시 말을 걸 새도 없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장간에 들이닥칩니다. 바삐 움직이는 그에게 인사를 건성으로 건네고 활어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입구에는 '중앙활어시장'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아치형의 간판이 있어 애써 눈길을 주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점포에 들어서기 전부터 난전이 활기찹니다. 그러나 이곳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작은 노전과는 달리 시장에 들어서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해산물 천지입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여행자의 키만 한 갈치가 맨 처음 사람을 놀라게 하더군요. 이렇게 큰 갈치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정말 갈치계의 최홍만이더군요. ㅎㅎ


시끌벅적한 시장 한 모퉁이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인 한 아주머니가 젓갈을 연신 퍼 담고 있었습니다. 겨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젓갈 맛을 봤습니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명란젓과 낙지젓을 샀습니다. 한 통에 만원인데 명란젓과 낙지젓을 섞은 한 통을 만원에 샀습니다.


시장 한복판에 길게 늘어선 좌판은 이곳 활어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입니다. 그야말로 바다의 진풍경이 이곳에서 펼쳐집니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어시장입니다. 양쪽에 사람들이 드나들 통로를 두고 좌판을 펼친 상인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장관입니다.


이곳에는 즉석에서 회를 떠서 팝니다. 각종 조개류는 물론이거니와 해삼, 멍게, 성게, 전복들도 가득합니다. 초장, 된장을 비롯한 양념류도 포장해서 팔고 있어 잠시의 망설임도 필요 없이 싱싱한 횟감을 즉석에서 맛 볼 수 있지요.


횟집의 절반 정도에도 미치지 않은 가격에 횟감을 살 수 있기에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외지인들은 그 착한 가격에 놀라기 일쑤입니다.


횟감을 손질하는 상인들이 손놀림은 가히 신의 경지입니다. 생선 한 마리를 손질하는데 불과 몇 십초면 뚝딱입니다.




요즈음 기운이 딸리는 여행자는 전복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전복 12미에 2만원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어 전복 한 쟁반을 샀습니다. 나중에 이 전복을 먹고 불끈불끈 힘이 솟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햐, 이건 장어입니다. 장어까지 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과유불급이라 참기로 했습니다.


대신 활어시장을 빗겨난 곳에 할머니가 팔고 있는 참돔을 사기로 했습니다.


참돔 여섯 마리에 만원이었습니다.


구워 먹으면 그만이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형마트에서는 7천원에 세 마리를 팔더군요.


이번엔 생멸치입니다. 위쪽 지방 사람들에게는 생멸치가 낯설지 모르겠습니다. 남해안에서는 생멸치 조림이 유명하지요. 막걸리식초로 무친 생멸치무침도 그만이구요. 물론 생멸치의 으뜸은 죽방렴 멸치를 최고로 치지만요.


활어시장을 벗어나 건어물전으로 가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화톳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정겨워 사진을 부탁했습니다. "늙은 거 찍어 무엇하남."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리시더니 “찰킷”하면서 깜찍한 얼굴로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 껄껄 웃다가 뒤를 돌아보고 기겁을 하였습니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벌겋게 쬐려 보고 있더군요. "아나고(붕장어) 대가리여. 곰국 끊이듯이 솥에 푹 고와서 먹으면 그만이지. 시래기 넣고 끊여 먹어도 좋구. 하여튼 남자에겐 최고라요." 뭘 그리 놀라느냐며 맞은 편 아주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우와, 아빠 저것 봐.” 앞서 가던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대구였습니다. 지금이 한참 맛이 좋을 때이지요. 대구는 이 시기가 되면 산란을 위해 거제로 돌아옵니다. 대구를 자세히 보면 배 부분이 빨간 것을 알 수 있지요. 알이 빠지지 않도록 헝겊 같은 걸로 막아두기도 합니다.


입이 커서 대구라고 부르는 이 생선은 한 때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한 생선이었습니다. 큰 놈 한 마리에 3~40만원까지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 어획량이 늘어나 가격이 그나마 저렴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요. 이 한 마리에 4만원부터 다양하게 값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한 마리만 사도 며칠을 두고 온 가족이 즐겨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대구는 실해 보였습니다.


아주머니가 배를 가르자 무만 한 대구알이 나왔습니다.


건어물 가게에 이르니 이미 어둑어둑해졌습니다. 해는 떨어지고 날은 차가워지는데 시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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