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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남도 800리

타임슬립, 기차 타고 떠난 삼랑진 골목 여행

 

 

 

타임슬립, 기차 타고 떠난 삼랑진 골목 여행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삼랑진 편 上)

 

오후 1시 45분, 삼랑진역에 도착했다. 구불구불 느릿느릿... 세상에서 제일 불편하고 가장 느린 기차를 타고 도착한 삼랑진역의 첫 인상은 잿빛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만 같았다.

 

 

경전선. 왜 이리 여행자의 마음을 뒤흔드는지 모르겠다. 영남과 호남을 잇는 유일한 철도라서 그럴까. 아니면 버스보다 절반이나 느린 속도로 달리는 무궁화호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2012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역들이 있기 때문일까. 원북역, 평촌역, 진주수목원역, 진성역, 갈촌역, 남문산역, 개양역..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역들이다.

 

 

경전선, 추억을 간직한 채 달리다

밀양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을 잇는 308.2km의 경전선은 경사가 심하고 곡선이 많아 옛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달리고 있다. 삼랑진은 경전선의 출발역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903년에 삼랑진과 마산포를 잇는 공사를 시작으로 1905년 마산선이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지금의 경전선이 비롯되었다. 삼랑진역은 경전선의 모태인 셈이다.

 

 

그 후 1922년에 광주 송정과 순천, 1923년에 마산과 진주, 1968년에 진주와 순천을 잇는 경전선이 완성되면서 경전선은 그 이름에 걸맞게 경상도와 전라도를 달리는 기차가 되었다. 300km가 넘는 경전선이 완성되는 데는 6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1968년까지만 해도 60여 개의 역이 있었다고 하나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더러 많은 역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승강장과 대합실을 잇는 지하통로에는 옛 삼랑진역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전선은 하루에 5편이 삼랑진역을 통과한다. 2000년 11월, 비둘기호가 없어지면서 무궁화호는 경전선을 오가는 유일한 완행열차가 되었다.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는 6시간 이상 걸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다. 수많은 간이역이라는 섬을 하나하나 이어주며 서두르지 않고 오늘도 제시간에 역에 들어서는 정직하고 믿음직스런 경전선이다.

 

 

 

경부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삼랑진역은 부산과 대구의 중간에 있다. 하루에도 수십여 대의 기차가 지나간다. 이곳을 밀양 철도 교통의 요충지라고 애써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급수탑

 

철길 옆에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923년에 지었다는 급수탑이 우람하게 서 있다. 급수탑은 예전에 증기기관차가 운행되던 시절, 기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역내에 지어진 철도 시설물이다. 189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했던 급수탑은 1950년대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고 지금은 등록문화재로 남았다. 무성한 담쟁이덩굴에 덮여 옛 영화는 찾을 수 없지만 탄탄한 모습에서 한때 번잡했을 삼랑진역을 상상해 본다.

 

삼랑진에서는 일본식 가옥을 흔히 볼 수 있다

 

읍내에서 수십 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정영호(62) 씨는 삼랑진역에 증기기관차가 드나들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기차를 따라 뛰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노리까리라 했던 기차에 급수를 하는 장면도 직접 보았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미전역에서 뱀처럼 긴 기차가 몸통은 그대로 두고 머리만 떼어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밀양은 여기에 비할 거도 아니었제. 사람들로 미어터졌어요. 기차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어. 돈요. 길에 깔린 게 돈이었어. 여관도 엄청 많았고....”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가는 지하통로에선 삼랑진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려놓고 회색의 벽에 걸린 옛 삼랑진의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땅 위로는 오늘이 내일을 달리고 그 아래로는 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타임 슬립, 옛 철도관사를 찾아 삼랑진 골목길을 걷다

 

삼랑진역을 나오자마자 타임슬립이 되는 느낌이다. 반듯한 역사와는 달리 옛날 영화 촬영지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옥은 아직도 일본식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호만 봐도 재미있다.

 

인간서점. 삼랑진 골목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다

 

 

 

서점 이름이 '인간서점', 미용실은 '머리이야기, 까꼬뽀꼬'이다. 보석방은 너무나 익숙한 '명성당', 약만 지어주는 한약방은 '삼대한약방'이다. 커피, 주스만 적어 놓은 '명성휴게실'이라는 곳은 왠지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 다방이겠지.

 

여행은 단순히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로 옮겨가는 타임슬립이다.

 

 

 

택배 회사는 이름이 따로 없다. 그냥 '택배'다. 시골에선 무슨, 무슨 회사가 낯설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이름 붙여 운영하다 물건이 있으면 적당한 택배회사를 불러 보내면 그만이다. 농약방은 간판조차 없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와 더불어 그때그때 필요할 때 가져가면 된다. 얼핏 보기에 작은 수족관 하나 없는데 회를 파는 식당도 보인다. 무슨 회를 팔까. 분명 바다 회라고 적어 놓았다.

 

 

 

 

택배

 

 

농약

 

 

거리를 둘러보고 새마을 금고 뒤로 갔다. 역 앞 일본식 건물 앞에서 쉬고 있던 정영호(62) 씨는 예전 박정희가 삼랑진에 왔을 때 역 앞 게양대에 서 있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곳이 과거 삼랑진역 근처에 몰려 있던 철도관사였다.

 

새마을 금고 뒤로 가면 옛 철도관사 자리다.

 

철도 관사는 일부 변형이 되었지만 지금도 옛 가옥의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철도 교통의 중심으로 번잡했던 옛 삼랑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집의 모양이 달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집 하나하나가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축대에도 일본 특유의 축조법이 보인다.

 

 

철도관사는 축대와 건물 외관만 봐도 일본식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매일 기차역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엄청났지요. 그러다보니 철도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 일대가 전부 철도 관사 자리지요. 한 30여 호 될 거요. 내가 여기서 한 50년 살았는데, 지금이야 살기에 좋으라고 개조를 했지만 겉모습은 옛날하고 똑같아. 골목길도 예전 그대로고 변한 게 거의 없어."

 

골목에서 만난 최진호(84) 할아버지는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일제 때 지어진 이곳의 철도 관사는 해방 후 불하가 되어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점차 내부를 개조했다고 한다. 그는 철도에 종사하다 50년 넘게 이 집에서 살고 있다며 넌지시 자부했다. 마을 한쪽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지금은 상수도 시설이 집집마다 있으나 불과 십수 년 전 만해도 이 우물은 철도 관사가 있는 마을에 긴요하게 쓰였다.

 

5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최진호(84) 할아버지

 

여느 시골 읍내의 골목길과는 달리 널찍한 이곳의 골목길에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번화했던 옛 삼랑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삼랑진 골목길은 관광산업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4.9일 장인 송지시장, 작원관, 낙동철교, 삼강사비, 이미 자전거길이 있는 낙동강변을 코스로 엮고 무료 자전거 대여소를 두면 밀양의 중심 관광지로 각광을 받을 날도 멀지 않겠다.

 

여느 시골 읍내의 골목길과는 달리 널찍한 이곳의 길에서 한때 번화했던 삼랑진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이 글을 시작으로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연재에 들어갑니다. 연재 기간은 1차적으로 6개월입니다. ‘코레일’과 ‘오마이뉴스’에도 같은 제목으로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다만, 이곳에선 사진 위주의 블로그 버전으로 기사와는 다른 형태로 싣고 매주 2회 이상으로 나누어 연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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