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사에 머물다

지붕 위의 작은 지붕, 솟을지붕을 보셨나요?

 

 

 

 

지붕 위의 작은 지붕, 솟을지붕을 보셨나요?

 

 

조선 초기 소나무가 많아 ‘솔뫼’라고 불리던 조계산의 옛 이름 송광산의 이름을 딴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송광사는 크게 청량각에서 천왕문까지의 진입 공간, 종고루에서 대웅보전에 이르는 중심 공간, 대웅보전 뒤의 수선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송광사에서 으뜸 경치를 꼽으라면 누구나 임경당과 우화각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주문을 지나 능허교라는 무지개다리에 놓인 우화각과 계류에 턱하니 걸쳐 있는 임경당은 언제 봐도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임경당은 그 이름처럼 거울에 비추어볼 만큼 아름다운 건물로 기둥 두 개가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어 선경을 자아낸다. 앞으로는 징검다리가 있어 아이들이 첨벙첨벙 건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형 석조물이 눈에 띈다. 대찰답게 모든 것이 크고도 크다. 이러한 구조물만 봐도 사찰의 규모와 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절에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있었는가는 굳이 문헌을 뒤지지 않더라도 비사리구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승보전에 있는 비사리구시는 쌀 7가마, 약 4천 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제사를 지낼 때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 두는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처럼 종이를 만드는 일에 사용되었던 지통이 아니라 밥통이란다. 흔히 송광사의 3대 명물로 이 비사리구시와 능견난사, 천자암 쌍향수를 들기도 한다.

 

 

송광사는 예전 건물이 워낙 빽빽이 들어차 있어 비가 와도 비를 맞지 않고 경내를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공간이 널찍한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지 않은 규모이다.

 

 

특이한 것은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석탑이 송광사에는 없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초기 선종 계통의 가람에서 석탑 없이 금당 위주의 배치 방식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亞)자형의 대웅보전은 그 생김새도 특이하지만 사방 벽이 널판으로 둘러쳐져 있어 울림이 좋다. 그래서일까. 송광사 새벽 예불은 장엄하고 장중하기 그지없다.

 

 

관음전은 일반에게 공개된 건물 중에서 가장 고풍스럽다. 한눈에 보아도 옛 멋이 제대로 살아 있다. 원래는 성수각으로 고종의 원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195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고종과 명성황후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있고 내부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관음전 뒤를 오르면 승탑 한 기가 있다. ‘불일보조국사감로지탑’이라고 쓴 위창 오세창 글씨를 쓴 비가 있어 이 승탑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승탑 앞에 서면 송광사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계산 자락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절집 풍경이 고즈넉하다.

 

 

송광사는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다. 승보사찰답게 수선 영역이 장대하다. 대개의 사찰에서 수행공간이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에 비해 이곳에선 대웅보전 뒤의 높은 석축 위에 있다.

 

 

승보사찰 송광사를 대표하는 국사전을 비롯하여 설법전, 수선사, 하사당, 상사당(삼일암), 응진전 등의 건물들이 이곳에 있다. 출입이 금지되어 들어갈 볼 수는 없으나 보조국사 승탑에서 보면 수선 영역의 공간 구성을 엿볼 수 있다.

 

 

건물들을 보다 보면 지붕 위에 다시 작은 지붕이 솟아 있는 특이한 건물이 눈에 띈다. 보물 제263호로 지정된 하사당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승방 가운데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의 건물이다. 하사당은 부엌이 딸려 있는데 그 부엌 칸의 환기창으로 쓰인 것이 지붕 위의 지붕, 솟을지붕이다.

 

 

솟을지붕은 전라도 지방의 살림집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구조로 일종의 환기장치이다. 종고루 옆 약사전 앞의 건물에서도 솟을지붕을 볼 수 있다.

 

 

하사당과 나란히 있는 건물은 상사당인 선방으로 지금은 조계총림 방장스님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상사당은 제9대 담당국사가 승탑 아래쪽에 있는 영천수를 마시고 사흘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삼일암(三日菴)’이라고도 한다.

 

 

유물전시를 하는 성보각은 입구부터 살벌하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가 섬뜩할 정도로 강력하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사진이 유물에 주는 손상 여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찍지 말란다. ‘금지’에 대한 맹목성은 일종의 병이다.

 

 

보물로 지정된 경패의 조각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조심스레 담았다.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천왕문을 나와 우화각을 돌아서면 침계루다. ‘시내를 베고 누워 있다’라는 뜻처럼 계류에 있는 모습이 퍽이나 장하다.

 

 

‘사자루’라고도 불리는 침계루는 앞면 7칸, 옆면 4칸의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이다. 계곡 쪽으로 뻗은 기둥들이 시원하다. 마치 탁족을 하며 공부를 하는 스님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2층 누각인 침계루는 스님들의 학습공간이다.

 

활짝 연 바라지창이 시원스럽고 아래층 꽃 창이 정갈하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