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마애불

지리산 골짜기 바위에 새긴 어느 석공의 꿈



지리산 삼성궁에 가거들랑
이것 꼭 보시오

참, 어찌 보면 한바탕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차린 해장국을 꾸역꾸역 삼키고 났더니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려 있었다. 잠자리에 든 시각을 아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잤을 뿐이라고 우겼을 것이다.

삼성궁 매표소 옆 청학 모양의 거대한 집이 있고 그 옆으로 펼쳐진 어마어마한 석축이 김원주 화가의 작업 공간이다.

지리산 골짜기로 향했다. 청학동 삼성궁을 가기 위해서였다. 밤을 도와 마신 술이 아직 몸 안에서 미적거리는 동안 우리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행여 술기운이 달아날 새라.... 삼성궁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김원주 화가이다.

작품 앞에 선 김원주 화가. 바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정으로 쪼아 생명을 불어넣는다. 

여주에서 도자기를 빚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원주 화가는 삼성궁을 세운 한풀선사와 오랜 벗이다. 그를 통해 여행자는 한풀선사와 일면식을 갖게 되었다. 재작년 가을 천제 때 삼성궁을 함께 찾았었고 오늘이 두 번째이다.
화가는 지금 삼성궁에서 조각 작업을 하고 있다. 삼성궁 입구 옆에는 청학 모습을 한 거대한 건물이 있다. 그 건물 옆으로 층을 이룬 어마어마한 석축이 있고 화가는 축대를 이루는 돌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일일이 정을 쪼아 형상을 조각해낸다. 비, 바람, 구름, 번개 등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어, 저 작품은 형의 자화상 같은데....” 북을 두드리고 있는 사내 조각을 보고 여행자가 말하자 그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바위의 인물들은 삼성궁에 있는 사람들이 모델이 되었다고 했다.

바람

이곳의 바위들은 화강암이다. 알다시피 화강암은 작업하기가 그다지 수월한 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화강암인데, 경주 남산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마애불은 대개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화강암은 단단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조밀하지 못해 결 따라 조각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작업하기에 까다로운 편이다.

번개

“마애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에요. 뭐랄까. 마애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친근감이 생기거든요. 대상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그냥 우리네 이웃들 같아요. 신적인 게 아니라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조각을 보고 여행자가 느낌을 장황하게 말하자 “어, 그렇지. 그게 원래 의도였어.” 그는 간결하면서 심지 굳은 말로 대신했다.


작업장 가운데에는 청학을 새긴 거대한 바위가 서 있었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청석에 새긴 작품이다. 한풀선사가 말한 청학의 상을 김원주 화가가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리가 하나이고, 날개는 여덟, 꼬리는 아홉인데 둘은 유독 길다. 입에는 용처럼 여의주를 물고 있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청학

이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꺼운 얼음이 언 골짜기는 아직 겨울이었다. 겨울을 비집고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느긋하게 산길을 올랐다.

행여 지리산 삼성궁에 가거들랑 눈여겨보세오. 삼성궁 가는 길에서 석각과 그림을 보거들랑 그냥 모른 체 지나치지 말고 한 화가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생각해주오.



김천령의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구독+해 주세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김천령의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에 링크 되어 있습니다